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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uisKurts Mar 18. 2021

외향적지만,내향적인 사람

스스로의 힐링이 필요한 당신에게

유달리 평온하고 상쾌한 날이다. 어렵사리 뒤척이다 헝클어져 있는 이불을 잡고 튀어나와 있는 발목을 뒤덮었다. 따뜻한 전기장판 속 안에서 커다란 이불 안에 누워 아무 생각 없이 눈을 감고 시간을 즐긴다. 머리 위 놓여있는 휴대폰이 어째 잠잠하다. 시계가 울릴 때가 됐지 싶어 눈을 힐끔 떴다가 밖을 살핀다. 왠지 모르게 어둡다. 긴장, 고요함 나도 모르게 화들짝 놀라 휴대폰을 놀려 움켜쥐며 배경화면을 켰다.


[5:45]


안심이다. 아직도 꼬박 한 시간은 더 잘 수 있다. 신기하게도 푹 자고 7시에 일어난 날 보다 묘하게 조금 일찍 일어나서 이렇게 안심을 하고 조금 더 잠을 자면 나도 모르게 더 많이 쉰 듯한 느낌이 들고 나도 모르게 안심이 된다. 모찌 인형을 다리 사이에 끼고 옆으로 누워서 잠을 좀 더 만끽하기로 한다. 그렇게 어렵사리 다시 한번 만족하며 잠에 들고 시간은 흘러 일곱 시가 된다.


따르르르르릉.


자, 이제 시작이다. 주섬주섬 자리에 일어나 침대에 앉아 잠깐의 명상을 한다. 푹 자고 일어나도 좀처럼 잠이 쉽게 깨지 않는다. 휴대폰을 열어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을 열고 듣고 싶은 영상을 켜 두고 음성을 들으며 양반다리를 하고 기분을 전환한다. 나도 모르게 훌쩍 커버려 어른이 된 날 이후로 하루하루는 매우 치열하고 단순히 아무 생각 없이 하루를 보내다 보면 지친 채 들어와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들이 되기에 오늘도 마음을 다잡는다.


활발한 사람이라면, 쾌활한 사람이라면 감정 기복은 비교적 덜 한 편일까? 걱정은 많이 없는 편에 속할까? 아니면 속으로 생각을 많이 하는 내성적인 사람이라면 내면의 생각을 더 잘 정리하는 편이기 때문에 고민이 적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외향적인 사람은 근심이나 걱정도 비교적 쉽게 떨쳐낼 수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꽤 활발하고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 학교나 직장에서도 꽤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기도 했으며 대화를 주도적으로 이끌고 만들어나가는 것을 좋아했던 적이 있지만 유달라 집에 오면 달라지는 성격이 있다. 밖에서 하하호호하고 기운을 뿌리고 다니지만 막상 집에 오면 혼자서 생각하는 것을 곱씹고 많은 생각에 잠기는 성격의 유형이 있다.


외향적이지만 내향적인 사람이 있다.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을 즐기지만 혼자 있는 것을 또 즐기는 편의 사람이 있다. 딱히 누군가와 어울리는 것이 불편한 것은 아닌데 혼자서 유튜브를 보거나 경제 공부를 좀 더 해보거나 혹은 글을 쓰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 어느 순간 더 많은 세상의 일부가 되어버리는 순간이 있다.


일을 하며 하루에도 수십 통씩 걸려오는 전화를 붙잡고 이렇게 일하고 저렇게 일하면서 문제는 없는지 이 문제는 이렇게 해결하라며 해결책을 제시하고 좋은 방향과 그른 방향을 꼼꼼하게 따지면서 업무를 처리하는 업무 담당자로서의 내 모습을 사랑한다. 믹스 커피 한잔을 타고 선선한 바람을 맞으면서 바람을 쐬며 마시는 커피 한잔이 그리 꿀맛이고, 잠깐의 여유와 대화까지 섞이면 사회 생활은 담백하고 매력적이게 변한다. 거기에 매달 꼬박 꽂히는 월급은 나의 하루를 더욱 빛내준다.


