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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이랑 Feb 17. 2019

<동화로 떠나는 내면 여행 2탄-한국&일본 동화읽기➃

아빠를 잃고, 아빠를 극복할 것이다
『내 멋대로 혁명』(서화교, 낮은산, 2017) 



1.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는다

  『내 멋대로 혁명』(서화교, 낮은산, 2017)에 나오는 중학교 1학년 여자아이 우연이는 천사다.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 


  이 세상 모든 가족이 그렇듯, 우연이네 가족도 특별하다. 우연이는 아빠와 한 집에서 같이 살지 않는다. 엄마, 외할머니와 함께 산다. 엄마는 청각장애가 있고, 할머니는 암에 걸려 입원 중이다.

  엄마와 아빠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

 

  『내 멋대로 혁명』 우연이는 아빠를 다섯 살 때 처음 만났다. 이것은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우연이는 아빠가 다른 여성과 결혼하여 낳은 남동생을 무척이나 예뻐하고 사랑한다.    


나한테는 월급을 꼬박꼬박 받아 성실하게 보살펴 주는 아빠나 엄마가 없다. 외할머니가 계시긴 했지만, 시장에서 반찬 장사를 하고 애인을 만나러 다니느라 늘 바빴다. 나를 사랑하는, 나의 보호자인 엄마는 청각장애인이다. 나는 엄마를 보살펴야 했다.(『내 멋대로 혁명』, p23-24)    


  우연이는 어렸을 때부터 귀가 들리지 않는 엄마를 대신해 입이 되고, 집안일을 돌보고, 식사도 스스로 챙기는 아이이다. 하지만 우연이는 결코 자기 연민에 빠지거나, 자기 처지를 비통해하거나, 주눅이 들어 쩔쩔매어 사는 아이는 아니다.  


2. 내면이 탄탄한 아이이다

  『내 멋대로 혁명』의 우연이는 야무지며 밝고 당당하다. 우연이의 엄마 또한 그러하다. 엄마는 청각장애가 있지만 야구를 좋아하고, 클럽에서 춤을 즐기고, 키가 크고 날씬하며 아름답다. 물론 이 모든 걸 다 우연이가 물려받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엄마처럼 야구를 좋아하고, 가족을 사랑하고, 친구를 사랑하고, 외사촌인 상지 언니를 사랑하고, 그리고 독립적인 아이이다.  


엄마는 단 한 번도 나한테 ‘엄마가 장애인이어서 미안해.’ 같은 드라마에 나오는 말을 하지 않았다. (…) 

상지 언니 말에 따르면 엄마는 날라리, 춤꾼이다. 내가 아는 엄마는 딸이 빨리 커서 독립하기를 바라는 씩씩하고 강한 엄마다.(『내 멋대로 혁명』, p31-32)    


  우연이의 엄마는 내면이 탄탄한 여성이다. 우연이도 그렇다.


  아들러는『삶의 과학』(정명진 옮김, 부글북스, 2014)에서 “우리는 모든 아이들을 독립적인 존재로 키워야 한다. p102)”면서, “나쁜 효과를 낳는 것은 절대로 육체적 장애가 아니다. 장애를 가진 사람의 태도이다.(p56)”라고 강조한다. 우연이의 엄마는 비록 육체적 장애를 지녔을지라도 연민이나 열등감에 빠진 사람이 아닌 정신이 건강한 사람이다.             


3. 참 다행이다

  『내 멋대로 혁명』에는 참 괜찮은 사람들이 여러 명 나온다.

 

  『아버지의 딸』(이우경, 휴 출판사, 2015)에서 저자 이우경은 “역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심리적 탄력성을 가지려면 수호천사와도 같은 한 명 이상의 성인이 필요(p127)”하다고 하는데, 『내 멋대로 혁명』에서는 먼저 외사촌언니가 그렇다. 그리고 서울과 제주도에 한 명씩 있는 우연이의 두 베스트 프렌드가 그렇고, 제주도 게스트하우스의 윤호 아줌마가 그러하며, 엄마와 외할머니를 만나러 요양원 가는 길의 버스에서 마주친 김천 할머니 또한 그렇다.


