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헥토르 Aug 20. 2018

휴가 – 그단스크 (Gdańsk)

[그단스크 앞바다, 항구 입구에서]

Trem 3번 혹은 8번을 중앙역에서 타면 어렵지 않게 바다로 갈 수 있다는 것을 금세 파악했다. 나름 외국인도 잘 파악할 수 있는 교통시스템 덕에 무엇을 어떻게 어디로 가야 내가 원하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쉽네. 이런 보기 쉬운 이정표와 정류장에 있는 지도와 시간표, 거기에 더하여 내가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이 함께 더하니, 이만큼 여행이라는 것이 쉬워졌으리라. 여행이 쉬운 만큼 뭔가 여행에 대한 간절함과 어떤 대상에 대한 동경도 예전보다는 떨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요즘의 여행은 자기만족과 성찰, 즐거움보다는 보다 어디를 가보았다는 정복 개념으로 우리는 여행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땀을 뻘뻘 흘리며 어렵게 구한 인도 첸나이 지도를 구하여 이리저리 어지럽게 다녔던 나의 젊은 시절이 떠오른다. 잘 몰라서 발을 동동 구르던 20대 때의 여행이 기억난다. 물어 물어 갔던 한 장소가 얼마나 값지고 보람 있었는지. 지금은 스마트폰과 GPS 덕에 오히려 구깃구깃하고 젖은 지도와 물어 물어 지나가는 사람들과의 짧은 인연은 다소 그 중요성이 떨어지고, 점점 잊히는 여행 방식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이따금씩 아날로그 방식도 그리울 때가 간혹 있다. 


숙소에서 나와 바다를 가기 전, 연대 기념관과 2차 세계대전을 박물관을 가기 위해 밥 먹고 부지런히 발걸음을 재촉했다. 대략 도보로 30분 가는 거리에 있는 데다가 복잡한 올드타운 거리를 관통을 해야만 한다. 그래도 그냥 휙 지나가면 섭섭하기에 올드타운의 시작을 알리는 골든 게이트와 광장 없는 이 기다란 올드타운 거리에서 옛 16-17세기의 화려한 건축물에 잠시 카메라 셔터를 터트려본다. 


폴란드 자유노조 운동 ‘솔리다르노시치’

연대 기념관 ESC (European Solidarity Centre)를 방문하면 폴란드가 냉전시대에 얼마나 격동의 시기를 보내며 그 나치에 저항했던 만큼 민중이 불합리한 정부에 저항을 하였는지 생생하게 확인하고 체험할 수 있게 된다. 공산정권에 대해 굶주리고 열악한 노동조건에 항거하여 민주화 운동을 전개했는지 생생히 나와 있었고, 그 촉매적인 장소를 한 곳이 바로 유럽의 조선소가 있었던 그단스크였다. 우리나라가 1980년대에 민주화 운동을 했던 것처럼, 여기도 폴란드 초대 민주 대통령인 레흐 바웬사를 중심으로 1980년 8월 14일 노동운동을 시작하였고, 노동자를 위한 사회주의는 더 이상 노동자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전개가 되었다. 

건물의 옥상에는 그단스크 조선소의 전경을 볼 수가 있었고, 직접 걸어가서도 그 현장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노동 운동 기념비, 희생자 사진 및 솔리다르노시치의 승리 발표]
[그단스크 조선소]


제2차 세계대전 시작된 곳은 다름 아닌 폴란드의 북쪽 그단스크로부터 시작이 되었다는 것은 폴란드에 살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단순히 독일이 동쪽으로 진군해서 시작한 것이 아닌, 그단스크 앞바다에서 독일의 함대가 당시 Free city로 있었던 (폴란드령이 아니었지만 수비대는 폴란드 군대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단스크를 포격하면서 그 끔찍한 6년의 대 서막을 알린 곳이기도 하였으니, 이곳에 2차 세계대전 박물관이 있는 게 전혀 이상할 것도 없었다. 조선소에서 약 20분간 걷다 보면 뭔가 과거의 상흔을 파편의 한 조각으로 땅속에 묻혀 있는 듯한 독특한 디자인의 황색 건물이 눈에 띈다.  

