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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도 헤도헨 Aug 12. 2024

15주. 자기객관화와 농담

달리기에 휘둘리지 않고

[몇몇 강사에 대해 주의할 점]

강사는 조깅에 대한 개념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강사를 찾아야 한다. 전문가 중에 당신을 지속적으로 '향상'시키기에만 집중하는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 조깅은 절대 이런 것이 아니다.

*'조깅'의 사전적 의미는 '자기 몸에 알맞은 속도로 천천히 달리는 것'이다.

ㅡ빌 바우어만, W.E.해리스, <조깅의 기초>


드라마 <마지막 승부>와 만화 <슬램덩크>를 거쳐 농구대잔치가 내 삶을 스쳤었다. 나는 현주엽과 전희철을 좋아했고, 브로마이드를 방에 붙여놓거나 잡지 사진으로 뒤덮인 하드보드지 필통을 만들기도 했다. 프로농구로 바뀌고는 어째 시들해졌고, 대신 직접 농구를 했다. 우연히 얻게 된 농구공으로 집 앞에서 드리블을 연습했고, 고등학교에 들어간 후 종종 친구들과 진짜 농구 경기를 했다. (여자고등학교여서 농구코트는 언제나 비어 있었다.)


그리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농담'이라는 농구 소모임을 만들기까지 했다. '농구로 담을 허물자!'는 뜻이었는데, 실제 더 크게 부르짖은 모토는 '농구를 못해도 즐길 수 있다는 걸 보여주자!'였다.


그렇다. 나는 농구를 못했다. 그래도 정말, 농구가 좋았다. 보는 것보다 하는 게 이천 배는 좋았다. 한두 해쯤 매주 금요일 아침에 모였는데, 나와 친해서 어쩔 수 없이 오는 친구들, 대체 어떻게 굴러가나 궁금해서 오는 친구와 선배들, 혹은 내가 웃겨서 오는 역시 웃기는 사람들, 그리고 놀랍게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던 두어 명의 보물 같은 존재들 덕에 어찌어찌 굴러갔다. (농구대를 차지하기 위해 우리는 이른 시간에 모였다. 절대 부끄러워서가 아니다.)


가끔 그때를 떠올리면 이런 생각이 든다. 정말 농구가 좋았다면, 농구를 정말 하고 싶었다면, 배웠어야 마땅하지 않나? 나는 왜 제대로 배워서, '못해도' 즐기는 게 아니라 '잘하면서' 즐기려고 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고달픈 과정을 건너뛰고 성취의 열매만 취하려고 한 게 아닐까? 그 맛은 엉뚱해서 신선하고 재미있기도 했지만, 분명히 어거지 같은 면이 있지 않았나?


물론 그에 대해 아무도 반박하지 못할 변명을 네 가지쯤은 댈 수 있다. 그럼에도 그런 식의 허술함은 내 스타일이 아니라 때때로 찝찝하다. 농담이니까 할 수 있는 무언가였다.


 



5년 전쯤 요가원에 처음 갔을 때, '머리 서기' 자세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자세로 보였는데, 쉽게 그 자세를 하고 심지어 편안해 보이는 사람들을 보며 내 요가의 목적지는 정해졌다. 저 자세를 하면 나는 '요가를 한다'고 할 수 있겠다.


띄엄띄엄 유튜브를 보며 요가를 하고 대체로는 쉬었던 5년이 지나고, 다시 요가원에 다닌 지 70일쯤 되었다. 머리 서기가 최종 단계가 아닐뿐더러 그 상태에서 다른 고난도 자세로 넘어갈 수 있다는 것과 그것 말고도 별별 어려운 자세가 많다는 걸 이제는 안다. 하지만 여전히 머리 서기는 못한다.


간혹 요가에 물이 오를라 치면 시도해보았지만, 언제나 실패다. 결과의 실패이기 전에 시도의 실패다. 나는 그게 왜 그렇게 무섭고 어려운지 모르겠다.