  김천 할머니는 드라마로 치면 아주아주 단역이다. 그런데도 김천 할머니는 우연이의 아픈 외할머니를 위해 기도하고, 밤 봉지를 건네고, “우리 아가가 고생이 많구먼.(p47)”하며 우연이의 마음을 알아준다.    

 

전혀 생각지 못한 말에 가슴이 찡했다. 이제 곧 열다섯 살이 되는 청소년한테 ‘아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이지만, 아가라는 말을 듣는 순간 타임리프를 해서 일곱 살이 채 되지 않았던 때의 나로 돌아간 것 같았다.(『내 멋대로 혁명』, p47)    


  우연이가 가장 즐거웠던 순간의 기억을 되살려준 김천 할머니는 마녀이거나 마법사임이 틀림없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정신적으로 가장 든든한 수호천사는 엄마이다. 『내 멋대로 혁명』에서 우연이와 엄마는 애착의 농도가 진하다.

 

  『잃어버리지 못하는 아이들-어떻게 엄마의 사랑을 잃어야 하는가』(이수련, 위고, 2017)에서 저자 이수련은 아이가 독립적인 존재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엄마와의 애착관계를 끊고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는 데(p22-23)”있으며, “무언가 변화가 일어나고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단절과 도약이 필요(p55)”하다며 아래와 같이 말한다.   

 

엄마가 베풀어준 사랑이 정말로 의미 있는 사랑이 되는 것은 아이가 그것을 얼마나 잘 잃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엄마가 준 사랑을 잘 잃은 사람만이 현실의 고통 앞에서 쓰러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을 잘 잃을 수 있으려면 그만큼 견고한 사랑의 힘을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잃어버리지 못하는 아이들-어떻게 엄마의 사랑을 잃어야 하는가』, p29)    


  우연이가 본인 스스로 엄마를 잃을 수 있을까? 이 부분은 좀 미지수이다. 우연이가 스스로 능동적으로 엄마를 잃고, 엄마를 다시 되찾을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우연이가 엄마를 애착하고 집착하며 벗어나지 못할지라도 『내 멋대로 혁명』의 엄마 쪽이 적절한 때 치고 빠져준다.


  어디 애착관계가 엄마와만 있겠는가. 아빠와도 있다. 우연이와 아빠는 우연이가 다섯 살 때 서로가 처음 만나 애착관계가 형성될 골든타임을 벗어나고 말았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우연이와 아빠 사이에 애착관계가 제로인 것은 아니다. 애착관계가 없고서야 어떻게 제주도까지 홀로 찾아 나설 수가 있단 말인가. 엄마와의 관계에서는 혁명가 같은 엄마로 인해 우연이가 애착관계에서는 주체가 될 찬스를 놓치고 말았지만, 우연이는 아빠와의 관계에서 본인 스스로 주체가 되어 아빠의 사랑을 신뢰하고, 그리고 아빠를 잃을 것이다. 아빠를 잃고, 아빠를 극복할 것이다.

    

4. 가족 이야기이다

   『내 멋대로 혁명』은 우연이를 중심으로 한 가족 이야기이다. 엄마, 아빠, 외할머니, 아빠의 새 가족들, 외사촌 언니, 아빠의 먼 친인척이 등장한다. 가족이라는 끈끈한 끈으로 인연이 이어지고 새로운 인연이 만들어지며 이야기가 펼쳐진다.    

 

할머니는 아프고 엄마는 멀리 있고, 아빠는 연락도 안 되고, 엄마는 청각장애인이고, 한 부모 가정이고, 집이 날아가고, 아빠는 나를 찾지도 않는다. 지금 여기서 더 좋아질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내 멋대로 혁명』, p46)    


  좀 있으면 15살이 되는 우연이에게 큰 난관이 휘몰아친다. 집을 잃고, 외할머니의 병에 더해 외국으로 이민 가서 잘 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아빠의 아내로부터 아빠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며 찾아달라는 연락을 받게 되는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내 멋대로 혁명』에서 가장 표면적으로 드러난 핵심 모티프는 ‘가족’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또 다른 핵심 모티프는 딸과 아빠의 이야기이다.       


5. 아빠를 찾아 나서다

  그렇다. 솔직히 『내 멋대로 혁명』에서의 우연이는 역할이 역전된 경우이다. 엄마를 보살펴주고, 행방이 묘연한 아빠를 찾아 나선다. 가출한 아이를 찾아 부모나 삼촌 이모가 동분서주하는 것이 아닌 아이가 부모를 찾아 나서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러한 이야기 구조는 이미 다른 이야기에서도 있었다.


