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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은 늘 사소한 것에서 오는 법

by 흔적


평일 아침 루틴은 아이 칫솔에 치약을 짜놓는 것부터 시작한다. 아침은 늘 분주하다. 제시간에 맞춰 유치원 버스를 태워야 하기 때문이다. 일련의 패턴에 따라 씻고 로션 바르고 옷 입고 아침을 먹는다. 정해진 순서가 있다는 것은 시간을 단축하는 효율뿐 아니라, 마음의 조급함을 덜어주는 안정감의 역할을 한다.

아이는 양치와 세수를 귀찮아할 때도 있지만, 일단 시작하면 순서에 따라 잘 하는 편이다. 아이에게도 자연스러운 루틴이 된 것이다. 아침에 배가 고프다며 시키기도 전에 먼저 양치를 할 때도 있다. 덕분에 등원은 늘 무리 없이 성공하는 편이다. 시간 맞춰 유치원 버스를 태워보내고 나면 그제야 나의 하루가 시작된다.

어제 아침 유치원에서 같은 반 친구가 독감 확진을 받았다는 알림이 왔다. 안 그래도 아이가 밤에 열이 나서 해열제를 먹였는데, 우리 아이도 독감이 아닐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아침에 부랴부랴 소아과에 가서 검사를 했더니 역시나 독감이라고 했다. 의사 선생님은 3일 동안 격리해야 하고, 24시간 동안 해열제 없이 열이 없어야 유치원에 등원이 가능하다고 말씀하셨다. 옮을 수 있으니 엄마도 조심하라고도 하셨다. 과연 그게 가능할까요?

아이는 증상이 생각보다 심했다. 열이 많이 났고 집에 가는 길에 약간의 토를 하기도 했다. 밤에는 코가 막혀 숨쉬기 힘들어했다. 하필 남편이 회사에서 1박 2일 야유회를 간 날이라 꼼짝없이 24시간 넘게 아이와 붙어있어야 했다. 밤에 열 재고 해열제 먹이느라 잠을 설치다 새벽에 겨우 잠이 들었다.

조금 이른 아침 7시, 아이가 배고프다며 나를 흔들어깨웠다. 컨디션이 조금 나아진 모양이다. 너무 피곤해서 일어나는 게 쉽지 않았지만, 아이가 배고프다는데 어떻게 계속 누워있을 수 있겠는가. 겨우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향했다. 어제저녁 미리 끓여놓은 미역국을 데우고 계란을 삶았다. 그리고 음식이 다 되길 기다리는 사이에 양치를 하러 화장실에 갔다.




그런데 내 칫솔에 치약이 올려져 있었다. 이게 뭐지? 잠시 어리둥절하다 곧 깨달았다. 아이가 아침에 먼저 일어나 양치하며 내 칫솔에 치약을 짜놓은 것이었다. 내가 매일 아침 아이에게 해주는 것처럼.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엄마를 챙기겠다고 치약을 짰을 아이의 모습을 상상하니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부모에게 자식은 사랑을 받기보다 주는 존재인데, 아이에게 이렇게 챙김을 받아보니 기분이 꽤 좋았다. 어린이용 치약으로 양치하니 맛은 조금 심심했지만.

“엄마 양치하라고 치약 짜놓은 거야?”

“응.”

“엄마 엄청 감동했어.”

“^^“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행복이란 사소한 것에서도 감사한 걸 알고 즐길 여유가 있는 삶이 아닐까. 삶이 고달프거나 불행하면 작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된다. 여유는 대게 돈, 시간, 마음의 총합이 크면 여유 있는 사람, 삶이 되는 것 같다. 돈과 시간이 많은 것은

삶의 질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이 모든 것들은 소용이 없게 된다. 물론, 돈이 조금은 마음의 여유를 가져다 줄 수도 있다. 하지만, 돈이 많은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마음의 여유가 있는 건 아니다.

내게 주어진 작은 일상의 행복을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이에게도 그걸 놓치지 않을 수 있게 해주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아이가 대나무 칫솔을 잘 써주는 것도 고맙고, 아프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것도 고맙다. 곧 나는 아이에게 옮아 독감이 걸릴 것 같지만, 오늘은 남편이 일찍 와서 아이를 재워줘서 다행이다. 많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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