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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이랑 Jan 22. 2024

친구와 작은 도서관


내 친구를 알게 된 것은 서울에서 교사 생활을 하던 작은 언니와 그리고 셋째 언니, 나 이렇게 셋이서 자취할 때였다. 막 스무살이 지났을 때였다. 친구는 그때 내가 살던 한 동네 주민이었다. 친구는 결혼한 언니네 집에서 살고 있었다. 친구도 나와 나이가 같았다.


우리가 친구가 된 건 나로 인해 발단되었다.


나는 당시 영화에 빠져있었는데, 친구가 사는 집이 마치 영화 <제3의 사나이>에서 나오는 교차로에 위치한 집과 유사했다. 교차로 집주인인 목격자는 유리창을 통해 길거리에서 우연히 시체를 운반하는 수상한 사람들을 보게 다. 이때 수사선상에서는 제외된 너무나도 중요한 제3의 사나이를 목격한다.


우리 집을 가려면 친구네 집을 가로질러 가야 했는데 나는 그 집을 지나칠 때마다 <제3의 사나이>를 떠올리며 그 주변을 서성이거나 무심코 2층 친구네 집을 바라보곤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친구와 나는 아는 사이가 아니었다.


친구를 통해서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가끔 창문을 통해 친구네 언니가 나를 가리켜 이상한 여자애가 우리 집을 올려다본다며 조심하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 우리가 어떻게 서로 친구가 되었는지 그 부분이 잘 기억은 나지 않데 내가 친구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갔을 때 친구의 언니가 나를 보며 소스라치게 놀랐던 기억은 생생하다. 그렇게 인연이 되어 친구가 된 우리는 20대 시절 자취도 같이 하면서 청춘시절을 공유했다.


어찌 보면 친구와 난 20대 때 길거리에서 만나 친구가 된 길거리 친구다. 길거리에서 만나기는 했지만 영화 <제3의 사나이>가 맺어준 인연이기도 하다.


친구는 결혼을 하고 나는 유학을 가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졌는데 유학을 마치고 다시 연락을 주고받다가, 둘 다 삶의 환경이 달라져 다시 소원해졌다. 그러다 2022년에 《죠리퐁은 있는데 우유가 없다》가 나와 출간 소식을 알렸더니 친구가 읽어보고는 자신이 소속한 독서모임에서도 함께 읽고 싶다며, 자신이 도와줄 것이  물었다. 나는 작가와의 만남이라든가 기회가 되면 든 불러주거나, 도서관 등에 소개할 수 있는 찬스가 되면 부탁한다는 말을 남겼다.


그런데 한 달이 채 안되어 같이 독서모임을 하는 일원이 다니는 작은 도서관에서 독서코칭 선생님을 구한다며 관심이 있냐고 물어본다. 나는 두 말할 필요도 없이 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작은 도서관에 이력서를 제출하고 면접관 네 분의 진중한 온텍트 면접을 거쳐 초등학생 독서코칭 리더로 일하게 되었다.


작은 도서관은 판교역에서 걸어서 15~20분 걸리는 곳에 있는데 우리 집에서는 2시간 소요된다. 왕복으로 하면 4시간에서 5시간 걸릴 때도 있다. 작은 도서관에는 선별된 양질의 도서가 비치되어 있었는데, 한 번 빌릴 때 3권을 빌릴 수 있었다. 일반 공공 도서관에서 미처 빌리지 못한 책을 작 도서관에서 빌리곤 했다. 학생들을 만나 함께 독서 토론도 하고 책도 빌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작은 도서관 관장님은 40대 중반의 기혼 남성인데 마치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에 나오는 유능한 여자 사서 소에다 씨와  소설 캐릭터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고야스 관장님을 합쳐놓은 듯한 분이다. 어찌나 일도 잘하고 어찌나 부지런하고 어찌나 인간적인지 정말 배울 점이 많은 분이다.  


20대 초에 영화 <제3의 사나이>를 계기로 길거리에서 만난 친구가 30여 년이 넘게 지나 작은 도서관을 연결해 준 이다.  지금 이 작은 도서관은 내게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찬스를 주고, 활기를 주고,  내 생활을 지탱해 주고 있다. 20대 초의 그때의 내게 돌아간다면 친구 한 명 잘 사귀어두었다고 말해주고 싶을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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