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17:30
5시 반에 퇴근하는 시간인데, 좀처럼 일이 5시 반에 끝날 줄을 모른다. 설령 5시 반이 아니라 6시, 7시에 다른 이들보다 먼저 퇴근하게 되면 “먼저 퇴근해 보겠습니다”라고 미안한 마음을 가지며 게이트 문으로 향해야 하는 현실은 아직도 늦게 남는 사람이 열심히 사는 사람인 것 마냥 구시대적인 유물 속에 정체되어 있다. 5시 반은 퇴근이 아닌 야근의 시작…. 그래도 유럽에서 일을 하다 보니 이 정도는 그래도 한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비하면 엄청나게 양반이었다.
어느 회사에서는 밤 11시에 먼저 퇴근해도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해야 하니, 한국에서의 삶이 얼마나 끔찍하고도 잔인한가….? 물론 그것이 밤 11시까지 할 정도로 시간과 에너지를 바쳐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것은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살아야 하는 이유와 목적을 분명히 가져가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본 한국 회사들의 모습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은 것으로 보이는데….. 열정과 노력이라는 이름으로 둔갑되어 우리의 삶이 침식되어 노동의 신성함이 더 이상 노동이 아닌 기계가 되어가는 것은 아닌지. 다시 깊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런 얘기가 있다.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는가’ 가 아닌,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의 고민을 해야만 하는 우리를 회사 속에서 발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부디 당신의 노력을 더 이상 헛되게 낭비하지 마세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노력의 양이 아닌 노력의 방향이라는 것을.
롭 무어, <레버리지>에서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도 이렇게 얘기하였다. 과학과 문명의 발전, 그리고 지구 상의 권력을 획득하는 데에 능해졌지만 그것을 행복으로 전환하는 데에는 능하지 않다고 지적하였다. 우리는, 우리 회사에서는 이곳에서 수익을 창출하고 매출을 확대하는 대에 능해졌지만 직원의 행복과 보람으로는 전환하는 대에 매우 능하지 못하는 것이 유발 하라리가 말한 것과도 얼마나 일맥상통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