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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 Sep 07. 2022

사랑은 용맹한 행동이야

나를 파먹고 자라는 글에 대해

작가의 삶은 어쩔 수 없이 나 자신의 일정 부분을 전시하며 그 것을 팔아 먹고 사는 삶. 따지고 보면 그렇지 않은 직업이 어디 있을까. 나의 능력을 내어주고, 시간을 내어주고, 노동이라는 것이 그렇지만 글쓰기는 유독 발가벗겨 지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이런 일을 겪어서 글의 엔딩이 바뀌었네. 이런 일을 겪어서 캐릭터에 깊이가 생겼네. 발가벗겨져 평가 당하는 가운데 나를 지키는 방법은 나의 일을 더욱 사랑하고 숭배하는 것 말고는 없다.


낭만과 열정에 기반했던 가장 중요한 두 개의 관계가 깨어지고 얻은 것은 상처보다는 단단함이다. 누군가는 이러다가 어느 날 밤 꺼이꺼이 목놓아 울고 있는 나를 발견할 것이라 하지만 지금은 그 동안 울려온 수많은 삐용삐용 비상 신호들을 무시하고 진심만 믿었던 나를 돌아보는 시기라. 바짝 정신을 차리고 정확하게 계산하며 살아야 됨을, 할 말을 하고 배려보다는 친한 사이더라도 냉정함을 더욱 장착해야 함에 더 주안점을 둔달까. 사십 전에 알아서 천만 다행이지 뭐니.. 이제 나의 보호자는 내 자신이고 나는 이 주로 험난할 인생 가운데 가끔 찾아올 따뜻한 순간에 감사할 줄 알며 오롯이 살아내야 한다.


혼자가 되고 취미가 늘었다. 좋은 일이다. 사람 하나가 오는 것은 하나의 세계가 나에게 오는 것이라 하는데.. 그 말은 솔직히 조금은 과장되었다. 하나의 세계는 나의 경우, 내 개인의 호기심 만큼은 크지 않고 내 원 삶에서 감당할 필요가 없었던 골치 아픔을 수반했기에.. 여튼 나는 그 세계를 반품하고 내 세계를 가꾸고 풍요롭게 만드는데 전력 중이다. 올해 가장 좋은 두 가지는 심리상담치료와 요가다. 그리고 플러스 나의 전투적인 변호사님.. (변호사를 절대로 적으로 두지 말자 교훈)


심리상담과 변호사님의 조언은 내가 이전에는 (부끄럽다) 몰랐던.. 이성과 계산의 세계를 알려줬다. 감정이 아닌 계산과 인과로 생각하는 방식은 나를 우울로 끌고 가는 대신 다시금 일어서게 하고, 정신을 올곧게 세우고 채워야 할 자질들을 보이게 하며 내 자신과 세상살이에 대한 눈을 띄워주는 것 같다. 깔끔하게 팩트만 가지고 생각할 수 있게 하는 법, 과장해서 부풀리지 않는 법, 좋지 않은 것에 내 직감대로 행동하지 않고 사람을 믿어버리고 포장하는 걸 멈추는 법 그리고 쉽게 누군가에게 믿고 의지하지 않는 대신 나 스스로 치열하게 노력해서 일궈내야 함 까지도. 인생은 교통사고와 변수 투성이며 만고의 진리는 내가 원하는 대로 술술 풀리지 않음이다.


요가는 굽은 등과 어깨를 펴주고 있고, 두통을 사라지게 해주었다. 몸을 움직이는 기쁨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으니 조금씩 다른 운동도 늘려보려한다. 상담과 요가를 진행하면서 연초에 ADHD 수준으로 떨어졌던 집중력이 많이 올라왔다. 어느 정도였냐면.. 하루 종일 화와 배신감이 치밀어 오르고 그 생각에 사로잡혀서 혼잣말을 하는 수준까지 갔는데, 원래도 혼잣말을 좀 하는 편이긴 했으나 이러다가 서울역 광인이 되는구나, 광인의 두뇌 체험까지 갔으니 전문가의 도움을 받길 참으로 잘했다.


