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홍승은 작가의 그 문장
# 낯선 부고
아는 사람인가? 머리를 굴리고 기억을 더듬어도 아는 바가 없다. 그런데 내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자주 언급되는 이 사람, 누구지? 잊을 만하면 sns에서 언급되는 ‘이환희’. 신인 연예인인가? 아니면 나만 모르는 유명인? 궁금했지만 귀찮아 미뤘는데 알게 되었다. 그의 정체를.
보통 사람 이환희. 그는 뇌종양으로 서른다섯에 세상을 떠난 편집자다. 윤종신 팬클럽 <공존>의 ‘총무 1’. 윤종신이 그를 그리워하는 글을 쓰고, 함께 책을 펴낸 은유 작가도 그리운 마음을 듬뿍 담은 추모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전혀 연관 없어 보이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 이름이 회자하고 추모하는 글이 이어졌다. 눈길이 머문 건,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말하는 부인의 글이다.
“매끄러운 세계에서 미끄러진 존재를 보고야 마는 눈을 가진 사람”
# 파도타기 애도, 훌륭한 보통 사람 이환희
내가 지켜본 ‘파도타기’ 애도는 녹색평론 발행인이자 생태주의 사상가인 김종철 선생님 이후 처음이다. 이토록 여러 사람이 애도하는 건, 그가 살다 간 삶의 진짜 성적표가 아닐까. 그는 짧은 인생을 살다 간 젊은 편집자였는데도 미담이 많았다. 예의 바르고 다정한 편집자로 불린 그는 특유의 ‘조심스러운 설득’으로 작가와 이견을 좁혀 가는 사람이었고, 길 가다 단체 모금이 있으면 차 한 잔 값이라도 기부하고, 효순이·미선이 촛불 시위, 송두율 교수 구명운동 등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면서도 부족함을 반성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반면, 도시농부를 꿈꾸는 조합원, 와우산 농구단 코치, 윤종신 팬클럽 총무라는 엉뚱한 이력. 타인과 공감하려고 애쓰고 상처 주지 않는 농담을 잘하는 사람으로 기억한단다. 누군가의 말처럼 ‘보통 사람이지만 흔하지 않은 사람’, ‘훌륭한 보통 사람’이라는 말이 와닿는다. 보통 사람 이환희. 그의 부고에서 난 그를 소개받았다.
# 소개팅 해도 될까요?
"매끄러운 세계에서 미끄러진 존재를 보고야 마는 눈을 가진 사람”
이환희 편집자가 좋아했다는 이 문장은 홍승은 작가의 책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에 나온다. 이환희 편집자 소개로 만난 홍승은 작가와 책. 책을 받자마자, 나의 소개팅 남이었던 편집자 ‘이환희’의 이름을 찾아 동그라미를 치는 ‘나만의 의식’으로 그를 기억했다. 그는 또 한 명의 저자를 소개해준 주선자이기도 하니까.
새로운 저자와 책을 만나는 일은 ‘소개팅’ 같다. 설레고 기분 좋은 느낌. 혹시 하고 나갔다가 역시일 때도 있지만, 주선자가 확실하면 좋은 사람 만날 확률이 높아진다. 이때 만날 소개팅 남녀는 무조건 O.K! 벌써 이 책에서 여러 명의 소개팅 대기자들이 줄지어 있다. 사기만 하고 아직 읽지 못한 구술 생애 기록자인 최현숙 작가, 인류학의 새로운 글쓰기를 시도하는 김현경 인류학자까지. 여기서 만나니 반갑고 그들과의 만남도 기대된다. 역시 주선자는 내 취향을 확실히 알고 있군. 이보다 알찬 소개팅이 어디 있을까?
고민이 많은 시기에 만난 이 책은 꽤 반갑다. 제목처럼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라고 속삭이는 책. 친구들과 글쓰기를 시작하는 나에게, 늘 짝사랑으로 끝나고 마는, 그래서 자괴감에 시달리는 글쓰기를 다시 생각해 보라고 다독인다. 그냥 우연히 시작한 글쓰기 카페인 <월수금 집필실>. 어쩌면 그녀가 말하는 ‘안전한 글쓰기 공동체’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아서 더욱더 기대된다. 이 소개팅에 나오길 잘한 것 같은데......꼬리에 꼬리를 무는 소개팅. 설렌다.
글쓰기 수업에는 비슷한 시선을 가진 사람이 모인다. 빛보다 그림자를 보고, 매끄러운 세계에서 미끄러진 존재를 보고야 마는 눈을 가진 사람들, 섬세한 감각으로 살아온 그들은 슬픔을 가득 지고 워크숍을 찾는다.”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홍승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