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때 남산도서관에 상주하다시피 하며 일본어를 공부하기도 하고, 서가에서 끌리는 책을 무작위로 꺼내 읽곤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책도 그때만났다.
독서모임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읽기로 했는데 각 도서관마다 세 명은 기본이고 많게는 다섯 명까지 예약 대기 중이었다. 페이지는 또 얼마나 두꺼운지, 도서관에서 내가 이 책을 빌려 읽기란 요원했다.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그래서 남산 도서관에 비치된 원서《街とその不確かな壁》를 읽고 참가했다. 열흘에 걸쳐 완독했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은 현실세계에서 40대 중반의 중년에 접어든 주인공이 불확실한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와 현실세계를 오고 가며 모색하는 내면여행 이야기로도 읽히고, 그림자를 직시하고 의식의 세계로 끌어오는 과정을 거쳐 자기 통합과 개성화 과정을 실현하는 이야기로도 읽혔다.
소설에서 도서유통에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주인공 ‘나’는 업무상 서점이나 출판사 관계자와의 만남이 잦은 데다 평소 책 읽기를 생활화하고 있었다.
다 읽고 놀란 것은 소설에서 도서관이라는 공간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주인공 ‘나’는 불확실한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에서도, 현실세계에서도 도서관 일을 한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도시에서는 오래된 꿈을 읽는 특수한 일을 하고 이쪽 현실세계에서는 갑자기 잘 다니던도서유통업무를 그만두고 지방의 소도시 도서관 관장이 된다. 저쪽 벽의 도시에서도 이쪽 현실세계에서도 ‘나’는 도서관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또다시 놀랐던 것은 현실세계에서 도서관 관장을 하는 ‘나’의 모습이다.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에서는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오직 ‘나’만이 가능한 특수 역할을 맡아 하지만, 이쪽 현실세계의 관장인 ‘나’는 직함만 관장일 뿐 실무는 도서관 업무 능력이 뛰어난 소에다라는 여성 사서가 모든 일을 도맡아 한다. 도서관 관장인 ‘나’는 특별채용된 경우로 전직 관장인 고야스 씨와 둘만의 비밀 대화를 나누거나, 도서관에서 상주하다시피 하는 특수한 능력을 지닌 옐로 서브마린 소년과 소통하거나 하며 도서관 안을 둥둥 떠다니듯 유영한다.
이렇듯 관장인 ‘나’는 집과 도서관을 오고 가며 누구보다도 출퇴근을 엄수하고, 정기적으로 장을 봐 손수 요리해 집밥을 차려 먹으며 영양을 챙기고 건강 관리를 하는 등 부지런하기가 이를 데가 없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도서관 관장이 된 것도 전 회사 동료의 도움으로 취직한 낙하산에 가깝다. 도서관 관장인 ‘나’는 불확실한 벽에 둘러싸인 도시에서 오래된 꿈을 읽고 있는 ‘내’가 떼어내거나 ‘내’게서 떨어져 나간 그림자이다. 그 그림자가 현실세계에서는 도서관이란 공간에서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림자 스스로 잘 나가는 직장을 그만두고 다른 많은 직장 중에서도 굳이 도서관을 찾아 이직하기는 했지만 자신의 본체 또한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의 도서관에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어쩌면 자연스러운 선택일 수도 있다. 천만다행인 것은 ‘나’의 그림자가 그 어느 다른 곳도 아닌 ‘도서관’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본체에서 떨어져 나와 어떤 의미에서는 버림을 받은 상처 많은 존재인 그림자가 도서관을 은신처로 생을 이어가는 장면은 눈물겹기까지 하다. 책을 읽다 보면 때때로 불확실한 벽 안의 ‘나’가 그림자 같기도 하고 도서관 관장인 ‘나’가 본체인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하지만, 나중에 서로 통합으로 가는 과정은 놀라움과 안도감을 준다.
무라카미 하루키의《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읽으면서 예전에 유튜브로 본 어느 명문대학교 도서관 열람실에서 10년째 지정석을 확보하고 같은 복장으로 같은 자리에서 연구하고 노숙까지 한 여성이 불현듯 떠올랐다. “중광 할머니”란 분이었다. 중광 할머니는 이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미국 명문대에서 인류학을 전공한 재원인데 당시 한국 사회에 적응을 못 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중광 할머니”에게 자신의 모교인 대학교 도서관은 일종의 절실한 도피처였던 것일까?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에서 ‘나’가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로 들어간 것은 첫사랑인 소녀를 찾아 나선 것이기는 하지만어쩌면 꿈을 읽는 ‘나’나, 옐로 서브마린 소년이나, “중광 할머니” 모두 너무 순수해서, 지나치게 뛰어나거나 탁월해서, 너무 많은 상처로 피폐해져서 등 다양한 이유로 일종의 현실세계와의 부조화나 갑작스러운 예기치 못한 사회부적응으로 인한 피난일지도 모른다. 발 딛고 살아가는 현실의 인간 사회에서 삶의 방향을 잃고벽에 가로막히자 오래된 선인들의 지혜가 보존되어 있는 도서관에서 그 해법을 찾으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보면《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의 그림자 ‘나’가 잘 나가던 도서유통업체의 일을 과감하게 그만두고 소도시 도서관 관장일을 찾아낸 것은 괴물화되는 것이 아닌 어떻게든 인간성을 회복하며 살아남기 위함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덕분에 벽에 둘러싸인 도시의 도서관으로 퇴행하며 침잠했던 본체인 내가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올 수 있었다. 만약 나의 그림자가 도서유통업체에서 계속 남아있었다면 나와 그림자의 통합은 어려웠을 수도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의 ‘나’를 낙하산이라느니, 명목만 관장이라느니 말했는데, 본체가 길을 잃고 헤맬 때 그림자가 지나친 욕망으로 괴물이 되거나 이상한 길로 빠지지 않고 도서관 안으로 피신해 정신과 육신을 돌보며 건강한 생활을 유지한 것이 참으로 다행이다는 생각이 든다. 나름 참 적절하게 사회 생활을 잘하는 그림자이다.
나또한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길을 잃고 헤맬 때마다 도서관을 찾곤 했는데, 그때마다 도서관은 삶의 나침반 역할을 해주었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에서 그림자 ‘나’는 사실 전직 관장인 고야스 씨에게 발탁된 것이나 다름없다. 누구보다도 큰 아픔을 겪은 고야스 씨는 그림자 ‘나’를 관장으로 채용하며 도서관의 역할에 대해 말한다.
失われた心を受け入れる特別な場所でなくてはならないのです
(잃어버린 마음을 받아줄 특별한 장소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도서관에 대해 이보다 더 잘 설명한 말이 있을까!
고독하고, 상처받고, 사랑하는 존재를 잃고, 삶의 길목에서 예기치 못한 일로 잠시 방향을 상실한 존재들이 세계 각국의 선인들이 남긴 책과의 만남을 통해 삶의 의욕과 방향성을 찾도록 도와주는 곳 바로 그곳 도서관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