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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uisKurts Oct 01. 2021

성격이 밝아 생긴 우울증,

아무도 모른 채 생긴 감정의 변화는 서서히 스스로를 잠식시킨다



문득, 그런 생각을 한다. 웃음이 많고 성격이 밝은 사람은 남에게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뽐내고 선한 영향력을 펼치지만, 밝은 에너지는 끊임없이 샘솟는 화수분과 같을까? 긍정적인 사고를 갖고 생활한다고 하더라도 한계는 있지 않을까. 평소 밝은 성격 탓에 많은 이들에게 인기도 많고 업무도 잘하던 동료가 있었다. 어느 날 아주 지친 얼굴로 내 옆에 앉은 채 질문을 하나 던졌다.     


‘사람들은 내가 너무 편한가 봐. 아니, 내가 너무 호구인 걸까?’     


평소 대인관계가 좋아 많은 사람과 원만한 관계를 지닌 동료였지만 반대로 그런 좋은 관계 때문에 정말 많은 사람이 그를 찾고 도움이 필요할 땐 그에게 사소한 부탁부터 어렵고 복잡한 일까지 떠넘기기 일쑤였다. 종종 옆에서 보고 있자면 업무가 편중되어 매일 퇴근도 늦어질 정도로 업무량이 많았다.     


윗분들도 알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사람 관계가 좋은 건 개인의 역량이고, 업무를 특히 잘하는 편에 속했기에 업무를 잘해서 발생한 문제와도 같아서 달리 해결책이 뚜렷하게 없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옆에서 한숨을 쉬며 퇴근도 못 하는 날에는 뚱한 얼굴을 하며 한껏 붉어진 얼굴로 겨우겨우 화를 삭이며 일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었다.     


곁에서 자주 보며 대화를 나눴기에 말은 하지 않아도 그의 심경을 퍽 잘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랬기에 그가 달리 큰 말을 하지는 않았어도 표정만으로도 그의 속내를 읽을 수 있었다. 그런 그와 내가 어느 날 사내에서 우울증 검사를 받았던 적이 있었다.     


사소하고도 단순한 질문부터 다소 심오한 질문까지 이어졌다. 간혹 어떤 문항은 생각이 필요한 질문들도 있었는데, 응답에 따라 각 질문에 대한 답은 1~5점까지 구성되어 있었다.      


최근 회사에서 업무적인 만족도도 높고 다양한 업무들을 하면서 불만족이라는 것을 꽤 느껴보진 않았지만, 이상하게 회사 업무를 하면서 두통이 서서히 쌓이기 시작했다. 업무를 하다 보면 괜히 지치고 능동적이지 못하고 능률도 저하되어 있었다. 어떻게든 끌어올리고 싶어 운동한다거나 좋은 생각을 하기도, 때로는 휴가를 통해 마음의 힐링을 보내고 오면 기분 전환이 되어 마음이 편안해지기도 했었다.     


총 50점 만점 중에 20점 미만이면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일상생활 간에 문제없는 편에 속했고 40점이면 중증인 수준에 속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쥐어 잡고 괜히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으면 어떡하나 싶어 하나씩 체크를 하며 점수를 셀 무렵 괜시리 한숨이 나왔다. 아무래도 심각해 보였다.     


24점. 중증스트레스 초입 단계. 역시 스트레스가 많다고 느꼈던 게 잘못 느낀 게 아니다. 꽤 심각한 점수다. 분명히 스트레스를 평소에 많이 받고 있었고 업무를 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이런저런 고민이 앞섰다. 그즈음 함께 교육을 듣던 동료를 보니 뭔가 답답한지 땀을 닦으며 옷을 살짝 털었다. 그 역시 점수를 정리했는지 하나하나 체크한 A4용지 위 점수를 정리해둔 것이 보였다.     


응? 39점? 긴가민가, 잘못 봤나 싶다 괜히 눈을 한 번 더 비볐다. 그리고 이윽고 정리해둔 수치를 보면서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스트레스를 전혀 받지 않았을 것 같았던 동료에게 오히려 남들보다 훨씬 더 높은 스트레스 수치가 나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서 다른 동료들의 점수도 여러 비교해봤다.     


나와 비슷하게 나오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대게는 스트레스 수치가 그리 높지 않았고 평이한 감정을 가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상했다. 남들보다 훨씬 더 높은 수치를 가지고 있을 법한 동료였는데 그렇게 힘들어했다니. 당연히 근심이나 걱정이 덜할 것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고 조금 더 솔직담백한 대화를 위해 시간을 가졌다. 비교적 최근 생긴 육아 스트레스와 업무 과중은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고 무엇보다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입장에서만 있다 보니 정작 본인의 이야기를 하지 못해 답답한 감정이 쌓인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대화 하나만으로 다운되었던 기분이 좋아지고 상황이 나아질 그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 사소한 대화가 힘이 되고 상황을 바꿀 수 있도록 만들 기반이 될 수 있을 그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오히려 내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해줄 수 있는 사람과 사소한 대화 하나는 같은 어려운 상황도 이겨낼 수 있는 활력소가 되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성격이 좋아서 자신을 옭아맸다. 성격이 좋아서 남에게 투정을 부리지 못했고, 이야기하지 못해 속앓이가 점점 심해졌다.     


좋은 성격과 밝은 성격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도 매 순간 긍정적이고 스스로 힘이 될 수 있는 피드백을 주기는 어렵다. 그런 이들이 받는 우울증은 2배, 3배가 될 정도로 더욱 악질적이고 마음을 치명적이게 다치게 만든다.          



“넌 호구가 아니야. 넌 지금, 스스로 회복할 시간이 필요한 것뿐이야.”        


  

사소한 말, 사소한 힘, 여전히 성격이 밝은 이들에게 나는 이따금 관심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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