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함께 해온 심리 관련 공부모임에서 괴테의 《파우스트》를 읽었다. 《파우스트》는 여러 번역본이 나와있는데 원작에 고유의 줄번호가 매겨져 있어서 페이지를 대신할 수 있어 한 권의 책으로 통일하는 것이 아닌 각자 선호하는 번역서로 자유롭게 읽었다. 내용도 내용이었지만 특정 부분이 각각 어떻게 번역되었는지 살펴보는 즐거움도 컸다.
독서모임에서는 한 달에 한 번씩 적당한 양을 정해 몇 달에 걸쳐 읽었는데 나는 물론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고 참가했다.《파우스트》의 경우는 걸어서 30분 걸리는 동네 도서관에 소장된 책을 주로 이용했다.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파우스트》를 빌려 읽고, 반납하고 다시 빌리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마지막 모임을 남기고 도서관에 들러 책을 찾는데 서가에 책이 없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자주 빌려서 검색하지 않아도 어디에 꽂혀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며칠 뒤에 다시 도서관을 들렀다. 여전히 서가에 없었다. 검색을 해보니 대출 중이었다.
그래서 《파우스트》 읽기 마지막날에 지금까지 읽었던 번역서가 아닌 다른 번역서를 빌려 읽게 되었다. 사람은 참 간사하다. 아니 내가 간사하다. 마지막 읽기 모임에서야 처음으로 빌려서 읽고 가 놓고는 쭉 이 책으로 참여했던 한 멤버에게 나도 같은 책이라고 아는 척을 한다. 한 달 전의 모임 때까지만 해도 내가 전에 들고 간 책이 제일인 줄로만 알았다.
아직 반납일자는 충분히 여유가 있었지만 나는 우리 동네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고 근처 시장에 들러 야채를 사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날따라 6시대에 눈이 떠져 침대 속에서 꿈을 되새기며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있는데 갑자기 배가 고팠다.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도 배고프지 않으면 아침을 먹는 경우가 드물다. 그런데 너무 배가 고팠다. 벌떡 일어나 서둘러 아침밥을 챙겨 먹고 카톡에 온 이런저런 일이나 연락을 주고받고, 졸려서 다시 잠을 좀 잔 뒤, 동생과 통화를 하다 보니 벌써 오후 2시가 다 되었다. 점심은 거른다.
《파우스트》를 반납하러 가기 전에 인상적이었던 장면, 파우스트가 죽음을 마주하는 마지막 부분을 다시 펼쳤다.
한밤중 파우스트의 궁전으로 네 명의 회색 여인이 찾아오는 장면이었다.
여인들은 각각 ‘결핍’ , ‘죄악’ , ‘근심’ , ‘곤궁’을 상징했는데, 파우스트가 기거하는 궁전문이 닫혀있어 다른 세 여인은 못 들어가고 오직 근심만이 열쇠 구멍을 통해 들어간다. 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결핍은 그림자가 되고, 죄악은 없어지고, 곤궁은 외면을 당한다. 한 존재가 마지막을 맞이할 때 다른 모든 것은 들어오지 못 하나 오직 근심만은 끝끝내 인간 내면으로 침투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지금의 나에게도 근심이 많이 따르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파우스트의 방으로 들어오지 못한 존재들 중 ‘곤궁’에 특히 눈길이 갔다. 곤궁은 호강을 누리고 있거나 부자들에게는 외면을 당하는데, 지금의 나는 부자 친구나 내가 보기에는 호강하는 것처럼 보이는 친구들이 날 외면하는 것 같지는 않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고 정작 부자 친구들은 날 외면하고 있는데 내가 못 느끼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역으로 그 부자 친구들은 정신적•정서적인 결핍이 있어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을지도. 사람일은 모를 일이다.
배낭에 오늘 반납할 《파우스트》 달랑 한 권만 넣고 도보로 30분 걸리는 도서관을 향한다. 집 앞 골목 햇살이 따뜻해 순간 중무장을 하고 온 옷차림을 후회한다. 대로로 나서자 찬바람이 휘몰아쳤다. 같은 날, 같은 햇살, 같은 길거리인데도 이렇게나 다르다.
동네 공공 도서관이 공사 중이라 바깥에 비치한 도서반납함에 책을 넣고 시장으로 향한다. 도서관 바로 옆 시장이다. 도서관을 들릴 때마다 시장을 들린다. 잘 가는 야채 가게에 가기 위해서다. 마트에서 금값인 오이가 절반 가격이다. 느타리버섯, 피망, 당근, 브로콜리를 사 배낭에 담아 다시 집을 향해 걸어가던 도중 횡단보도 앞에 서있을 때였다. 넋 놓고 신호등만 보고 있는데 갑자기 인기척이 나며 누군가가 작은 봉지를 내밀었다. 작은 건빵 한 봉지였다. 멍 때리고 있다가 생긴 일이라 순간 내가 너무 놀라자 건빵을 건넨 분이 미안해한다. 나는 감사히 과자를 받아든다.
동네 어느 교회에서 나눠주었다. 사탕, 화장지, 물티슈, 행주 등은 자주 받아보았지만 건빵은 처음이었다. 신호등을 건너기 전까지만 해도 전혀 힘들지 않았는데 건빵 봉지를 손에 쥔 순간 배가 고프다. 책 대신에 온갖 야채가 든 배낭도 무겁기만 하다.
나는 건빵 비닐봉지를 뜯었다. 꿀맛이다. 길거리에서 음식을 먹어보는 것도 오랜만이다. 동네 도서관을 오고 가는 길에서 과자를 받아본 것도 처음이다. 점심을 건너뛰고, 곤궁한 날 알아본 것일까. 집에 도착할 때까지 작은 건빵 한 봉지에서 과자를 아그작아그작 꺼내먹고 그 힘으로 곧바로 시장에서 사온 브로콜리를 삶고 당근을 손질했다.
마트에서 산 가격보다 세 배나 싸고 세 배나 많은 양의 야채로 부족한 영양소를 채우고 냉장고를 채운다. 도서관을 가지 않고 곤궁한 채로 오늘이 지나고 내일이 지났다면 어쩌면 나의 이 육신의 곤궁이 정신의 결핍으로 변환해 이상한 그림자를 드리웠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도서관 덕분에 정신과 더불어 육신을 살찌웠다.
게다가 그 길에서 작은 건빵 한 봉지까지 얻었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