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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uisKurts Jul 25. 2021

가슴이 뛰는 직업을 선택한다는 것은,

마음이 매 순간 동요하는 날들

가슴이 뛰는 직업을 선택한다는 것은,               




펜대를 잡고 수없이 자소서를 쓰기를 삼 년. 수없이 많은 자소서 관련 도서와 자기 계발 도서 등 수만 가지 도서를 통달하듯 읽어내렸고 토익이나 토스 오픽은 물론이고 각정 어학과 관련된 자격증은 기본으로 갖추려 노력했고 더불어 기사 자격이라는 단위 높은 자격증에 목메고 이 자격증만 취득하면 그저 좋은 곳에서 일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에 빠졌다.     


그럼에도 지치지 않았다. 그럼에도 매 순간이 흥분의 도가니였고 매 순간 열과 성을 다해 하고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고 최선을 또 더했다. 단순히 오늘 하루 허투루 시간을 보내는 것을 넘어 어떻게 하면 같은 시간을 알뜰살뜰 쓸 수 있을지를 고민했고 그 목표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서였다.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었을까. 어떤 회사에 들어가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일까. 내가 좋아하는 일은 무엇이며 나는 어떤 사람일까를 스스로 납득시킨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스스로를 냉철하게 바라보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어야만 출발선에서 비로소 달릴 채비를 끝낸 셈이다.     


하루 열두 시간 토익책을 바라보며 단어를 외우고 리스닝을 하고 영문 도서를 바라보는 일이 지루하지 않았다. 오히려 설렜다. 누군가에게는 정말 보잘것없겠지만 첫 토익을 치르고 나섰던 시험에서 400점을 맞고 허탈하게 웃었다. 괜히 신발 사이즈라는 말이 나온다는 게 아니라는 듯 턱없이 적은 점수를 맞았다. 시간 배분도 못했고 전반적으로 준비되지 않은 채 시험을 치르자 절망스러운 점수표를 들 수밖에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나라는 사람은 정말 평균 중에 평균이다. 뛰어나지도 않고 부단히 노력해야 겨우 중간에 머물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가지는 주변에서 흔하디 흔하게 볼 수 있는 그런 사람이다. 부단히 노력해서 겨우 중간을 맞추고 뿌듯해하며 스스로를 바라보며 만족스러워한다. 정말 토익이라는 시점조차도 어찌나 어렵던지 무려 다섯 번을 보면서도 700점 근처에도 못 갔다. 695점만 두 번을 맞고 누구나 맞는다는 700점 고지도 못 밟은 게 반년이었다.     


스스로가 대견스러운 건 포기를 잘 못하는 스타일이다. 한 10년 전쯤이었다. ‘포기는 김치 셀 때 쓰는 말이다.’는 말을 할 때가 있었다. 아재 감성이긴 하지만 힘들거나 어려운 일이 있으면 좌절하기보다는 스스로를 다독이며 마음을 키워나갔다. 조금씩 강해질 수 있도록 내면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갔다.     


꼬박 일 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800점 후반의 점수를 맞으면서 너무나 기뻤던 기억이 있다. 토익뿐 아니다. 부끄럽지만 컴퓨터 활용능력이라는 시험 실기도 무려 17번 만에 합격했다. 누군가에게 자랑스럽게 말할 시험 종목도 아니고 대단한 시험도 아니지만 뛸 듯 기뻤다. 내가 준비한 시험을 내가 열심히 노력하니깐 되더라는 것을 증명한 셈이었으니깐. 그거면 됐다.           






         


부단히도 노력했다. 원래 성실하니까 늘 그렇듯 열심히 했던 것은 아니다. 늘 무언가를 끊임없이 준비하는 것을 좋아해서 무언갈 계속 도전했던 것도 아니다. 그저 하고 싶은 일이 있었고 그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내가 달려가야 할 길이 분명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길이 없으면 길을 닦으며 걸어야 하고, 누군가가 잘 닦아놓은 길이 있다면 지도를 보며 제대로만 쫓으면 됐다.     


수없는 좌절을 맛봤다. 굴지의 항공사에 문을 두드린 건 수 십 차례. 아무리 노력해도 최종 전형에서 물먹는 경우가 많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톱니바퀴가 틀어지듯 자꾸만 길이 엇갈렸고 꿈을 좇는 것은 의미 없는 일처럼 자꾸 방황하게 됐고 자존감을 갉아먹는 곰팡이처럼 속이 썩어 들어갔다. 그렇게 삼 년이 흘렀다.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고향에 내려가 대충 아무런 공장에나 가서 일해야지.’라며 마지막 두 달만 더 준비해보자며 책을 펼쳤다. 당시 29살 4월 무렵이었고 하반기 공채까지만 준비하고 안되면 더 이상 꿈을 좇는 일 따위는 하지 않겠다며 다짐했다. 삼 년을 준비했으면 충분히 많은 시간 준비했고 이제 더 이상 후회는 없을 거라며 자신을 위로했다.     


가슴으로 울었지만 울지 않았다. 마음이 아렸지만 무릎을 꿇지는 않았다. 내 마지막은 여전히 남아 있다 믿었고 매 순간이 여전히 도전이고 짊어져야 할 순간들이라 믿었다.                    








“항공기 타이어 정말 무거운데, 보기보다 어렵고 힘든 일이에요. 무거운 것도 잘 나를 수 있겠어요?”     


내가 마지막으로 받았던 질문이다. “네! 그보다 더 힘든 일도 많이 해봤습니다. 맡겨만 주십시오.”라며 힘차게 대답했고, 확신했다. 이번에는 나에게도 기회가 왔음을. 나도 더 이상 주눅 들고 마치 패배자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 능동적이고 자존감 높여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고.     


가슴 뛰는 직업을 선택한다는 것은, 돈을 벌고 사회생활을 잘하는 의미 이상의 것이 있다. 매 순간 힘든 순간이 즐비한 곳에서도 견디고 버티고, 무엇보다 자기가 행복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의미다.     


가슴 뛰는 일을 한다는 것은 인생에 있어 꼭 한 번은 부여잡고 노력해 볼 가치가 있는 일이다. 인생의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뜻깊은 순간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가슴 뛰는 일을 한다는 것은, 두 번 세 번, 다시 그 순간이 오더라도 다시 같은 결정을 하겠다는 다짐과도 같다.     


가슴이 뛰는 매 순간을 만들어간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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