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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깅스이 May 06. 2021

내가 문을 닫고 나왔나?

불안은 확인을 종용한다 - 강박증

 출근을 하려면 집 밖으로 나와야 한다. 나는 외출을 위해 유난히 많은 과정을 거쳐야 했다. 가스 중간밸브를 잠갔는지, 가전제품의 전원은 껐는지 하는 것들은 보통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나의 문제는 확인을 반복해야 했다는 점이다. 


 보통 루틴은 이렇다. 옷을 입고 가방을 챙긴 후에 마지막으로 집안을 둘러본다. 가스밸브가 잠겨있는지, 고데기 코드는 뽑혀있는지, 이외 기타 가전제품의 전원이 꺼졌는지 살펴본다. 이제 확인을 마쳤으니 신발장으로 간다. 그러면 갑자기 가스밸브를 확인하지 않은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반쯤 신던 신발을 벗고 다시 집으로 들어와서 가스밸브를 살핀다. 당연히 잠겨있다. 내 손으로 잠갔고, 내 눈으로 확인했으니까. 하지만 밸브가 '정말로' 잠겼는지 불안한 나는 손으로 밸브를 만져본다. 

 '잠갔구나. 잠겨져 있구나.'

집에 다시 들어온 김에 가전제품의 전원을 재차 확인한다. 이때부터는 혼자 중얼거리기 시작한다.

 "가스 됐고, 고데기 선 뽑았고, 선풍기 껐고..."

이렇게 말이라도 해야 정말 체크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 와중에 출근 시간은 점점 다가온다. 점점 더 초조하다. 이제 얼른 나가야지. 이어폰을 귀에 꽂고 신발을 신는다. 현관문을 탕 닫고 3층 계단을 서둘러 내려간다. 건물 밖으로 나오려는 찰나.

 

'내가 문을 닫고 나왔나?'

빌라 대문에서 의심이 들면, 사실 다행이다. 이미 지하철역으로 가는 큰길로 나와버렸거나, 마을버스를 탄 후에 이런 생각이 들면 정말이지 정신을 차릴 수 없다. 불안하고 초조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이미 수차례 집 안을 확인했지만, 정작 현관문을 열고 나왔다면 그 모든 게 무용지물이니까. 상상의 나래는 펼쳐진다. 

 '빈 집에 누가 들어오면 어쩌지? 몇 없는 귀중품을 훔쳐간다거나, 불법 카메라 따위를 설치하는 놈이 있는 건 아니겠지?'


 이때 나의 선택은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출근보다 우리 집의 안전이 우선인 것을, 내가 불안해서 견딜 수 없는 것을 어쩌겠는가. 집으로 뛰어가 굳게 닫힌 현관문을 바라본다. 사실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만져봐야 직성이 풀린다. 문고리를 돌려봐도 문이 열리지 않으면, 그제야 문이 잠겨있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그리고 비참하다. 내가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턱 막히는 숨을 내쉬며 다시 출근길로 나선다. 이미 집에서 멀리 떠나왔을 때에는 두 번째 방법을 이용한다. 학교에서 오후에 돌아올 동생이나, 집 근처에 사는 사촌에게 확인을 부탁하는 것이다. 

 "OO아 미안한데, 혹시 이따가 너 외출하기 전에 우리 집 잠깐 들려서 현관문 닫혀 있는지 한 번 봐줄 수 있어? 진짜 미안해. 분명히 닫고 나온 것 같긴 한데, 불안해서."

메시지를 보내고 나면, 역시 비참하다. 가족이든 친척이든, 이런 나를 이상하게 보겠지 싶다. 한두 번 부탁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사촌은 흔쾌히 우리 집을 확인해주었고 아무 문제없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고맙고 미안할 따름이다.


모든 걸 다 확인한 게 맞나? 출근길은 언제나 찝찝했다 (lomography simple use - lomography color negative 400)


 병원에 가기 전까지는 이게 병인 줄도 몰랐다. 그저 매사에 꼼꼼하고 철저한 성격의 K-장녀일 뿐인데, 일 때문에 조금 예민해져서 이러는 걸까 싶었다. 


강박증이었다.

강박증[obssesion]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어떤 생각이나 장면이 떠올라 불안해지고 그 불안을 없애기 위해서 어떤 행동을 반복하게 되는 질환 

1. 오염-청결 강박행동
2. 확인 강박 행동
3. 반복행동
4. 정렬 행동
5. 모아 두는 행동
6. 강박적인 생각
                                                                                      (출처: 국가건강정보포털 의학정보)


물건을 반복해서 정리 정돈하거나, 손을 지나치게 많이 씻는 행동만이 강박증이라고 알고 있었다. 나의 단단한 오해였다. 확인을 반복하는 행위도 강박이라니! 생각보다 강박증의 유형은 다양했고, 나는 명백한 강박증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기질적인 영향도 있기 때문에 여러 번 확인하던 사람이 아예 확인하지 않을 순 없다고 했다. 다만, 치료를 통해 확인에 할애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게 한다고 했다. 이를테면 외출 전 4~5번 집안을 확인하던 사람이 1~2번 확인하는 정도로 개선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내가 치료를 받으면서 가장 빨리 좋아졌다고 느낀 증상이 바로 강박이었다. 외출하는 과정이 훨씬 간소해져서 몸과 마음의 불편이 줄었다. 아직도 가끔씩 스트레스가 많은 날에는 나도 모르게 집안 점검이 늘어나긴 하지만, 이전과 비교하면 이루 말할 수 없이 개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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