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층 우리집 거실에서는 바깥 아파트 화단에 심어진 좌 살구나무와 우 감나무가 떡 하니 보인다. 마치 주택에 사는 듯, 때로는 펜션에 놀러온 듯 나무뷰가 주는 행복은 꽤나 크다. 문제는 둘 다 열매를 맺는 나무라 보는 즐거움보다 먹는 즐거움에 집중하는 사람들에게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 나무의 열매는 아파트 공공의 자산이라 욕심을 내어본 적은 없지만 창문 너머로 보이는 뷰는 온전히 내 것인지라 지난 초여름, 밤이 어두어지자 마자 잔뜩 달린 살구를 한 알도 남김없이 정성껏 작대기로 털어 가져간 아랫집 아저씨의 만행에 나는 적지 않게 당황했다.
그리고 오늘, 가을이 오자마자 채 가을빛이 다 들기도 전인 감을 점프를 연신 해대며 서너개 뜯어간 60대 가량의 행인 아저씨를 목격했다. 그는 분명 마지막 감을 딸 때 나와 적나라하게 눈이 마주쳤음에도 멈추지 않고 최선을 다해 나무를 쥐어 뜯어 열매를 가져갔다. 나는 그가 배가 너무 고파 길에 있는 감이라도 따서 먹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드러난 주인이 없으니까, 누가 보지 않는다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된다고 믿는 품위같은 건 취미로라도 모으지 않는 어른임에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일용직 현장에서도 이렇게 스스로 품위를 내어 던지는 어른을 여럿 봤다. 품위라는 것이 자칫 사치스럽고 배부른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품위에 대한 정의는 그렇게 세속적이지 않다. 나는 좋은 옷을 입고, 멋진 차를 타고, 그럴 듯한 곳에 살며 남이 부러워할 만한 취향을 갖는 것이 품위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품위란 아주 쉽게 표현해서 "누가 보건 안 보건 내 스스로 쪽팔리지 않게 사는 것"이다.
이런 기준에서 일용 노동현장에서 반면교사 삼을 만한 몇 몇 품위를 잃은 어른들을 만났다. 가장 먼저 봤던 사람은 가방 가득 현장에 있던 티백을 챙겨 나가던 어른이었다. 로켓보다 빠른 물류현장에서는 휴대폰을 비롯해 그 어떤 물건도 물류 현장에 반입할 수 없는데 꼭 먹어야 하는 약이나 사탕 정도의 간단한 당은 넣어갈 수 있어 작은 가방을 매고 다니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물론 이 가방은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모두 경비직원들에 의해 철저하게 검열을 받았다. 일을 끝마치고 나가는 길, 약을 넣었다고 하기엔 너무나 두둑한 아저씨의 가방이 열렸고 그 안에서 수십개의 아이스티 티백이 쏟아져 나왔다. 휴게실에 놓여있던 티백을 가방 사이즈만큼 챙겨 나온 아저씨는 들켰음에도 계속해서 "좀 가져갑시다! 좀!" 이라며 되려 짜증을 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차라리 그 가방에서 쏟아져 나온 것이 밥이나 라면이었더라면 연민이라도 가져봤겠지만 그저 공짜라는 이유로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챙긴 그의 마음이 뻔~히 보여 눈살이 찌푸려졌다.
또 한 사람은 화장품 물류 센터에서 봤던 아주머니였는데 내 옆 라인에 서서 너무나 권태롭게 물건을 싸고 있었다. 남들보다 0.5배속의 속도로 정말 느리고 천천히 의욕 없이 물건을 싸던 그녀는 계속해서 밀려오는 물건을 눈 앞에서 그냥 보내기 일수였다. 그러다 정말 놀라운 광경을 보고 말았다. 급기야 다 쌌던 자신의 택배 속 물건을 다시 꺼내 천천히 누구보다 느리게 물건을 싸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잘못봤나 싶었지만, 그녀의 그러한 기행은 몇번이고 되풀이 되었고 시간당 해야할 일이 할당되어 있지 않아 그리고 누군가 보지 않고 있는 혼자만 아는 공간이기에 최선을 다할 이유가 없는 사람의 행동임을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큰 임팩트를 준 사람은 반말 패치가 태어날 때부터 탑재된 것 같은 사람이었다. 이 사람 역시 화장품 물류센터에서 만났는데 현장에는 외국인 노동자가 한 명이 있었다. 한국말이 서툰 그녀는 나에게 칼을 빌려 달라고 청했고, 나는 흔쾌히 빌려줬다. 잠깐 테이블을 정리하느라 칼을 테이블에 올려 놓은 사이, 현장에서 제법 잔뼈가 굵은 것 같은 그녀가 나타나 외국인 노동자를 희번떡 거리는 눈으로 째려보며 말했다.
"(심한 욕설 뒤) 칼을 여기 왜 올려놨냐?"
순간 놀란 외국인 노동자는 나를 보고 더 욕 먹기 전에 내 것을 밝혀야겠다고 생각한 듯 나를 가리키며
"언니꺼"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그날 처음 본 나를 향해 또 한번 눈을 희번떡 거리고 칼을 휙 하고 던지며
"니꺼야?"라고 뒷 말을 잘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그날 그녀를 처음 보았고, 조금 더 생각을 해보아도 칼을 테이블에 잠깐 올려 둔 것이
그렇게 까지 연령과 국적을 뛰어넘어 짜증을 낼 일인가 싶었다.
조금 더 인내를 발휘해 그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오늘 처음 본 사람들, 앞으로 볼 일이 희박한 사람들에게 감정을 조절하거나, 친절하고 예의바른 말투를 쓰는 것 따위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었겠다 생각은 들었다. 그래도 그녀에게 누가보나 안보나 예의를 지키는 말투가 중년 부인의 울쎄라보다도 더 자존감을 올려줄 거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 입이 근질 거렸다.
언젠가 아들에게, 죽기 전 내가 너에게 한 마디만 할 수 있다면 난 꼭 이 말을 남기고 싶다며 해준 말이 있다.
"스스로에게 떳떳한 사람이 되어라!"
남들은 다 몰라도, 나는 알고 있을테니. 그런 의미에서 나만 아는 순간에 성실하기는, 정직하기는, 친절하기는 정말로 힘들다. 아무도 보지 않아도 사람들에게 작은 친절을 베풀고, 아무도 체크하지 않는 그러나 해야할일을 매일 같이 해내고,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평소의 나의 말과 생각을 가다듬는 일. 그런 것들이 쌓여 결국 나의 품위를 만들어 낸다고 믿는다. 아무도 몰라도, 나만 아는 나의 모습이 멋질 때 쌓여가는 나의 품위. 일용직 현장에서 또 한번 40대의 삶에 꼭 필요한 덕목을 되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