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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이랑 Jan 24. 2024

융의 《카를 융 기억 꿈 사상》


공공 도서관의 큰 장점은 예나 지금이나 내가 원하는 책을 스스로 탐색할 수 있다는 점이다. 팬데믹 시기에 잠시 도서관이 폐되었을 때는 정말이지 답답했다.


코로나가 발생하기 직전까지 도서관을 다니며 만난 책 중에 가장 영향을 받은 책들은 심리학 저서였다.


그중에서 융의 자서전인 《카를 융 기억 꿈 사상》을 만나게 된 것은 큰 행운이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내가 관계를 맺고 있는 주변 존재를 이해하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다. 특히 작년에 돌아가신 우리 엄마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융은 책에서 아프리카 여행 중에 부족의 남자 원주민들이 모두 사냥을 나가고, 통역사의 도움을 받아 부족의 여성들과 대화를 나눈 일화를 전하고 있었다. 부족의 여인들은 집안은 비록 닭똥, 염소똥으로 먼지투성이 땅바닥이었지만 귀걸이, 팔찌, 발찌 등으로 한껏 치장을 하고 바나나, 단감자, 옥수수 등 자신들이 소유한 경작지에 대해 자긍심에 차 이야기 했다고 한다. 융은 부족 여인들의 이런 확고한 자부심은 아이, 집, 가축 그리고 자신의 경작지와 멋진 몸매에서 기인한다며, 바로 이 요소들이 부족 여성에게는 일종의 자신의 모든 것, 전체성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우리 엄마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엄마에게도 고추, 콩, 깨, 옥수수, 무, 배추밭 등이 있으면 되었고, 수확한 작물로 최선을 다해 자식들을 먹였으며, 한때는 닭, 토끼, 소 등을 키웠었다. 장신구를 치장하는 것은 그리 좋아하지 않았으나 곱게 화장을 하고 머리를 단정하게 다듬으셨다. 아무리 남편이 곁에 있다고 해도 말년의 엄마의 세계, 엄마의 우주에는 자신이 소유한 경작지가 큰 위치를 차지했다. 허리를 다쳐 더이상 일을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의 엄마의 상심을 생각하면 슬픔이 밀려온다. 그때 이미 엄마의 내면에는 우울이 자리잡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도서관에서 융의 책을 만나, 이 대목을 마주했을 때의 놀라움은 컸다. 엄마를 이해하고, 엄마를 수용하는 힌트가 되었기 때문이다. 융의 말이 엄마에게 모두 적용되고 모든 여성들에게 다 적용되는 말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융의 저서 덕분에 내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랑하는 엄마의 마음을 살피고, 이해할 수 있었다.


책에서 융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철학 강의를 통해 마음이라는 것이 그 모든 것의 기초를 이루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마음 없이는 지식도 통찰도 있을 수 없었다. 그런데 우리는 마음에 관해서 그 어떤 것도 들은 일이 없었다. (《카를 융 기억 꿈 사상》, p.193)


나는 융이 남긴  덕분에 보이지 않고, 잡을 수 없는 ‘마음’이라는 것을 조금 들여다본 기분이 들었다.


도서관 심리학 관련 서가에 꽂혀있는 이 책을 우연히 뽑아, 내 몸과 마음이 쏠렸을 때 열람실 책상에 자리를 잡고 앉아,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집중해서 읽었다. 나 스스로는 알지 못했으며, 가까이 하는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 것을 이 책이 알려주었다. 덕분에 엄마의 마음을 알고, 조금은 더 나은 행동으로 엄마를 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회한이 앞선다. 내가 엄마의 마음을 안 것은 정말이지 모래알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는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다. 엄마는 자식들보다는 어쩌면 작물들과 더 내면의 대화를 했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우리 집 냉장고에는 엄마가 보내준 참깨가 들어있다. 나는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엄마가 준 참깨를 본다. 엄마의 경작지에서 나온 참깨다.


융은 마음이 모든 것의 기초를 이룬다고 말한다. 나는 이 모든 것의 기초를 이룬다는 마음을 잘 가꾸고 다스리고 있는가 하고 자문해 본다. 한 알의 참깨를 얻기 위해선 밭에 씨앗을 심고, 살피고, 수확하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된다. 그래도 참깨는 보이기라도 한다. 그렇다면 사람의 마음이 더 어려웠을 수도 있다.


참깨야 아무래도 인간의 마음이 더 난해한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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