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노트>의 그 문장
지금 대한민국의 표준어는 '서울말'이라기보다 '디지털 언어'에 가깝다. 이 언어들을 이해하지 못하면 '지금과 여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SNS는 다양한 세대의 언어문화를 목격할 수 있는 곳이다.
-2021 트렌드 노트-
# 톡이나 할까
가끔 카카오 TV를 본다. 젊은 감각이 궁금한 호기심에서 챙겨보았던 <톡이나 할까>는 은근 취향 저격이었다. 과거형인 것은 지금은 종영되어(2021. 11.16 63회로 종결) 유료 버전이 되었기 때문이다. ‘급할 때 전화 주세요’라는 카톡 프로필 문구를 내걸고, 톡보다 전화를 선호하는 내가 이런 '톡'프로를 볼 줄이야. 이 프로그램을 한 줄로 설명하자면 매주 한 명씩 연예인을 초대해 MC 김이나와 톡으로 대화하는 인터뷰다. 사실 연예인 인터뷰가 다 뻔하지. 정해진 답변을 주고받고 홍보할 일이 있으면 더욱 인터뷰 내용의 차별화가 없다. 예쁘게 차렸지만 신선함이 부족한 식탁 같다고 할까. 그런데 <톡이나 할까>는 출연자와 만나 얼굴을 빤히 보지만 말 대신 ‘톡’을 주고받는 것, 그거 하나 다를 뿐인데 말로 하는 인터뷰보다 출연자의 성격이 훨씬 잘 드러난다. 머뭇거리는 잠시의 망설임, 썼다 지웠다 하는 문자, 자주 쓰는 단어나 이모티콘. 살짝살짝 보여주는 모든 것이 그 사람의 언어이자 성격인데 숨김없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게 관전 포인트!
# 말보다 더 솔직한 대화 '톡'
겨우 ‘톡’인데 완전 다른 ‘톡’이다. 몇몇 인상적인 출연자들을 떠올려 보면... 유난히 심각하게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며 단어 고르는데 진땀을 흘리던 변요한, 유쾌한 티키 타카를 보여준 동갑내기 배우 이정은과 김혜수, 가족과 제주살이를 한 풍경과 손수 해먹은 요리 리스트를 사진 파일로 보여주는 문소리. 이주영 배우가 처음 주연을 맡으며 생긴 고민을 명상으로 풀어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MC가 사주로 성격을 풀어가는 인터뷰라니. 예측대로 풀리지 않고 그때그때 게스트의 상황과 심리를 파악해 취향을 저격하는 김이나의 좋은 질문 없이는 ‘절대 불가’한 프로이지만, 그보다 내가 주목하는 건 ‘톡’이 훨씬 솔직한 대화 수단이라는 거. 나로 말하자면, 단톡에 시달리기 싫어서 알림 표시도 안 하고 톡보다 전화를 선호하는데도 톡의 순기능에 놀랐다. 그뿐인가. 뭐든 문자와 메일로만 해결하려는 젊은 세대에 대해 친구와 성토대회를 한 적도 있다. '왜 전화를 하면 안 받고 톡을 보내는지', 어떤 일을 문자나 톡만 ‘틱’ 보내고 확인하지 않고 끝났다고 생각하는 태도. 내겐 ‘톡’은 평가절하한 소통수단이었는데,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톡'의 세계가 달리 보인다.
지금 대한민국의 표준어는 '서울말'이라기보다 '디지털 언어'에 가깝다. 이 언어들을 이해하지 못하면 '지금과 여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SNS는 다양한 세대의 언어문화를 목격할 수 있는 곳이다. -2021 트렌드 노트-
# 언어도 나이 들어가고 있습니다만
그동안 인정하지 않았지만 '톡'도 하나의 언어임을, 그리고 지금은 디지털 언어가 표준말이 되고 있는 시대라는 이 문장에 격하게 공감한다. 언젠가 심리학자 김경일 교수 강의에서 세대별 톡의 차이를 화면으로 본 적이 있다. 5,60대 톡은 일기 쓰듯 길고, 물결무늬 도배에 프사는 온통 등산이나 꽃이다. 3,40대 프사는 온통 아이 얼굴이며 대화 내용도 그랬다. 밀레니얼 세대는 단답형에 이모티콘으로 감정표현을 하는 화면. 톡 하나만 '딱'봐도 세대 차이가 확연하다. 어느 게 어르신이고 젊은 친구인지 단박에 알 수 있으니 디지털 언어에도 '나이'가 있다. 얼굴만 늙는 게 아니라 언어도 나이가 든다는 트렌트 노트의 이 문장처럼, 오늘날 대한민국의 표준어는 '디지털 언어'란다. 지금, 여기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새로운 표준어인 SNS 언어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물결무늬도 그만 쓰고 웃음 표시도 그만하고 상대방이 보기 편하게 단답형으로 써야 한단다. 전화하기 전에 카톡으로 먼저 의사를 물어야 하는 것도 필수 매너. 서로 소통하려면 디지털 언어를 아는 것도 필수. 그래도 이 한마디는 하고 싶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