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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인연, 관계의 생노병사

한겨레 신문, 김은형 기자의 그 문장

“삶이라는 등산에서 가까운 친구라도 정상까지 같이 가기는 쉽지 않다. 갈림길에서 헤어졌다 다시 만나면 그때 왜 다른 길로 갔나, 묻지 않아도 만남의 기쁨에 충실할 수 있는 게 ‘나이 든 우정’의 보람 아닐까?”
- 한겨레 신문, 김은형 기자의 칼럼 중에서 -



# 계절처럼 사람이 오고 간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계절은 오고 가고 또 온다. 계절이 아무리 좋아도 붙잡을 수 없다는 걸 알고 그걸 알기에 붙잡으려는 헛된 노력을 하지 않는다. 사람도 그런가. 사람도 자연의 일부인데 사람도 오고 가고 또 오는 것일까?


20대 “단짝에게 새로운 친구가 생겼어요.”

영혼의 단짝 같은 친구가 있었다. 예술가 기질이 다분했던 친구는 내 마음을 두드리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많은 감정을 공감하는 사이였다. 어느 날, 내 친구에게 집착하는 새로운 친구가 생겼고 우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괴로워하는 친구를 보며 나는 늘 ‘괜찮다’고 했지만 괜찮지 않았고, 따져 묻거나 화내지 않는 대신 마음의 거리가 멀어져 갔다. 감정을 폭발시키지 않는 ‘정지의 힘’만큼 무섭게 차가워졌으니까. 세월이 흘러 흘러 그때 새로 비집고 들어온 친구와 나는 편한 친구 사이가 되었지만, 옛 친구와는 연락하지 않는다. 인연, 참 이상도 하지.


40대 "더는 같이 일하지 말자." 찰떡같던 파트너가 메일을 보냈어요.

일로 만난 사이는 ‘감정을 공유’ 하지 않는 것이 나의 원칙이지만, 쿨하고 시원시원한 여자 피디는 참 멋졌다. 일로 만난 사이임에도 많이 의지하고 찰떡 파트너가 되어 레귤러 프로그램을 같이 옮겨가며 함께 일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믿거니 하면서 묘하게 일을 떠맡기는 느낌, 내가 여러 프로그램을 하는 걸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대 놓고 이야기 않았지만 조금씩 불만이 쌓여간다고 생각하던 그때, 제작하던 한 편의 품평이 안 좋았고 시청률도 말아먹게 되었다. 소통하지 않고 만든 결과물이 좋지 않을 수밖에. 그 타이밍에 메일 한 통이 날아왔다. “ 서로 같이 일하지 않는 게 좋겠어요.”

다른 사람들 보기에 찰떡 파트너였기 때문에 마치 쇼윈도 부부처럼 내색하지 않고 내가 싫어서 그만두는 것으로 끝난 인연. 지금도 가끔 마주치면 어색하다. 친했다는 게 뭔 의미가 있었을까. 인생 헛살았어. 젠장.



# 그것이 시절 인연이라면

정(情) 주었다가 이상하게 멀어진 인연들. 그런 인연이 떠오르면 ‘시절 인연’에 마음을 기댄다. 불교 용어로 모든 사물과 현상의 가장 알맞은 때를 말하는데 사람과의 인연도 오고 가는 시기가 있다고 생각하는 나는 그들을 시절 인연이라 부른다. 가깝던 사람과 갑자기 멀어지거나 이별한 경험이 떠오르면 내 잘못인가 후회되고 시간을 되돌리면 안 그랬을 텐데 하는 불편한 마음이 있었는데, 요즘은 ‘시절 인연’이었다 생각하고 매듭지으면 덜 집착하게 된다. 아닌 인연을 붙잡기보다 그냥 보내는 게 맞을지 모르니까.



# 괜찮아, 정상까지 같이 못가도

중년의 나이쯤 돌아보니 ‘시절 인연’이 제법 있다. 한겨레 칼럼에서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문장을 만났다.

“삶이라는 등산에서 가까운 친구라도 정상까지 같이 가기는 쉽지 않다. 갈림길에서 헤어졌다 다시 만나면 그때 왜 다른 길로 갔나, 묻지 않아도 만남의 기쁨에 충실할 수 있는 게 ‘나이 든 우정’의 보람 아닐까?”

그래! 꼭 정상까지 같이 가야만 하나. 정상까지 같이 갈 확률이 얼마나 되겠어. 갈림길에서 헤어지고 다른 길로 갈 수도 있지. 다만, 헤어졌다 다시 만나면 왜 그랬냐고 따져 묻지 말고 만남의 기쁨에 충실할 수 있는 사람, 넉넉한 품으로 받아주는 사람이면 되지 않을까? 시절 인연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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