지난주 요가원에서 나는 좀 심각해졌었다. 마지막 10-20분 동안 고난도 자세를 각자 수준에 맞게 수련하는데, 나는 거의 멍하니 앉아서 다른 회원들을 보며 감탄만 했다. 해볼까? 안 되더라도 계속 시도할까? 그러다 보면 언젠가 되긴 하지 않을까? 그런 갈등에 뭐라 답해야 할까 고민하면서.





그때 달리기 생각이 났다. 100일 동안 달리기를 하면서 이래저래 울퉁불퉁한 여정을 거쳤다. 달리기에 관해서라면 거의 완전히 백지였는데, 시작하자마자 '이왕 이리되었으니 풀코스는 물론이고 울트라 마라톤까지 가야 하지 않겠어?' 하고 자동으로 계획이 세워졌다. 그러면서 벌써 국내뿐 아니라 보스턴, 런던, 베를린, 도쿄... 세계 곳곳으로 달려나갔다.


그런 계획과 꿈은 허망하고도 거뜬하게 무너졌다. 그러니까 그것은 내 것이 아니었다. 내 손에 쥔 적도 없던 것을 놓아야 하는 일은 괜히 서러웠지만, 나도 이제 마흔이 넘었으니까 그 정도는 할 줄 알게 되었다.


운동에 관해서라면, 나의 운동신경이나 운동능력은 (9단계로 나누었을 때) 상하, 못해도 중상 정도라고 줄곧 생각해왔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 해도, 앞으로 내가 그것으로 할 일은 나를 한계까지 밀어붙여 최고 기량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몸의 어느 곳이든 일상의 어느 부분이든 펑크 내지 않고 끝까지 이어가는 것이었다. 그렇게 달리기에 휘둘리지 않고 달리기를 '즐기는' 것이었다.


그렇다. 못해도 즐길 수 있다. 농구는 모르겠지만, 달리기는 진짜로 잘하거나 말거나 즐길 수 있다. 풀코스라는 상징적인 '완성'도 있고 그것을 넘어서는 울트라 마라톤도 참으로 울트라스럽게 있지만, 그게 아니어도 정한 거리를 '완주'하면 된다. 경기가 있고 등수도 있지만, 등수 안에 못 든다고 진 게 아니다. 매일 몇 킬로를 달린다는 사람도 있고 아마추어답지 않은 기록을 내는 사람도 있지만, 알 게 뭐람.


운동 효과는 일주일 서너 번 30-40분 달리는 걸로 충분하단다. 아니, 오히려 무리하는 달리기는 건강에 해롭다고 한다. '무리하는' 정도가 사람마다 다른 건 당연한데, 내가 그중 어느 위치라 해도, 눈을 부릅뜨고 불쾌해야 할 이유는 없다. 하다 보면 어느 정도는 나아질 테고, 나이가 들면 좀 못해질 수도 있고.


그러니까 내 마음은, 일주일에 서너 번쯤 5~10킬로쯤 달리며 살아가면 좋겠다고 정했다. 그렇게 하면 상쾌하고 가뿐할 것 같고, 원하는 만큼 건강해질 것 같다. 그리고 국내 곳곳의 마라톤 경기에 참가하는 겸 여행을 하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 당분간 그리해볼까 한다.


그러니까 요가도... 이 정도에서 만족하면 어떤가 싶었다. 머리 서기나 그 외 연체동물 같은 자세는 못해도, 요가의 효과와 즐거움은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적당한' 수준에서 만족하기로 하는 건 영 내 스타일이 아니지만, 또 한편으로는 스타일이야 바뀔 수도, 바꿀 수도 있는 거 아니냐고 부르짖어본다. 스무 살에 했던 농담만큼이나 지금의 다짐도 엉뚱하고 억지 같지만, 진심인 건 진짜다.




요약

달리기의 목표나 목적은 지속적으로 '향상'하는 데 있지 않다. 달리기의 효과와 즐거움은 무리하지 않고 적당히 달리면서 누릴 수 있다.


중간에 전화를 받아서 1킬로미터쯤 기록이 끊겼다. 그랬더니 저런 농담 같은 그래픽이.


계획했던 30주 중 절반이 지났다. 여전히 달리고 쓰고 있다니, 정말 대단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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