  아버지인 고주몽을 찾아 나선 유리왕 신화가 그러하며, 에드몬드 데 아미치스의 『사랑의 학교』에서도 엄마를 찾아 떠나는 이야기가 있고, 일본 설화 중 인신매매로 팔려갔다가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은 동생이 성공하여 맹인이 된 엄마를 끝끝내 찾아내는「안주와 즈시오(安寿と厨子王)」이야기도 있다.

  나는「안주와 즈시오」 이야기를 책으로도 읽고, 흑백 영화로도 보았는데 누나 ‘안주’가 남동생 ‘즈시오’를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부분이 너무 처절해 볼 때마다 눈물이 난다. 그렇게 누나의 목숨을 걸고 살아난 즈시오는 엄마를 찾아내고야 만다.        

  우연이도 아빠를 찾아 제주도로 향한다. 


  아들러는『삶의 과학』(알프레드 아들러 저, 정명진 옮김, 부글북스, 2014)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누구나 모든 것을 직면해야 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특별한 상황이나 특별한 사람들을 배제한다면, 그는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지극히 개인적인 논리만을 이용할 것이다. 그래선 절대 안 된다. 사람에겐 온갖 사회적 접촉과 상식이 필요하다.(『삶의 과학』, p57)     


  『내 멋대로 혁명』에서 우연이는 다른 그 무엇도 아닌 자기 자신과 직면하기 위해 아빠를 찾아 나선다. 어쩌면 아빠는 하나의 어떤 일을 바꾸는 ‘계기’나 일이 풀려나갈 수 있게 ‘단초’를 마련해주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6. 도망치는 아빠

  세상에, 어렵게 발견한 아빠는 우연이를 보자마자 도망을 친다.     


“아빠!”

당연히 달려올 거라고 생각한 아빠가 주춤거리더니 뒷걸음질 쳤다. 전혀 예상 못 한 행동에 놀랐지만 천천히 한 걸음 내디뎠다. 그런데 아빠가 한 걸음 물러났다. 도로를 건너자 그만큼 멀어졌다. 아오씨이, 도대체 어쩌자는 건지. 5미터 남짓한 거리를 두고 나는 아빠를 째려봤다. 싹싹 빌어도 용서할까 말까인데 나를 보고 제대로 아는 척도 안 한다.

‘어, 어.’

뒷걸음질하던 아빠가 아예 등을 돌리고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등산용 작은 배낭이 아빠 등에서 달랑거렸다. 생각지 못한 반전이다. 나를 붙잡고 울면 어떡하나 고민했는데 나를 보고도 뒷걸음질 치는 아빠는 상상도 못 했다.

멍하니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아빠를 쫓아갔다.

“아빠, 아빠아!”(『내 멋대로 혁명』, p84)    


  도망치는 아빠와 뒤쫓는 딸의 모습이다. 이 모습이 조금은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슬프다. 그러면서 이 아빠는 왜 이렇게까지 하나 싶기도 하다. 딸의 모습을 목격 하자마자 도망치는 이 아빠가 왜 이러는지 궁금하다. 그래도 그렇지 세상에, 타지에까지 자신을 찾아온 딸 바로 앞에서 뒷걸음질 치며 도망치는 이 아빠 참, 비겁하다.      


7. 열등감 속에 있는 것은 아빠다

  누군들 안 힘들까. 다 힘들다. 우연이의 엄마 진미희 씨는 청각장애인이고, 외할머니는 애인한테 사기를 당해 집까지 잃고 암 투병 중이다. 방송 구성 작가인 외사촌 상지 언니는 진정성 있는 기획안을 애써 올려도 매번 떨어져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으며, 상지 언니네 방 한 칸을 빌려 쓰는 연주 언니는 3년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지만 춥고 덥고 아픈 감각도 다 잃을 지경이다.


  어디 이들뿐인가. 제주도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사람들도 힘들고, 새끼를 낳는 어미 개 ‘오래’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내 멋대로 혁명』에 나오는 모든 이들 중에서 가장 비겁하고 가장 연약하고 가장 자기 연민에 빠져있고 열등감 속에 빠져있는 존재는 바로 ‘아빠’다.    


