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하면 뭔가 좋지 않은 이미지가 있다. "지적질"하면 더 안 좋은 이미지가 있다. 사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지적받으면 기분이 좋지 않다.
장마주간, 그제는 아주 비가 많이 내렸다. 어제는 비가 오지 않았지만 우산을 챙긴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원문 에세이를 읽으며 하는 일본어 수업이 있어서 오후 3시 반경에 전철을 탔다. 사람은 많지 않았다. 나는 문에서 가까운 좌석 앞쪽 빈 공간에 서있었다. 어떤 여성이 내리려는지 통로를 지났다. 그리고 무언가가 내 허벅지를 쳤다. 돌아보니 여성이 든 비닐 장우산이었다. 여성은 비닐우산을 아래쪽으로가 아닌 팔에 걸쳐 들고 있었다. 가방과 함께 든 우산이 옆으로 삐죽이 나와 내 허벅지를 친 것이다.
내가 들고 있던 물건이 누군가를 치거나 어딘가에 닿으면 알게 마련이다. 우산 상태를 확인한 나는 좀 어이가 없어서 여성의 얼굴을 몇 초간 쳐다보았다. 여성은 자신이 행하고 있는 일인데도 전혀 나몰라라 하는 얼굴이었다. 여성의 외향은 정말이지 그냥 평범한 내 주변에서 익히 보는 그런 중년 여성에 속했다. 하지만 여성은 자신의 물건이 누군가를 쳐도, 누군가 수정을 요하는 몸짓을 날려도 꿈적도 안 했다. 멀쩡하게 두 눈을 뜨고 있었지만 두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을 마주하고 있는 기분마저 들었다.
여성이 서있는 문가로 어린아이가 다가왔다. 우산이 아이의 목께에 닿았지만 여성은 자신의 우산을 고쳐들 생각을 안 했다. 나는 아이의 보호자에게 우산 조심하라고 알렸다.
그 여성에게 말을 할 걸 그랬다. 그 여성에게 그 자리에서 지적을 할 걸 그랬다. 자신의 우산을 흙바닥에 놓건 말건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내가 뭐라고 할 일이 아니다. 내 우산이 아닌 상대의 우산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 우산이나 잘 챙길 일이다. 하지만 자신 편하라고 든 우산이 누군가를 툭 치고 누군가를 위협하는 상황이라면 말이 다르다.
몇 주 전에 멀리 일 보러 갔다가 ktx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9시를 훌쩍 넘긴 토요일 늦은 밤이었다. 지인한테서 전화가 와서 나는 지금 열차를 타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조심하며 좌석에서 전화 통화를 했다. 내 바로 옆좌석은 비어있었지만 앞, 뒤, 통로 너머 옆좌석은 차 있었다. 뭔가 지인과 나 사이에 서로 기억하는 것에 오류가 발생하며 우리는 양쪽 모두 한 말 또 하고 한 말 또 하는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그러자 뒤에 앉아있던 여성이 내 어깨를 톡 치며 전화 통화 계속하려면 뒤쪽 통로에 가서 하라고 말했다. 부끄러웠다. 나는 바로 사과를 하고 얼른 전화를 끊었다. 지적받을만했다. 뒷분이여, 잘 지적해 주셨다! 덕분에 지인과의 내가 맞네, 이렇게 말했네, 저렇게 들었네 공방을 끊을 수 있었다.
기분은 좋지 않았지만 수정하고 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었다. 내가 공공의 피해를 주는 상황을 연출했다면 지적받아 마땅하고, 나 또한 피해를 보거나 대중에게 위험을 끼치는 상황을 목격했다면 그 자리에서 지적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능한 지적받는 상황을 안 만드는 것이 좋겠지만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내가 지적받는 상황을 만들었다면 받아들이고, 나 또한 방치하는 것이 아닌 수정 가능한 상황이라면 지적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지적에 대해 내가 예전에 생각한 선입견을 재고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