이 박물관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에 동북아시아에서 벌어졌던 일들도 상세히 전시되어 있었는데, 중국에서 있었던 난징학살 사건도 소개가 되었지만 뜻밖에도 한국에 있었던 위안부 사건도 제법 큰 규모로 소개가 되어 있었고, 일제의 만행에 대해서 상세히 고발되어 있었으며, 많은 외국인들이 소개되는 영상과 사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보는 것이 기억이 났다. 

이렇게 먼 타지에서 우리의 아픈 역사를 마주 할 수 있다는 것도 행운 지었지만, 또한 괜한 울컥함과 동시에 우리에게 놓인 이 태평성대의 시간에 미안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먼저 든다. 역사는 잊혀서는 안 되며 그 어떠한 보상도 지난 전쟁과 고통의 상처를 지울 수가 없다. 한국에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그저 죄송하고 또 스스로도 이 사건을 잊지 말고, 다시 되풀이되지 않도록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야 하겠다. 

이런저런 사건들을 나열하여 이 2차 세계 대전 박물관이 얼마나 심의를 기울여 세계 곳곳의 동시대 현장을 상세히 나열했는지 그 세심함과 리얼함에 매우 놀랐던 박물관이다. 2차 세계대전 박물관은 전쟁에 대한 모든 상황과 현상을 소개했으며, 키워드로 정리해보면 하기와 같다. 


전투, 무기, 전술, 정치, 경제, 의식주, 배고픔, 학살, 차별, 포로, 반란, 테러, 전범 처리, 동조자 복수, 조약, 수용소 캠프, 이주/퇴거, 경계 및 국경 등등.


하기 위의 모든 세션이 정리가 되어 소개되어 있으니, 전쟁의 삶을 그대로 가져다 소개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 박물관에서는 대체로 세 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첫 번째는 전쟁으로 인한 폴란드의 피해상황 그리고 피해의식이 두텁게 깔려 있었고, 당시의 독일과 소련에 대한 적개심, 두 번째는 1달 만에 나치 정권에 점령되었어도 최선을 다해 방어전을 펼치고, 점령 하에도 지속적으로 지하에서 폴란드 민족운동을 전개했다는 점. 그리고 세 번째는 폴란드 점령 당시의 서유럽 국가의 침묵에 대한 아쉬움이 나타나 있었다. 

나름대로의 메시지는 2차 세계대전을 폴란드 입장에서 그리고 승전국과 패전국 입장에서 동시에 확인하고 전달할 수 있는 곳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2차 세계대전 박물관]


너도 나도 끊임없는 파도가 되고 싶다. 저 그단스크 앞에 넓은 바다는 의외로 잔잔할 수도 있는데 바로 앞에 있는 저 사사로운 파도 때문에 그저 늘 근심과 걱정만 하고 사는 것은 아닌지. 하얀 물보라를 몰아치는 파도가 두려워 그저 움츠려 드는 것이 익숙하다면 언제 저 바다를 건너 다른 육지로 나아갈 수 있을지. 

나 역시 늘 바로 앞에 떨어져 있는 예측 못한 일들이 놓여 있으면 이레 걱정하고 짜증부터 내는 것이 이미 몸에 배어 있어 먼 바다를 못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실 한 치 앞을 바라보기 어려운 안개가 끼어도 그 안개를 조금씩만 나아가 걷어 내어보면 결국엔 우리가 나아갈 길을 찾아가고 목표를 가질 수 있는 것을. 


기분 좋은 메일도 있지만 멘붕을 유발하는 달갑지 않은 메일도 많이 받는다. 그 달갑지 않은 메일 중에는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은 보고서를 지급으로 제출하라, 확인해보아라, 계획을 보내라, 데이터를 만들어라 라는 등의 형태 중에 딱 보기만 해도 숨 막히고 야근을 걱정해야 하는 메일들이 상당수가 있다. 마치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는 파도와 거대한 안개가 내 시야에 들어온 것이다. 


한편으로는 그렇다. 나는 이미 바로 앞에 있는 파도와 거대한 안개 때문에 스스로 그 일을 크게 과장하여 근심 걱정하는 것은 아닌지. 그단스크 앞바다가 그렇다는 듯이 윙크한다. 

이 보드라운 모래사장에 익숙해 낯선 바다 앞에서는 괜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그단스크 앞바다, 항구 입구에서]
[포세이돈 동상과 밀레니엄 나무, 골든 게이트, 그단스크 올드타운을 관통하는 비스와 강의 물줄기와 야경]


이전 22화 야근 때 생각 16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