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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깅스이 Oct 22. 2021

숨 막히는 사무실에서 엄청 많이 숨을 쉬면?

정답: 과호흡으로 쓰러진다

 삭막한 사무실에서 일했다. 아무도 대화하지 않았다. 마우스 딸깍이는 소리와 키보드 타건음만 들렸다. 아, 간혹 들리는 말소리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촉박한 시간 내에 해야 하는 업무 지시였고, 다른 하나는 누군가를 다그치는-갈구는/윽박지르는- 상사의 목소리였다. 나에게 직접적으로 언성을 높인 건 아니었지만 듣는 것만으로도 긴장되고 괴로웠다. 이런 근무 환경에 숨이 막혔다. 


 게다가 업무는 극도로 비효율적이었다. 여러 자료의 수치를 계산해서 도표로 나타내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게 내가 담당한 일이었다. 문제는 주어지는 자료의 숫자가 굉장히 자주 바뀌었다는 점이다. 수치를 바꿔서 보고서의 그래프를 고치고 내용을 작성하기를 반복했다. 보고서 수정이야 흔히 있는 일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 양이 방대하면 참 곤란하다. 숫자 하나가 바뀔 때마다 그래프 수십 개를 다시 그려야 했다. 보고서의 텍스트 수정은 덤이었다. 그런데 숫자는 하나만 바뀌지 않았고, 한 번만 바뀌지 않았다. 계속 새로운 자료를 받았다. '아니, 그럼 최종 자료를 딱 주면 훨씬 효율적이고 내가 다른 일을 더 할 수 있잖아요?'라고 매일같이 마음속으로 외쳤다. 온전히 마음으로만 할 수 있었다. 마음이 곪아갔다.

일하는 동안 하늘 볼 일이 없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출퇴근하느라 바빴으니까. (canon af 35ml - agfa vista200)


 날이 따뜻해서 블라우스 하나로 충분했던 어느 봄날이었다. 이미 한숨을 크게 쉬는 게 버릇이 되어버린 시점이기도 했다. 억지로 공기를 들이마시고 크게 내쉬지 않으면 늘 가슴이 턱 막힌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전에 짧은 회의가 있었다. 말은 회의였지만 지시를 전달받는 시간이었다. 또다시 새로운 수치로 다시 계산해서 작성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수정 사항을 듣자마자 미세하게 손이 떨리고 입이 말랐다. 굳어진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죄송스럽다. 그분은 그저 윗선의 요청을 본인조차 곤란해하며 전달한 것뿐이었는데, 어른답지 못하게 응했다. 그동안 수정이 반복되는 걸 참고 또 참았다. 2차 보고에서도 넘어갔던 사안이라서, 그래서 더 이상의 수정은 없을 거라고 방심했었나 보다. 회의를 마치고 사무실로 들어가다가 나는 복도에 쓰러지고 말았다. 


 쓰러져서는 숨을 아주 가쁘게 쉬었다. 눈조차 제대로 뜰 수 없는 와중에 눈물이 났다. 지금까지는 숨이 안 쉬어져서 문제였는데, 그날은 숨을 너무 많이 쉬어서 문제였다. 과호흡이었다. 진정이 되질 않았다. 손발이 점점 차가워지는 것 같았고 저릿해졌다. 무서웠다. 과호흡을 처음 겪는 건 아니었지만 사무실에서 이럴 줄은 몰랐다. 결국 구급차에 실려 가까운 응급실에 갔다. 응급실에서 의사는 내 인적사항을 확인하고 이런저런 조치를 취했다. 그리고 내게 물었다. 그것도 두세 번이나 같은 질문을 했다.

 "혹시 누구랑 싸우셨어요?"

숨 쉬기도 바쁘고 찔러대는 바늘에 괴로운데 대체 왜 자꾸 싸웠냐고 물어보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냥 갑자기 호흡이 이렇게 됐는데 무슨 말이지? 싶었다. 돌이켜보면 당시 내 감정은 좌절과 분노였던 것 같다. 속으로만 삭혀야 했던 분노가 가득 차서는 결국 과호흡으로 터져 나온 게 아니었을까. 


 그날 응급실을 나오면서 마음먹었다. 반드시 그 사무실에서 도망쳐야겠다고. 그리고 그제야 깨달았다. 

 '나 지금, 아니 여태껏 정상이 아니었구나.'


추신. 그러면서도 일 걱정을 했다. 내가 안 하면 다른 사람이 해야 하는데. 아니면 내가 아파도 하라고 시키려나? 며칠 쉬면서도 이딴 한심한 걱정은 끊을 수가 없었다. 쉬라는데도 불안해서 쉬질 못했다. 일은 일대로 미뤄지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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