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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이랑 Jun 06. 2024

사투리


일본 유학을 마치고 막 돌아왔을 때 서울말로 하면 뭔가 말이 꼬이고 부자연스러워서 한동안은 재일교포냐는 말을 들었었다.


그러다가 고향 사투리로 말하면 어쩜 또 그렇게 구하게 말하냐는 말을 듣곤 했다. 신기한 점은 사투리는 말투가 꼬이지도 않고 술술 잘 나왔다.


막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는 어떤 표현이나 문장 서울말로 술술 표현되지 않았던 시기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고향 사투리는 옮길 필요도 없이 사적으로 나왔다.


재일교포냐는 오해를 풀기 위해서도 더 구수한 사투리를 구사할 필요가 있었다.


실제로 감정 표현이 잘 안 될 때 사투리로 하면 후련했다. 많은 문장도 필요치 않았다. "아따"라든가 "음메" 라든가 "시상에" 등 딱 한 단어만 말해었다.


일본에서도 내가 유학 간 곳은 오사카였다. 오사카는 도쿄와는 다른 특색 있는 사투리를 사용하는 곳이었다. 본어 공부를 하면서 오사카 사투리를 많이 접하지 못했는데도 설지 않고 익숙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원래부터 사투리를 좋아하는 사람이기는 했다. 내게 사투리는 생각의 언어라기보다는 본능에 가까웠다. 지금도 나는 뭔가 에너지가 딸릴 때나 적절한 표현이 안 될 때에는 사투리를 혼용한다. 나도 모르게 그냥 나온다.


이젠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주 어린 시절 난 사투리를 일상 언어처럼 쓰는 아이였을 것이다. 언제부터 서울말을 쓰게 되었을까. 대학을 서울로 진학하면서부터는 의식적으로 서울말을 썼던 것 같다. 그러던 것이 일본에서 막 돌아와서는 서울말보다 고향 사투리가 더 자연스러웠다. 사투리를 쓰면서 우리말 감각이 살아나 이제는 그 어디서도 재일교포라는 말을 듣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내가 했던 말만이 아닌 당시 내가 익히 들었던 동네 마을 사람들의 음성이 내 안에 살아있었기 때문이란 생각도 든다.


어린 시절 쓴 말이 내 언어 감각을 일깨운 것일지도. 당시의 나는 사투리라는 통로를 한번 통과할 필요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투리가 아니었으면 오랫동안 이도저도 아닌 문장을 구사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도 여전히 사투리를 쓰고 있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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