  우연이는 아빠의 먼 친척뻘 된다는 게스트하우스의 주인 윤호 아줌마에게 “아빠가 나 보고 도망갔어요.(p92)”라고 말한다. 


  『내 멋대로 혁명』에는 각양각색의 개성 있는 여성 캐릭터가 등장한다. 그중 윤호 아줌마는 일반적인 모성성이 가장 강하게 드러나는 캐릭터로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윤호 아줌마는 아빠가 가족들의 버팀목이 되고 싶어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것은 어떤 사정이 있어서 그럴 터이니 이해해주라며 우연이를 달랜다.    

 

“같은 나이라도 키가 빨리 크는 사람이 있고 천천히 크는 사람이 있지. 어른이라고 해도 마음이 천천히 자라는 사람도 있어. 또 나이는 어려도 마음이 빨리 자라서, 어른보다 씩씩하고 용감한 아이들도 있잖아. 우연이가 조금만 기다려 주자. 곧 나타나겠지.”(『내 멋대로 혁명』, p93)     


  그러자 우연이는 생각한다.    


‘언제요?’라는 질문까지 윤호 아줌마한테 할 수는 없었다. 이 질문에 답할 사람은 아빠다. 내일 아니면 모레. 설마 내가 제주도를 떠날 때까지 도망 다니는 것은 아니겠지. 겨울방학은 다음 주 일요일에 끝이 난다. 오늘이 화요일이니까 늦어도 방학이 끝나기 전에는 나타나야 한다. 오늘이 첫날이라고 생각하자 뾰족한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았다.(『내 멋대로 혁명』, p94)     


  이 아이 무얼 아는 멋진 아이다. 그렇다 ‘질문에 답할 사람은 아빠’ 그 당사자 본인이다.   


8. 우리 모두 열등감을 갖고 있다

  아들러는 “우리 모두 열등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열등감은 병이 아니다. 오히려 건강하고 정상적인 노력과 발전에 자극제가 될 수 있다.(p81)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생이란 결코 놀이가 아니기 때문에 어려운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다. 인생의 길엔 언제나 어려운 상황이 벌어지게 되어 있다.(…) 

인간은 열등감이나 열등감 콤플렉스를 오랫동안 견뎌내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열등감이 사람들로 하여금 움직이고 행동하도록 자극한다.(『삶의 과학』, p86-87)       


  그렇다, 열등감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아들러의 말처럼 우리는 지금을 살아가는 존재이기에 그 무엇인가 각자 하나씩은 열등감이 있다. 문제는 너무 지나친 우월감이 위험한 것처럼 너무 지나친 열등의식에 빠져 타인마저 자신의 열등감 속에 끌어들이는 일일 것이다. 


  『내 멋대로 혁명』에서는 ‘아빠’라는 존재가 그런 상황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래도 『내 멋대로 혁명』에서의 이 아빠는 참 다행이다. 지금 자신이 처한 운명으로도 벅찰 지경인 딸이 아빠를 찾아 멀리서 찾아왔으니 말이다. 이 아빠야 말로 전생에 나라를 구하지 않고서는 이럴 수 없다.     


9. 그 누군가를 배제하지 않는다

  어떤 의미에서 우연이는 신체적 열등감이라 할 수 있는 장애를 갖고 태어난 엄마를 통해서는 혁명가적인 정신과 자존감을 이어받는다. 우연이가 열등감을 느끼는 것은 아빠와 아빠의 배우자를 통해서이다.  


  아들러에 따르면 “아이의 마음에 가해지는 가장 평범한 영향력 하나는 아버지나 어머니의 과도한 처벌이나 학대에 따른 억압의 느낌이다. 이 영향이 아이로 하여금 해방을 추구하도록 만들고, 간혹 이것이 심리적으로 누군가를 배제하는 태도로 나타난다.(p26-27)”고 한다. 