업무에 열정과 에너지를 쏟고 난 뒤 퇴근 시간이 될 무렵 나도 모르게 기진맥진해진 나를 보며 스스로에게 대견하다 칭찬하며 오늘은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를 되짚는다. 외향적이지만 내향적인 사람의 장점은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힘을 지녔다는 점이다.


퇴근하며 하루 새 쏟은 피로를 일터에 두고 운전을 하며 집을 가는 고요한 길 작은 노랫소리가 더해져 온종일 힘들게 눌려있던 '애써 에너지를 만들던'모습의 나에서 '스스로를 채우는 나'로 돌아간다. 휴대폰의 배터리가 충전되듯 사람도 매일 충전의 시간이 필요하다. 잠을 자며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이 있다고는 하나, 이는 그저 피곤함의 에너지를 채우는 행위지만 그 이면에 영혼의 에너지를 채우는 시간도 필요하다.


귀신을 믿거나 종교를 믿는 편은 아니지만 스스로가 갖는 힐링의 시간은 이를 보충해주는 약속된 시간인 셈이다. 격렬하고 때론 과격하게 100m 달리기를 전력 질주하듯 러닝머신에서 땀을 흠뻑 빼고 나서 집으로 돌아와 집 앞 책상에 앉으면 갖는 이 순간 하루가 멈춰버린 듯한 고요한 시간이 주는 묘미에 황홀함을 감출 수 없다. 특히 새벽 시간이 갖는 시간의 우아함은 스스로를 더욱 그 시간에 매료되게 만들어간다.






외향적이지만 내향적인 나는 스스로를 사랑한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이 정도의 난관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며 우습게 털어내며 가벼운 웃음으로 이겨내는 외향적인 강함을 가진 나의 모습을 사랑하고, 연인이나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칼이 되어 돌아오는 가슴 아픈 말들을 들을 때면 좋은 방향으로 이끌고자 대화를 통해서나 유연하게 대처하는 진중한 사람의 나의 모습도 격렬하게 멋지다.


나는 그저 외향적인 사람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도 어쩌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고 그 보충의 순간이 필요한 것처럼 항상 외향적일 수는 없다. 조증과 울증이 합쳐 조울증이 왔다고 하는 것처럼 사람은 항시 한쪽의 극단적인 사람이 될 수는 없는 법이다.


10년 전쯤 들었던 말인데 여전히 아름아름 생각나는 말이 있다.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지고 나서 했던 말인데 "지금은 너무너무 괜찮아. 기분도 좋고, 행복해. 나 조증인가 봐. 그냥 이것저것 다 좋아 요즘은." 그 말이 그토록 서글프게 들렸던 적이 없었다. 내가 힘들지만 더 즐겁고 행복하게 지내보려 애쓰고 있는 중이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인 셈인데 스스로를 감싸고 뒤덮고 방어막을 쳐둔 채 어떻게든 칼을 막아서겠다는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진 기억이 있다.


그렇다고 외향적인 사람이 굳이 내향적인 사람이 될 필요는 없고, 반대로 내향적인 사람이 외향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 애를 쓰라는 말은 아니다. 어느 한쪽이든 단 하나의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 할 지라도 자신의 모습에 반해 남들이 잘 모르는 이면적인 모습이 있다면 그것을 통해 자신의 힐링 타임이 항상 존재한다는 것을 나타낸다는 것일 수 있다.


나 자신을 들여다 보고 나 자신이 가장 우선시되어야 한다. 나 자신의 쉬는 시간이 없고 내가 괴로워지는 삶은 기어코 나락으로 빠지기 십상이다. 스스로의 힐링이 필요한 당신에게,



나는 내향적인 사람입니다.

나는 외향적인 사람입니다.



진정한 나의 휴식을 위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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