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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도 헤도헨 Jul 29. 2024

13주. 이렇게 경건할 일 (마라톤 7K)

수건보다 달리기

7시 반, 알람 소리에 잠이 깨자마자 익숙한 싸움을 치러야 했다. 머릿속에 묵직한 물결이 쳐들어왔고(코르티솔 호르몬이겠지), 심장이 뛰어 가슴에 압박감이 느껴졌다. 기분이 나빴다. 그대로 다시 자면 딱 좋을 것 같았다. 계속 눈을 감은 채로, 내가 대체 왜 일어나야 하느냐고, 똑똑하고 되바라진 후배처럼 따져 물었다.


8시부터 런데이 온라인 마라톤을 뛰어야 했다. 전날 11시쯤 누웠는데, 오랜만에 마신 커피 탓인지 잠을 자려고 사투를 벌이다(정말 그런 느낌이다), 새벽 3시엔가 잘 수 있었다. 그러니 순수하게 피곤했다. 게다가 어쩌자고 이 더위에 아직 달려본 적 없는 7킬로미터를 신청해서(지난달 3K가 아쉬웠겠지), 부담감이 피곤함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아, 거의 날마다 이런 아침을 맞이하며 살던 시절이 있었는데, 하고 짧게 추억이 스쳐갔다. 그러면 이후의 세월은 잘 만큼 자고 눈이 떠지면 일어나는 태평한 세월이었느냐 하면, (그런 날들도 있긴 했지만) 그보다는 내가 낳은 어린 생명체들의 언어적/비언어적 필요에 반사적으로 퍼뜩 눈뿐 아니라 온몸이 깨서, 찰나의 싸움 없이도 이 세상에 번쩍 하고 나타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나는 굉장히 사치스런, 행복한 싸움을 하고 있는 건가? 오직 나만을 위한, 온전히 내 선택에 달린 일. 결과의 어떠함도 고스란히 나의 것인 일. 이런 일이라면 나는 좀 자신이 있었다. 그래, 나는 한 발 더 나아갈 거야. 이렇게까지 경건할 일인가 싶었지만, 그런 문장을 읊조리고 눈을 떴다. 기분이 좋아졌다.





완주, 끝까지 나와 싸우지 않고 달리는 게 목표였다. 기온은 벌써 27도였고, 습했다. 믿었던 구름도 별로 없었다. 3주 전 과훈련으로 타격을 입은 뒤, 2주 동안 제대로 달리지 못했다. 잘 되어갈 때 7킬로미터 가까이 달렸으나, 함부로 입에 올리기 부끄러운 '왕년'의 일처럼 느껴졌다.


'절대로 걷지만 말자'가 아니라 '걸어서라도' 쪽이었다. 그렇지만 그전에, 아주아주 천천히 달려서 무리가 되지 않는 상태로 달리자고 마음먹었다. 거기에 최근 드디어 깨달은 대로, 케이던스(보속: 분당 걸음수)를 180에 맞춘다는 생각으로 보폭을 좁게 해서 총총총총 뛰었다(그래야 무릎에 부하가 적다).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에어팟에서 들리던 소리가 끊어졌다(런데이 기본 음악 대신 다른 걸 틀 수 있다는 걸 안 후로 음악 대신 오디오매거진이나 뉴스를 듣는다). 데이터가 바닥난 건지, 버튼이 잘못 눌렸는지 알 수 없었다. 읽을거리 없이 지하철에 타는 것마냥 들을 거리 없이 달리는 것이 왠지 불안했는데,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란 생각에 그냥 달렸다. 아무 기기 없이 달려보라는, 자연의 소리와 내 호흡 소리에 귀 기울이며 달려보라는 김성우 코치의 말을 드디어 실행에 옮겨보는구나, 하면서.


호수의 둘레길과 하천 옆의 산책로를 지나고, 내가 매일 거니는 동네 길도 달렸다. 나처럼 달리는 사람, 자전거를 타는 사람, 걷기 운동을 하는 사람, 그냥 걷거나 서 있는 사람들을 계속 지나쳤다. 눈으로 내려오는 땀을 수건으로 훔치고, 물을 입에 털어 넣다 보면, 몇 킬로미터를 지났고 순위는 어떠하다고 런데이 코치가 말을 해줬다.


그렇게 한 시간쯤 달렸다(정확히는 1시간 1분 22초). 마지막 1킬로미터는 속도를 좀 높였고, 500미터 남았을 때부터 스퍼트를 했는데 줄곧 오르막길이었다. 아이고, 죽겠다 싶을 때 드디어 끝이 났다. 아무리 몰아쉬어도 숨이 찼다. 귀에서 왕왕대는 소리가 잦아들고 나자, 한 시간이 지났다는 게 놀랍기 시작했다. 분명히 아까보다 더 더웠고, 거리에 사람도 더 많았다. 눈 깜짝할 새 지나간 것도 아니고, 지루할 틈이 없었다기보다, 시간을 감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아무튼, 다 지나고 나서는 '마지막에 스퍼트를 하지 않았다면 좀 더 달릴 수도 있었겠는데?' 하는 속 편한 소리도 나왔다.