  즉 어렸을 때 경험한 억압이나 학대의 기억으로 인해 부모와 같은 성향을 띠는 사람을 자신도 모르게 ‘배제’하게 된다고 말한다. 어릴 때에 겪은 아픈 경험으로 인해 성장 과정에서 그러한 감정에 고착되어 있다보면 무의식 중에 소중한 그 누군가를 기피하고 배제할 수도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내 멋대로 혁명』에서 우연이는 어쩌면 ‘천진난만한 어린 시절’이라든가, ‘유치 찬란한 어린 시절’을 있는 그대로 향유하지 못하고 그 무언가를 억압하고, 아빠의 부재로 인해 상실감을 겪었을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우연이는 그 누군가를 배제하지 않는다.


  우연이는 제주도에서 두 명의 새로운 친구를 얻는다. 한 명은 같은 또래의 여자아이다. 이 여자아이는 한국에서 살기에는 눈에 띄는 어떤 신체적 특수성을 지녔다. 하지만 우연이는 이 아이와 가까워진다. 엄마로 인해 심리적인 억압을 받았다면 어찌 이 아이와 친구가 될 수 있단 말인가. 


  또 한 명은 연상의 남자아이다. 이 남자아이는 본인의 뜻대로 어떤 일이 잘 풀리지 않는 상황에 봉착해 있다. 괴로운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마치 우연이 아빠처럼 타인을 기피하고 꺼린다. 하지만 우연이는 이 남자아이를 좋아한다. 배제하지 않는다. 좋다. 이 또한 하나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10. 극복할 필요가 있다

   『내 멋대로 혁명』에서 우연이로 하여금 분노를 유발하는 존재가 둘 있다. 한 명은 아빠이고 또 한 명은 아빠의 배우자이다. 아빠의 아내가 유발하는 분노는 정말이지 골치 아픈 경우이다. 거의 폭탄에 가깝다. 아빠의 아내는 분노란 폭발물을 우연이에게 투하해놓고는 나 몰라라 한다. 우연이한테는 정말이지 엄청난 스트레스다.


  『스스로 살아가는 힘』(문요한, 더난 출판, 2014)이란 책에서 저자 문요한은 “살다 보면 당신을 아무렇게나 대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한 인간이 가진 가능성보다는 지금 ‘보이는 것’과 ‘가지고 있는 것’에 주목한다.”라며, “당신을 쉽게 재단하는 사람들에 대해 분노할 줄 알아야 한다.(p68)”라고 말하지만, 이런 사람을 대상으로 내쪽에서 분노를 표출하기란 쉽지 않다. 어쩌면 이 아빠의 아내는 그 누군가를 끊임없이 배제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다음이 아빠다. 사실 분노를 유발하는 근원이 되는 존재는 아빠이다.

  하지만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우연이는 아빠에게 자신 안에 있는 분노를 표현한다. 아빠의 배우자에게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을 우연이는 아빠에게는 할 수 있다. 


  우리는 가끔 내 안의 또 다른 감정인 분노를 정정당당하게 치고받을 존재가 필요하다. 『내 멋대로 혁명』에서는 아빠가 그런 존재가 되어준다. 이것은 정말이지 아주 다행이고, 또 중요하다.

  조금은 한심하고 우유부단하고 나약한 것 같았던 아빠이지만 자신이 유발한 분노를 딸에게 모두 전가하지는 않는다.  


  우연이가 겨울방학을 활용해 제주도까지 아빠를 찾아간 것은 우연이 자신이 살기 위해서이고, 자신 안에 아빠라는 존재를 어두운 면으로 남기지 않기 위해서였음을 알 수 있다. 

  만약 내게 분노를 유발한 가족 누군가를 내 안에 부정적인 모습으로 고착시켜 가두어두면 세상 속에서 만나는 그 어떤 대상에게 그 검은 그림자를 투사할지도 모른다.


  살다 보면 우리는 예상할 수 없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나 자신도 잘 모르겠고, 하물며 가족 형제조차도 잘 모르겠는 마당에 세상 속에서 만나는 각양각색의 다양한 인물들을 내 어찌 다 알겠는가. 내 안에 들어있는 부정적인 모습으로 고착된 존재로 인해 진정한 가치가 있는 존재를 알아채지 못한다면 너무나 안타깝다. 따라서 『내 멋대로 혁명』에서 우연이는 아빠를 극복할 필요가 있다.           