두 개의 주요한 관계를 종결시키고 나니 새로운 오퍼가 들어온다. 하나는 감사하게도 새로운 일 제안이다. 섣불리 들떠서 계약하지 않고 합당한 페이를 챙기고 실현 가능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는 곳인지 꼼꼼하게 살핀 후에 나의 시간을 걸겠다. 서두르지 않아도 됨을, 유명세에 흔들리지 않아도 됨을, 신중하고 강인해야 함을 되새긴다. 그리고 마무리 중인 또 다른 프로젝트에는 9월 전부를 걸겠다. 그리고 진척이 없으면 홀드하고 돈이 되는 일감으로 넘어갈 것이다. 좋은 게 좋은 것이고 동료에게 무조건 적인 신의를 보이는 것은 이제부터는 왠만해선 그만 두려한다. 결국 일터는 자신의 이득을 취하는 곳이고 신의는 개인의 욕망과 성취 앞에서 얼마든지 합리화되며 무너질 수 있더라. 특히 뭔가 이루고 싶어 안달이 난 우리 나이에는 더욱. 좋을 때야 물고 빨고 난리지만 결국 헤어질 땐 다들 비정하다.


그러다보니 또 다시 안정과 위로를 얻고자 함은 친구와 연인이고 가족이다. 이래서 직장인들이 결혼을 하는 구나. 사람들이 배우자를 찾고 가정을 꾸리는 이유가 이거구나를.. 난 왜 이제 느끼는 건지. 연인과의 관계 속에서 감정에만 취해 계산을 등한시 하면 나 자신을 지켜내지 못함을 지난 실패에서 배웠기에, 이번에는 내 나름의 세속적 기준의 커트라인을 만들었고 이후에 대화가 통하는지를 살피는데 결국 사람의 성향이라는 것은 노력해도 아주 크게 바뀌는 편이 아닌지 확실히 계통 종사자들과 이야기하는 게 편하고 좋다. 그러면서도 참으로.. 낭만파구나, 여리네, 어리다, 계산기를 두들기고 있고, 이는 결별 사유가 되었던 허들을 이 사람은 통과할 수 있는가 없는가에 포커스를 둔다. 그렇다고 이 허들을 가뿐히 무사통과하는 완전 다른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면 나는 대체 여기 왜?의 메들리가 되는데 이들은 나의 직업적 호기심 외에는 이렇다 할 끌리는 부분이 없고 그렇기에 대화는 내가 일반인을 상대로 하는 수업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게 흐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호기심이 끝나고 나면 그 이후엔 뭐가 남을까. 풋풋한 이십대가 아니기에 사회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난 뒤 생긴 짬빠와 경제력의 간극도 쇼킹하다. 이 둘이 잘 섞인 사람과 얘기하는 것은 즐겁다. 진짜 일을 해낸 사람과 꿈에 부푼 허황된 사람의 차이가 극명하게 느껴지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방향에는 엄청난 노력과 열정이 수반될 것임을 느끼며 아자아자 힘이 난다.


 삶과 작업의 근간이었던  좁은 세계에서  이상은 이렇겐  살겠다 박차고 나오며 좋아진 부분은 통장 잔고도, 인싸력 터지는 만남도 뭣도 아닌.. 아이러니하게도  작업이다. 개안 수준으로 시야가 넓어졌고 내가  캐릭터들도 입체적으로 변했다. 겉도는 대사는 이제 사람이 하는  같고, 유치한 행동거지들에도 감정과 정서가 실린다. 그렇게 욕심내며 작업하다보니 마침내 불안이 잦아든다. 돈도 돈이지만,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가장 앞장서고 얼마만일까 이야기에 자신도 생기고 나의 시선으로 세상을 그리고 싶다는 욕망이 단단해진다. 그리고 어쩌면.. 호기심을 잃지 않고 삶과 인간의 면면을 관찰하는 자세가, 오만하게 평가내려 상하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가치관을 살피는 태도가, 때론 잔인한 신이 되어 드라마틱한 상황 속에 인물을 내려찍어 내가 느낀 삶의 단상을 표현해내는 것이  나의 직업적 소명임을 느낀다.  바탕에는 놀랍게도 팍삭 사그라들어 버린줄로만 알았던 사랑이 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을 잊지 않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 용맹함은 거기서 비롯된다.  사랑은 연인이나 친구, 가족에 대한 사랑과는 조금 다르다. 사랑보다는 소명이라는 단어와도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는 이번 삶에서  혼자가 오롯이 일궈야 하는 몫이다. 그것이 팀원일지라도, 가족 구성원일지라도 결국 타인인 그들이   있는 것은 격려다. 용기는  스스로에게서 길어 올려내는 것임을, 삶은 그렇게 살아내는 것임을 배운다. 정신 차리고 나니 가을. 일희일비 없이  지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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