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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도 헤도헨 Aug 05. 2024

14주. 달리기의 여름

대체 뭐 하시는 겁니까, 이 날씨에?

목덜미와 팔뚝이 땀으로 코팅한 것처럼 반짝인다. 어울리지 않아서 절대 쓰지 않았던 캡모자를 뚫고 기어코 땀방울이 내려온다. 집에 돌아와 옷을 벗으면 방금 물에서 건져 올린 것처럼 흠뻑 젖어있다. 땀이 잘 안 나는 체질이라고 여겼던 날들이 겸손해지는 달리기의 여름이다.


러너들의 날숨으로 이루어진 것 같은 뜨숩고 축축한 공간을 달려 나가노라면, 꽤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하나. 내가 왜 이러고 있을까? 분명 낮에 잠깐 나왔을 땐, 도저히 밖에 있어서는 안 될 날씨라고 여겼는데 말이다. 바깥활동을 최소화해야 하는 날씨라고. 그런데 나는 그중에서도 그나마 덜 더운 아침 시간이나 밤 시간의 틈을 타, 달리기를 하겠다고 나왔다.


둘. 그러면서 정색하고 혼잣말을 한다. 이 정도면 달리지 못할 날씨는 아니야. 가만히 있어도 숨막히고, 몇백 미터 거리도 걷자니 갑갑해지는데, 달리기는 할 만하다니!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확실히 정말 그러하다. 일상과 달리기에 사용하는 기호가 다르달까?


셋. 놀라운 것은, 저기 나 말고도 달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아침에도 밤에도 한낮에도, 비가 오는 중에도 비가 온 후에도, 인구밀도 낮은 동네의 나름 다운타운에도 엉성하게 조성된 호수 둘레길에도, '나뿐이겠지?' 하는 외로움의 탈을 쓴 자만심을 깨는 존재가 어김없이 나타났다. 대체 뭐 하시는 겁니까... 이 시간에, 이 날씨에, 여기서?


넷. 하지만 언제나 반가웠다. 달리기를 한다는 것 말고는 공통점이 없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거꾸로, 이렇게나 다른 사람들이 달리기 하나로 스치기도 하는 세상이었다. 셀 수 있기는 하지만 아주 많은 사람들, 그 사람들의 낱낱이 따지기도 피곤한 다름, 그럼에도 어떤 이유로든 접점이 생기기도 하는 세상사가, 은근히 흥미로운 것이었다.


다섯. 달리는 동안 지루하지 않은 건 아무래도 미스터리였는데, 아하, 이런 생각들 때문이 아닐까? 비록 논리적인 흐름이 있거나 창의력이 폭발하는 생각, 적극적으로 나아가거나 깊이 통찰하는 생각을 하는 건 아닐지라도, 그러니까 늘 그렇진 않더라도, 뇌는 굉장히 여유롭고 자유롭게 시간을 보낸다. 버스를 타고 창밖을 보는 것 같다. 달리면서 보는 풍경은, 내 발이 닿는 땅이기도 하고, 내 몸이 놓인 자연이기도 하지만, 내 몸 자체, 그리고 내 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기도 하다. 한 번도 같지 않은 광경을 숨이 차고 가슴이 뛰는 상태로 접하니, 한없이 생생하다.


대서도 중복도 지났고, 내일모레면 벌써 입추다. 열흘 후 광복절 즈음엔 바닷물도 차게 느껴지고 밤엔 살 만해질 것이다. 그러니까 열흘 정도는 역시 힘들게 덥겠지만, 여름은 꺾이는 중이다. 여름이 기웃거릴 때만 해도 과연 달리기를 이어갈 수 있을까 싶었는데, 폭염과 폭우 중에도 틈은 있고 더한 날 사이에 덜한 날이 있었다.


아직 모르는 달리기의 겨울을 상상해본다. 새삼 발견하는 나와 세상사, 그리고 그때의 놀라움과 안도를.



지극히 개인적으로 여름은 달리기 정말 좋은 계절입니다. 따뜻한 날씨 아래 얇은 옷가지만 걸친 상태로 가볍게 달릴 수 있고, 별다른 웜업 없이도 좋은 페이스로 달릴 수 있습니다. 혹시라도 비가 올 때면, 아예 맘 먹고 우중런을 즐길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을 선사해 주고요.
 
(중략) 겨울은 달리기 어려운 계절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지만, 의외로 정말 달리기 좋은 계절입니다. 가끔 여름보다 겨울이 더 달리기 좋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우선 여름처럼 땀이 잘 나지 않아서 더 상쾌하게, 그리고 물을 마시지 않고 더 오랜 시간을 달릴 수 있습니다. (중략) 마지막으로 겨울에 달리다 보면 특유의 정적을 마주하게 됩니다. 추운 겨울 아침/밤에 달리면 겨울에만 느낄 수 있는 조용한 삶의 생동감과 자유가 느껴집니다.