11. 그래야 본인이 주체가 되는 창조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융은 『분석 심리학』(칼 구스타프 융 지음, 정명진 옮김, 부글북스, 2016)이란 책에서 “삶에 적응하기 위해 가족 환경이라는 장애물을 극복”해야 한다며, “부모의 성격의 부정적인 면을 그대로 닮으면서 갈등과 장애 앞에서도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매며 그냥 살게 될 것이다.(p54)”라고 경고한다. 그리고는 “삶의 전체 움직임이 가족의 영향력이라는 마법의 원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p61)”라고 말한다.


   『내 멋대로 혁명』의 우연이도 자기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가족’이라는 마법의 원에서 한 번은 나올 필요가 있다. 그 하나의 찬스가 아빠와의 부딪침이다. 그리고 우연이는 이 아빠와의 마찰을 두려워하거나 기피하지 않는다. ‘갈등과 장애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매며’ 울먹이거나 약한 소리를 내거나 도망치지 않는다.  

   

  에리히 프롬은 『에리히 프롬 진짜 삶을 말하다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에리히 프롬 지음, 장혜경 옮김, 나무생각, 2016)에서, “태어날 준비는 용기와 믿음을 필요로 한다. 안전을 포기할 용기, 타인과 달라지겠다는 용기, 고립을 참고 견디겠다는 용기다.(p185)”라며 아래와 같이 말한다.    


다른 사람을 사실대로 본다는 것은 그를 투영 없이, 왜곡 없이 객관적으로 본다는 뜻이며, 이는 투영과 왜곡을 낳는 자기 내부의 신경증적 ‘악덕’을 극복한다는 의미이다. 내적 현실과 외적 현실을 인식하기 위해 완벽하게 각성한다는 의미이다. 그런 내면의 성숙에 도달한 사람만이, 자신의 투영과 왜곡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 사람만이 창조적으로 살 것이다.(『에리히 프롬 진짜 삶을 말하다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p190-191)   


   『내 멋대로 혁명』에서의 우연이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내 멋대로 혁명’을 제대로 일으켜, 아빠를 잃고 아빠를 극복하여 자신 안에 투영된 열등감이나 부정적인 면으로 인해 타인을 배제하거나, 투사하거나 하는 것이 아닌 본인이 주체가 되는 창조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12. 그렇다, 이는 바로 나 자신의 주제이다

   나는 『내 멋대로 혁명』의 우연이와 아빠의 이야기를 통해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 직면한 주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아빠를 잃고, 아빠를 극복할 것이다’는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의 의지 표명이다. 나는 가족이라는 마법의 원 안에서, 그 영향력 속에서 나오려 한다. 


  나의 아버지는 나를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해 주고, 일용할 양식을 주고, 집과 학교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힘써주셨지만 내게 있어 엄청나게 멋지고, 존경스럽고, 사랑스러운 인물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자신이 성장한 집에서 겪은 상처와 청년기의 고뇌와 좌절로 내면이 공허한 인물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열심히 농사를 지어 논밭을 늘리고, 농사에서 은퇴한 다음에는 풍수지리 관련 서적과 직접 수많은 산과 들을 탐사하는 공부를 통해 좋은 터와 묏자리를 잡아주는 지관으로서의 삶을 살며, 게이트볼 치기, 사진 찍기에 열을 올리며 매진하는 등 그 무엇인가에 도전할 줄 아는 진취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직면하지 못한 내면의 공허로 인해 잘하다가도 가끔 가족 그 누군가를 질리게 만들 때가 있다.

 

  융은 『분석 심리학』에서 “그렇다고 해서 물려받은 죄의 탓을 부모에게 돌려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직관적으로 부모의 무절제를 자신의 영혼에 반영하고 있는 민감한 아이는 자신의 운명을 자신의 특성 탓으로 돌릴 줄 알아야 한다.(p68)”라고 말한다. 나의 아버지는 그 자신이 갖고 태어난 성향으로 자신 부모의 그 어떤 부정적인 모습을 자신의 영혼에 반영하였는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거나, 가장 괴로운 사람은 아버지 본인일 것이다.


  나 또한 이런 예민하고 민감한 성향을 물려받았다. 지금 나는 나 자신이 직면하고 나 자신이 만들어내는 여러 일들을 나 자신의 특성, 바로 나 자신의 문제임을 알고 있다.

 

  그래서 심리적인 면에서 나는 아버지를 잃고, 아버지를 극복하고, 다시 아버지를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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