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독서코칭을 하고, 독서모임, 그림책 강좌를 다니다 보면 한꺼번에 엄청나게 많은 책을 몰아서 봐야 할 때가 있다. 도서관에 들러서 책을 쌓아놓고 볼 때도 많지만 반드시 빌려야 할 책들이 생겼다. 도서 대출 권수를 초과했거나 도서관에서 빌릴 수 없을 경우에는 자주 이용하는 오프라인 작은 서점이나 대형 서점을 들러 구매하곤 한다. 그러다 보니 어느 사이에 책장이 빼곡해지고 정리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곤 한다. 도서관을 수시로 이용하건만 집에 수납해야 할 책이 늘어나있다.
그래서 가끔 도서관마다 내가 꼭 필요한 상황일 때 대출 권수가 배로 늘어나있거나 하는 날과 마주치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작년 9월 11일 용산도서관에서 있었던 일이다. 용산도서관에는 타 도서관에는 없는 오래된 동화책과 그림책이 있곤 해서 자주 이용하는 도서관 중에 하나다. 언제나처럼 자가대출기기에서 대출작업을 하는데, 내가 앞으로 대출 가능한 권수로 23권을 더 빌릴 수 있다고 뜬다. 지난 4월에 이어 두 번째다. 게다가 이번에는 대출기간이 무려 100일간이란다!
자세히 살펴보니, 노후된 도서관 곳곳의 환경개선 공사 덕분이었다. 나는 지금 ‘덕분’이라는 용어를 썼다. 하지만 이때의 덕분은 나중에 ‘때문’이 된다.
100일 동안 30권이라니 너무 매력적이다. 12월 말까지 반납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한 치의 의심 없이 그렇게 생각했다. 옛말에 “뒷간에 갈 때 마음 다르고 나올 때 마음 다르다”는 상황이 생길 줄은 이때에는 정말 몰랐다.
도서관 환경개선 공사가 들어가는 9월 25일 직전까지 야금야금 책을 빌려 30권 다 빌릴 야망을 가졌지만 대출가능한 기간인 2주가 순식간에 지나버렸다. 하지만 이때 30권을 다 채웠다면 나는 정말이지 폭망하는 상황을 초래했을 것이다.
집에 있는 책과 섞이면 반납에 불편이 생겨,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만 따로 한편 서가에 꽂아두는데, 용산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을 필요할 때 꺼내보고 읽어보고 할 때마다 그렇게 뿌듯하고 편할 수가 없었다. 실제로도 정말 유용하게 잘 썼다.
어느새 100일이 다 지나 12월 말이 되었다. 살포시 잊고 있었을 때쯤, 도서관에서 대출 도서 반납 예정일 안내가 왔다. 도서관에서 처음 막 빌렸을 때에는 “그래 그래 100일 줄 테니, 반납일 신경 쓰지 말고 맘껏 편하게 읽어, 괜찮아, 괜찮아.”라고 도서관이 내게 상냥하게 말하는 듯했다. “그렇단 말이지, 그럼 맘껏 읽을게.”하고 정신을 놓고 있었다. 그래서 반납 안내가 왔을 때에도 큰 위기감을 못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반납해야 할 날은 마침 연말연시였다.
2024년 1월 3일, 연체 1주일 째였다. 이날은 굳은 맘먹고 대출한 책을 배낭에 잘 담아 도서관을 향했다. 귀한 책을 공짜로 100일간이나 빌려주셔서 감사합니다란 말을 하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말하지 않길 잘했다. 1주일 연체로 인해 40일간 정지를 먹었기 때문이다.
진짜 세상에는 공짜란 없구나. 그래, 내가 제 날짜에 반납을 안 해서 생긴 일인 줄은 안다. 그렇지만 40일 정지라니, 아 너무하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하지만 위기가 기회라고, 그동안 눈길을 돌리지 않았던 많은 도서관들이 눈에 들어온다. 분위기도 좋고, 시설도 좋고, 위치도 좋다. 무엇보다 새로운 곳에 가보니 작은 서점도 있고, 멋진 찻집도 있고, 맛집도 하나 둘 눈에 들어온다. 제약을 받는 상황에 놓이자 그때서야 다른 곳을 향하고 행동하는 내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새로운 해 새로운 움직임 좋지 않은가.
한동안 빌릴 수는 없지만 읽고 싶은 책을 읽으러 가야겠다. 서울역에서 내려 좁다란 골목골목을 지나가는 길과 용산도서관 열람실에서 책을 읽으며 바라보는 석양은 정말이지 일품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