(중략) 그리고 날씨는 정말 재미있습니다. 덥거나 추운 날씨가 '달리러 나갈 이유'가 될 수 있고, '달리러 나가지 않을 변명'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달리러 나가는 건 오롯이 내 선택에 달렸습니다.

ㅡ김성우, <30일 5분 달리기>




요약

한여름에도 달리기를 할 수 있다. 날씨에도 틈이 있다. 그리고 그 틈을 발견한 미친 러너는 당신 혼자가 아닐 것이다.


29도가 넘어도, 해가 진 밤이 달리기 더 수월하다.



달리기로 기억될 여름.




7월의 달리기 총정리

산 것: 상의와 스포츠브라(h&m. 가성비 만족), 러닝벨트(카멜백. 물과 수건, 전해질 캡슐 등 핸드폰 말고 넣을 공간이 있어서 좋다. 많은 추천과 후기처럼 만족. 하지만 짧게 달릴 땐 나이키 러닝벨트가 편하다), 모자(데카트론. 해를 가려주고 흘러내리는 땀을 잡아줄 용도. 가볍고 통풍 잘 되는 더 비싸고 좋은 모자가 많으나, 가성비 굿), 운동화(써코니. 좋다고 적어둔 운동화가 할인하길래 일단 사둠...), 압박양말(삭스업. 종아리 뭉침이 있어서 샀는데, 효과가 있는 건지 우연인지 다른 이유 때문인지 이후로는 괜찮음).

부상: 과훈련 증후군(수면 부족과 공복 상태로 보강운동으로 요가와 근력운동을 갑자기 과하게 했던 탓인지, 전신 무력과 심장 부근 통증 등 며칠간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몸 상태가 안 좋았다. 회복도 며칠 걸렸다. 잘 먹고 잘 자고 적당히 해야 한다고 절감).

몸의 변화: 몸무게 변화 없음(당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편해서 안 입던 바지가 입어지는 걸 보면 몸 내부의 변화는 있다고 믿어본다.

일상의 변화: 일상에서 버리는 시간이 줄었다고 할까. 생각도 움직임도 민첩해진 것 같고, 잡스러운 것에 덜 신경 쓴다(어디까지나 느낌일지도 모르지만). 화장을 거의 안 하고 치마도 거의 입지 않고 머리도 짧게 잘랐다(이런 스타일의 변화는 의도적이진 않은데, 어쨌든 지금은 이게 좋다). 매일 무엇이든 땀 나는 운동을 한다. 아이들에게 운동하는 엄마가 당연해졌다.

읽은 책: <마라톤 1년차>(완전 초보가 마라톤을 완주하기까지 과정이 만화로. <마라톤 2년차>를 먼저 읽었는데, 1권이 훨씬 재미있고 유익하다), <30일 5분 달리기>(달리기에 필요한 기술적 정보뿐 아니라 마음가짐에 대해 구체적이고 나이스하게 적혀 있다. 달리기를 시작한 사람에게 단 한 권 책을 선물한다면 이 책을 주겠다), <운동의 역설>(과학 교양서의 탈을 썼으나 내용은 과학 교과서 혹은 논문처럼 채워졌다. 하지만 이야기로 풀고 유머도 계속 시도한다. 읽어나가기 괴로운 구간이 있지만, 쉽게 들을 수 없는 탄탄한 지식들에 아하!가 이어진다), <달리기, 몰입의 즐거움>('몰입'을 축으로 달리기를 이야기하는데, 몰입에 대해서도 달리기에 대해서도 깊게 파고들지만, 같은 얘기가 반복되는 느낌이 살짝), <마라닉 페이스>(작가의 유튜브가 너무 유익하고 재미있어서 고민 없이 구매했는데... 전직 피디인 작가는 영상물에 최적화된 분인 걸로...)

총평: 시작한 지 100일이 다 되어간다. 멋모르고 달려들던 때를 지나, 달리기에 대한 나만의 관점과 태도가 어렴풋이 생겨났다. 어떤 기대는 흔적도 없이 부서졌지만, 몰랐던 일들의 연속이라는 점에서 기대를 넘어섰다. 이 여행을 계속 가고 싶다.



+) 도움 되었던 영상들


1. 달리기에 제대로 빠졌다가 달리기에서 자신만의 길을 발견한 분의 이야기. 책(<30일 5분 달리기>)을 보니 압축판 같은 영상인데, 책 읽을 때 이분의 표정과 목소리가 지원돼서 좋았다. 내용도 태도도 배울 게 많다.

https://youtu.be/42zd2PvT7C8?si=otwoF_QQ_C82sqqI


2. 달리기의 효과에 대한 이야기도 많지만, 부작용에 대한 이야기도 많다. 예를 들면 노화나 무릎 부상. 이에 대해 간결하게, 근거와 함께 풀어준다.

https://youtu.be/okRxnmcQBIQ?si=o5ropsvtMyz5in4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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