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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은 KPI와 데이터는 무수한 숫자를 양산하고, 이 숫자들이 맞는지 혹은 맞지 않은지 탁상공론하다가 그 과정 속에 불신이 피어나고 그 불신은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리포트와 보고서가 난무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을 미래에 우리는 이렇게 하겠다 라고 하지만 결국엔 저렇게 되고 그렇게 될 미래에 대해 너무 많은 소비를 하며 회사를 살아간다.
그 무수한 숫자를 다루기 위해서는 우리에게는 절대 없어서는 안 될 프로그램 엑셀은 오만 가지의 숫자를 받아들일 준비가 항상 준비되어 있어, 우리에게는 있어 노트북 켤 때마다 단골로 찾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이 엑셀이 없었다면 어쩌면 더 많은 야근을 야기했을 수도 있는데, 이 엑셀 때문에 더 많은 야근을 또 생산하기도 했다. 이 회사에 처음 들어왔을 때 기업에서 기초 중에 기초라 할 수 있는 VLOOK UP 수식 조차도 몰라 부지런히 연습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이 수식을 조금 알만 할 때쯤 되자, 상상하지도 못했던 무수하게 많은 정리되지 않고 오합지졸의 숫자들이 회사 생활을 하면서 지속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러한 숫자를 대응하고 또 가공하여 의미 있는 숫자를 도출하기 위해 부지런히 엑셀의 기능을 연습하고 또 연마했다. 마치 산속에 들어가서 부지런히 무술을 연마하는 수도승처럼 저녁이 되고 자정이 넘어 깊은 밤에 떠 있는 보름달이 서쪽으로 뉘엿뉘엿 모습을 감출 때까지 엑셀 하나 좀 배워 써먹어보겠다고 며칠 밤을 새웠던 그 시절이 있었다. 나름 그런 일을 겪고 나중에 자신이 만든 수식을 써 백만 대군처럼 서 있는 숫자를 우리가 보기 좋게 정렬시키고 거기서 뭔가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할 때 그 느낌이 야구에서 안타를 치고 2루까지 진루한 것만큼 짜릿함을 느낀다.
그런데 자기만족에 그치면 다행이다. 5,6시간 기본으로 정규시간 넘어서 야근을 하고 숫자를 준비해 높은 양반들에게 보여주어 소위 말하면 깨지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봐야겠다. 보통 칭찬의 소리를 내는 것은 경험에 비추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우리에게는 수십 시간의 엑셀 작업이지만 세상에 공개되는 숫자는 단 몇 분이며 그 몇 분 동안 윗사람으로부터 숫자 만든 사람과 발표자는 평판과 평가를 받는다. 수십 시간의 숫자를 가지고 놀음한 엑셀 작업.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 보상도 없다. 그저 미래의 삶이 걱정되어하는 것일 뿐. 누가 고생했다, 고맙다고 알아주길 애초부터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또 다른 오합지졸의 숫자가 미래에 나타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 계발하고 책 하나 더 읽을 걸 하고 후회해봤자 어느 세 태양은 지고, 또 다른 숫자가 기다린다.
회사일은 정말로 무수히 많은 생각과 고민을 자아낸다. 내가 그저 스쳐 지나가며 생각나는 것들, 그리고 평소에 묵혀 났던 생각들이 갑자기 회사 일을 하다가 극도로 회의감과 보람차지 않은 일을 할 때, 툭툭 튀어나오는 생각들, 이 생각들을 정리해보았다.
1. 취합에 대한 생각
취합, 그래. 그 취합은 왜 생겨났고, 이리도 중요해지면서도 받아야 하는 사람으로부터 외면받는 것일까? 취합의 묘미 또한 묘하다. 취합을 쪼는 사람, 쪼임을 받는 사람. 소수의 취합자와 다수의 피취합자의 관계, 생각처럼 바로바로 f/up 이 쉽지는 않아 보인다. 취합의 미학에 대해서 한 번쯤 고민해 볼만 할 것 같다.
2. 관리에 대한 생각
관리는 통제, 과거를 기록하고 현재를 파악하며 미래를 예측한다. 비즈니스와 비슷하다.
3. 무수한 리포트, 그렇다면 시스템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4. 돈 만은 만큼 일하는 거지 일한 만큼 돈을 받는 거 아니다.
5. 우리 회사는 항상 No.1 외치면서 월급 면에서는 No.1이 될 수 없는지.
6. 왜 나는 남들 앞에서 월급에 자부심을 느끼지 못하고, 가족에게 연봉 공개할 때 이렇게 부끄러워야 하는지.
7. 우리 회사에 다니는 우리의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