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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uisKurts Nov 27. 2020

단지, 대화를 하고 싶었을 뿐이야

어른이의 어른광

하루 종일 입에 거미줄을 친 것처럼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입을 다물어야 하는 날이 있다. 딱히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가늠이 서지 않고 옆에 있는 사람과도 이야기하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아 입을 꾹 다문다. 어떤 날은 9평짜리 원룸에 혼자 앉아 하루 종일 혼자만의 생각에 빠진다. 딱히 이야기를 할 상대도 없고, 그렇다고 어딘가에 가서 주절주절 떠들 수 없는 그런 고독한 하루가 있다.


단지,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 누군가와 소통을 하고 싶고, 이야기를 하고 싶은 날이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내 이야기를 소소로이 풀어내고 싶고 내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자체로도 즐거운 날이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마음가짐을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에게 하는 이야기가 신나고 나에게 삶의 활력소가 되는 날이 된다.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그렇다. 말을 줄이고 듣는 귀를 열라고 하지만 참 뜻대로 되지 않는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내 이야기를 더욱 하고 싶고 내 이야기를 풀어가는 게 좋다. 주변 사람들이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내 목소리를 통해 들려주는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환호가 될 때 삶의 의욕을 느끼게 되는 그런 순간이 있다.


유독 일이 풀리지 않는 날이라 스스로 상념에 빠진다. 주변에 답답함을 토로하고 싶지만, 그 답답함이 누군가에겐 듣기 싫은 이야기가 될 수 있기에 입을 다문다. 그러다 대화가 통하는 상대를 만나면 입을 열고 이야기를 풀어낸다. 하루 종일 닫혀 있는 입을 열고 비로소 세상과 소통하는 시간이 되기 때문이다.


어릴 땐 모든 게 참 편하고 좋았다. 어린 마음에 찡얼거리거나 온갖 호기심 때문에 이것저것 질문해도 엄마는 정말 충실이 답해줬다. 귀찮았을 법한 일에도 한결같이 소통해주셨다. '이건 뭐할 때 쓰는 물건이야?'나 '이건 뭐야?'등의 사소한 질문에도 답을 꼭 생각하고 답해주셨고 소통을 하는 재미에 입을 열고 눈을 똘망똘망 뜬 채 세상과 소통했다.


세상을 알아가면서 궁금함도 질문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성장한다는 것은 질문을 잃어버리는 일과 같았다. 궁금한 일도 줄기 시작했고 너무 당연한 것을 질문하면 '이것도 모르냐'며 핀잔을 받기 시작한 어느 순간부터 입을 열고 궁금해하는 것을 멈칫하게 됐다. 당연한 사소한 것도 모를 수 있다고 생각했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르는 것이 많은 성인은 '무식하다'는 답변만 돌아올 뿐 '책 좀 읽으라'며 받는 핀잔에 입을 닫아버렸다.








세상과의 단절은 너무나도 간단하고 치명적이다. 누군가와 소통하는 힘을 잃고 무언가를 개선하려는 의지를 잃는 것은 정말 그야말로 한순간이다. 어떻게 극복하려는 듯한 액션이나 의지를 갖기도 쉽지 않다. 어렵사리 벗어나려는 어둠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보면 그 의지를 잃고 '의지박약'이 되어 무언가를 시도하려는 힘을 잃게 되어버린다.


학교나, 직장, 혹은 모임 어디에서든 대화의 단절은 너무나 쉽게 생겨버린다. 나와 맞고 대화가 통하는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대화하는 법을 얻지만 반대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고독함을 견딜 수밖에 없는 세상은 너무나 견디기 힘들다.


초등학생은 싫으면 싫다 짜증이 나면 짜증 난다며 친구에게 투정도 부려보고 투덜대며 싸워보기도 한다. 주먹을 날릴 때도 있고 서로 머리채를 붙잡고 싸울 때도 있다. 왁자지껄 떠들고 싸우고 나면 진이 빠진 채 화해를 하고 관계를 개선해 나가기도 한다. 그런데 참 힘겹게도 성인이 되면 될수록 한 번 알 수 없는 미묘한 벽이 생겨버린 관계는 소통의 단절을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제 아무리 노력하고 대화를 이끌려고 해 봐도 대화는 더 이상 진전되지 않고 마치 벽에다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답답함이 가중될 뿐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어른이 되면 될수록 그 무게감은 배가 된다.


한 부장님이 어느 날 다급히 부르시며 손짓을 하셨다. 너무 다급히 부르시기에 단걸음에 쫓아갔다.


"네, 부장님 부르셨습니까?"


"아까 내가 하기 힘들어 보인다는 거 세 시간에 걸쳐서 했어. 어휴 나 힘들다 아주. 이것 좀 봐봐."


하루 종일 모니터만 뚫어져라 쳐다보던 부장님의 얼굴에서 피곤함에 찌든 얼굴 위로 마치 칭찬이라도 해 달라는 세 살짜리 아이처럼 싱글벙글한 표정이 느껴졌다. 아침부터 번거로운 자료를 정리해 준비할 거라고 짧게 말해주셨던 부장님은 오후 느지막이 상기된 얼굴로 바라보며 고생한 성과를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주절주절 거리며 듣는 이야기는 5년 전, 10년 전 이야기까지 이어지기 시작했다. 마침 듣고 싶었던 이야기라 열심히 맞장구를 치며 이야기를 듣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이들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필요했던 걸까' 아니면 '어른이도 어른광'을 피우고 싶은걸까.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은 더 침묵하고 무거워야 한다지만, 단지 대화를 하고 싶은 날이 있다.


사소한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투정을 부리기도, 소소한 공감을 원하는 날이 있다. 그러다 그 마음이 맞으면 어느덧 주절주절 떠들고 싶은 날이 있다. 비 오는 날 파전에 막걸리에 취해 평소에는 못했던 속마음을 모두 다 내비치며 내 오늘의 하루를 털어버리고 싶은 날도 있다.


작은 고요함을 벗어나 입을 열고 세상과 떠들어보고 싶은,


그런 대화를 하고 싶은 날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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