운동은 스트레스를 줄이고 기분을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다고 잘 알려져 있다. 이런 효과의 한 가지 원인은 운동이 스트레스 반응의 강도를 줄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된 훌륭한 예시는 두 집단의 실험 대상에게 공개 연설을 하게 함으로써 스트레스 반응을 유도한 스위스의 한 연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때 실험 대상이 된 두 집단의 참가자들은 지구력 종목의 운동선수들과 주로 앉아서 생활하며 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연령, 키, 체중, 일반적인 불안 수준은 두 집단이 비슷했으나,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은 현저히 달랐다. 두 집단 모두 심장박동과 코르티솔 수치가 상승했으나, 운동선수들의 반응 정도는 더 작고 더 빨리 사라졌다. 선수들의 몸은 스트레스 반응에 더 적은 에너지를 투자했다. 제한된 일일 에너지 모델에서 예측한 결과와 동일했다.
운동이 스트레스 반응에 미치는 건강한 억제 효과의 또 다른 예는 중간 정도의 우울증을 지닌 여대생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찾아볼 수 있다. 4개월간 실험에 참가한 여대생들은 8주 동안 규칙적인 조깅을 했고, 나머지 8주 동안은 조직적인 운동을 하지 않았다. 신진대사에 대한 진화론적 관점에서 예상할 수 있듯, 운동은 체중에는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았지만(실험 대상의 신체는 늘어난 운동량에 완벽하게 맞춰 조정되었다), 스트레스 반응을 감소시켰다. 규칙적으로 운동했을 때 실험 대상의 신체는 매일 아드레날린과 코르티솔을 30퍼센트 적게 분비했다. 우울증 역시 나아졌다. 우리 몸 전체에 운동이 미치는 효과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예다.

ㅡ허먼 폰처, <운동의 역설> 347~348쪽.


수건에 대한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다. 신혼 때 1년쯤 일을 쉬었다. 그 마지막 무렵 어느 때엔가, 나는 남편이 수건을 걸어놓는 모양에 대해 잔소리를 하고 있었다. 내가 가진 여유 덕에 나는 <프렌즈>도 몰아보고 요리욕을 불태우고 태권도장에도 다녔지만, 수건이 조금 이상하게 걸려 있는 것에도 신경 쓰이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동시에 존재하던 어떤 에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히 수건보다 내가 이상했다.


다시 직장에 다니고 한 달 만에, 수건 같은 건 수건에 적힌 글자만큼이나 관심 밖의 일이 되었다. 수건이 뭔가, 신경 쓰면 좋을 화장실 구석의 때나 신경 써야 마땅할 냉장고 안의 곰팡이까지도 나의 뇌 안에 들어올 수 없었다. 겨우 자고 겨우 먹고 겨우 씻고 나서 수건을 걸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이렇게 몰아치는 삶이 좋은 건 아니지만, 수건에 에너지를 쓰는 삶으로 돌아가지 말자고.


글쎄, 세상에 중요한 일이 따로 있고 하찮은 일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위대한 사람/삶과 별것 아닌 사람/삶을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아마도 '아름다움'처럼 기본적으로는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선이 있겠지만, 그 안에서는 완전히 자신만의 기준에 따르는 게 아닐까, 그 정도로 정리하고 있다.


그러니까 나로서는, 나의 정열이나 몰입하려는 성향, 잘하면 강박이 되는 완벽주의 같은 것들을 가지고, 집 안의 상태나 가까운 사람을 못마땅해하고 통제하는 데 쓰고 싶지 않았다. 그건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고, 이루고자 하는 것과도 거리가 멀었다.


한여름, 아무도 모르고 관심조차 없는 온라인 마라톤(그것도 7km)을 완주하겠다고, 더 자고 싶은 욕구를 잠재우고 나의 한정된 시간과 에너지를 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줄어든 시간과 에너지로, 어떤 일들은 신경 끄고 어떤 일들은 쉬이 지나칠 수밖에 없다. 덜 반응하고 덜 스트레스 받는다(체중에는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지만).


달리기로 달라지는 나와 내 삶이 마음에 든다고, 통합된 자아로 경건하게 말해본다.




요약

달리기에 에너지를 쓰면, 우리 몸은 스트레스 반응에 에너지를 덜 쓴다. (체중은 그대로일지라도..)



+) 케이던스에 대해 드디어 이해했다. 참고가 된 영상 두 개.


https://youtu.be/LNT4CRkSxLs?si=hJZpJNCUUbW8rojo


https://youtu.be/hvzMSIMweYQ?si=NC2X0sNnj2qEYv


열기의 지배자, 라고 한다.


7km를 달린 사람 29명 중 22위(40대 여자 5명 중엔 5위), 전 종목 여자 참가자 114명 중 13위라는 의미 같다. 지금 그게 무슨 의미가 있으리.


다시 슬슬 시동을. 땀 흘리기로 작정하면 언젠들 못 뛰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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