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N Oct 14. 2024

노동후에 오는 것들1.상황은 그대로이나 생각이 달라졌다

올 해의 여름을 떠올리면 아마도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먼지가 폴폴 날리던 현장, 쉼없이 움직이던 내 다리, 까만 티셔츠 위로 올라온 하얀 땀의 흔적들일 것이다. 아직 깨달음 따위 근처에도 가지 못했지만 나는 일용직 현장을 돌아다니던 때 받았던 제안을 발전시키며 나의 원래 본업의 현장으로 돌아와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지난 노동 현장의 먼지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신발장 한켠의 더러운 운동화를 볼 때마다 또 한번 그 때의 시간을 떠올리기도 한다. 아니 가끔은 일부러 시간을 내어 나의 노동파트너와 즐거운 마음으로 다시 현장에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지우고 한 순간 한 순간 땀과 숨 소리만으로 채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야심차게 흔들리고, 온 힘을 다해 나를 찾아보리라 살아오던 정 반대의 방향으로 떠났던 방황이었으니 뭔가

거창한게 노동후에 오지 않았을까? 

요즘 가장 값진 것 시간을 묻는다면 무탈함의 끝을 느낄 수 있는 가족 산책의 시간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달라진 것은 없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달라진 것은 없다. 나는 여전히 마흔 셋에 자리에 있고, 갈팡질팡하는 갑의 태도에 부르르르 참지 못하고 화를 내는 을의 카피라이터이자 작가이며, 아이의 수학 문제 한 문제에도 파르르르 잔소리를 쏟아내는 예민한 애미다. 변해가는 나뭇잎에 마음이 쓸쓸해지고 최유리의 음악을 들으며 온 마음이 가을로 차올라 휘청거린다. 남편과는 영양가 하나 없는 농담을 주고받고 낄낄대며, 여전히 저녁밥은 가장 하기 싫은 나의 과업이다. 나는 달라지지 않았고, 머리를 복잡하게 하는 나의 가정사와 상황들도 그대로이다. 그 와중에 달라진 것이 하나 있다면 바로 나의 생각이다. 


나의 오래된 가장 큰 꿈은 원래 입신양명이었다. 반드시 남들보다 앞서고, 잘난 사람이 되어 나의 이름을 드 날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꽤나 오랫동안 아니 꽤나 최근까지 나는 이러한 꿈을 가지고 나를 들들 볶아 왔다. 그래서인지 나의 10대, 20대, 30대는 온통 경쟁과 그 경쟁 속에서 이기려는 내가 있다. 브레이크 없는 삶을 살며 항상 내가 해온 것보다 높은 목표들에 닿지 못함에 나를 볶아댔었다. 


첫 째도 무탈, 둘 째도 무탈, 셋 째도 무탈 


그러나 이제 나의 꿈은 "무탈"이다. 하루를 온전히 채우는 노동 현장에서 느낀 가장 것은 온전히 무탈하게 하루를 보내는 것에서 오는 보람과 안심이었다. 순간도 헛되지 않게 지금 순간에 집중하며 오늘을 보내고 무탈하게 집으로 돌아와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를 안으며 온전히 휴식을 느낄 느끼는 충만한 기분. 행복이라는 말보다도 크고 따뜻한 무탈한 삶은 이제 나의 삶에 간절한 목표가 되었다. 


그렇다고 나의 삶에 앞으로 풍파와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오만한 생각임을 안다. 분명 예상치 못한 갈등과 재난의 상황들이 내 일상을 뒤 흔들 날이 올 것을 안다. 그러나 그 안에서 내가 물건을 하나씩 옮기고, 상품을 하나씩 포장하던 그 정도의 힘만 있다면, 어떤 절망이 와도 나의 하루를 온전히 살아낼수만 있다면 나는 나의 삶을 무탈한 삶이라고 믿어주기로 했다. 그리고 가끔 행복이라고 부를 만큼 유난히 행복하고 유난히 즐거운 날이 있다면 그것은 인생이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 믿기로 했다. 그것이 매일 반복되리라는 욕심도 버리고, 행복을 주시면 감사한 마음으로 받고, 받지 못하는 날이 와도 발을 구르거나 누군가를 탓하는 일은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나의 상황은 그대로지만 삶을 바라보는 나의 생각은 달라졌다.


딱 하나 달라졌는데 불안은 줄고, 오히려 나는 조금 숨통이 트였다.  


 

이전 15화 15. 일용직 노동도 장비빨, 필수품 추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