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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도 헤도헨 Oct 07. 2024

23주. 비결도 해결책도 아니지만

달리기 한번 해봅시다

오랜만에 만난 대학 선배는 나에게 건강해 보인다고 여러 번 말했다. 갈수록 젊어지는 것 같다며 '비결'이 뭐냐고 물었다. 내 머릿속엔 곧장 '달리기!'가 떠올랐지만 (그가 언제의 나와 비교하는 것인지 알 수가 있어야지. 육아 한가운데의 나를 기억하는 거라면 답은 달리기랑 상관없고...) 조문받는 그에게 달리기를 설파하고 있을 일은 아니어서, 나는 비밀을 숨기는 마술사처럼 자리를 떴다.


어제는 마흔이 넘어 아이를 낳은 친구를 만났다. 나에게 이런저런 육아의 고충을 털어놓으면서 특히 체력의 한계 때문에 힘들다고 말했다. 내가 달리기에 빠진 걸 아는 그는 농담처럼 달리기가 '해결책'일까 물었다. 순간 나는 그렇다고 말할까 말까 고민이 됐는데,  "그럼, 당연하지!"와 "그럴 리가." 두 쪽 다 진심이었기 때문이다.


5월 첫날 달리기를 시작한 이후로 나는 달리기가 좋은 만큼, 달리기에 감탄하는 만큼, 달리기를 추천하고 싶은 만큼 표현하는 걸 망설였다. (이 브런치북에, 같은 마음이거나 마음이 열린 사람에게는 좀 풀어놓았지만.) 이미 많은 사람이 말하고 있는데 나까지 보탤 게 뭐냐는 머쓱함도 있었고, 마땅히 시간이라는 시험을 좀 더 거쳐야 한다는 배포도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달리기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좋을 리 만무하다는, 좋다 한들 달리기 하나로 만사가 형통해질 리 없다는 회의 때문이었다. 신조차 모든 인간을 구원하지 못하는데 달리기가 뭐라고.


어떤 음식 한 가지로, 어떤 약 하나로, 어떤 운동이나 어떤 습관 하나로 살이 빠지거나 건강해지고 인생이 바뀔 것처럼 선전하는 것에 속고 싶지 않다. 모순되는 이야기에 우스워하고, 실제로 속았다가 씁쓸해하기도 했지만, 복잡하기 이를 데 없고 그래서 이해 불가능한 인간의 정신+육체나 인생사에 그런 쉽고 단순하고 말끔한 방법이 통할 리 없다는 걸 깨쳤으니까.


그래서 달리기를 하고 몇십 킬로를 감량했다거나 우울증을 고쳤다거나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부흥회의 간증 같은 이야기를 접할 때면 괜히 조심스러워졌다. 착각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니까 그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으니 난 속지 않겠다는 빳빳함이 아니라, 그들이 말한 것은 이야기의 전부가 아닐 수 있으며 그들에게 일어난 일이 내게는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잊지 말자는 만만함이었다.


그럼에도 달리기로 인해 어떤 효과를 보았고 변화를 겪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어김없이 눈길을 준다. 남의 달리기 이야기가 너무 궁금하다. 내가 경험한 것과 경험하지 못한 것을 살피고 겹치는 것과 비껴간 것을 발견하는 일이 아주 흥미진진하다.


달리기의 힘은 적어도 내게 '실재'인 것인데, 어떻게 이걸 과장이나 현혹 없이 제대로 설명할 수 있을까 싶었다. 자못 객관적인 태도로 정제되고 절제된 표현을 쓴다고 내 의도가 정확히 전달될까?


달리기에 대해 말하고 싶을 때마다, 그래서 머뭇거렸다. 어젯밤엔 곰곰 생각하다, 이 정도면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고, 당장 근질근질하거나 언젠가 주워 담지 못해 괴롭지 않겠구나 싶었다. "달리기가 구원의 열쇠는 아니지만, 확실히 달리기를 하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은 것 같아요. 그러니 일단 한번 해보면 어때요? 그 시도가 굉장히 쉬운 게 또 달리기랍니다."



첫 책이 나왔을 때에는 보름 정도는 구름을 걸어 다니는 기분이었다. 종이책이 집으로 와서 처음으로 그 책을 만지는 날도 기쁘고 최종 원고를 교정까지 마쳐 출판사로 보낼 때도 기쁘지만, 내 경우 제일 기쁜 날은 초고를 마치는 날이다. 이때의 성취감은 아주 단단하다. "이거 대단한 일이지?"라며 다른 사람에게 물어볼 필요가 없다. 대단한 일인 것이다.  /37-38쪽

생각해보니 글쓰기는 아주 좋은 취미였다. 약간의 전기료 외에는 돈도 안 들고, 대단한 장비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과 일정을 맞춰야 하는 것도 아니고, 날씨가 궂은 날에도 할 수 있고, 해롭지도 위험하지도 않다.  /47쪽

ㅡ장강명, <책 한번 써봅시다>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고 재미있어하는 두 가지, 내가 평생 하기로 마음먹은 두 가지가 이렇게 맞닿아 있다. 글쓰기처럼 달리기도, 운동화와 계절에 맞는 운동복 외에는 대단한 장비가 필요 없고, 그 외에는 거의 돈이 들지 않는다. 시작부터 끝까지 속도와 강도와 코스뿐 아니라 진도와 일정 몽땅 다 자기 편한 대로 하면 되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추우나 더우나 달릴 수 있다. 해롭기는커녕 유익하며, 웬만해선 위험하지 않다.


그리고... 글쓰기도 달리기도, 하기로 한 만큼(그 기준과 판단은 순전히 자신의 것인데) 해내면 세상 기쁘고 뿌듯하다. 그 만족감과 성취감은 누구도 무엇도 어찌하지 못 한다. 누가 인정해주건 말건 대단한 일이다.


그러니 달리기 한번 해보시라고, 손해 볼 게 뭐가 있겠냐고, 해보고 아니면 관두면 된다고, 지나가는 약장수처럼 한 번은 떠들어보고 싶었다.




요약

달리기 전도사처럼 구는 일이 썩 내키지 않는데도, 자꾸 할 말을 생각하고 있다.

어쨌거나 한번 달려보는 건 어떠신지...



가을가을~ 하루에 사계절이 다 있는 것만 같은.


달리기 상콤한 날씨, 다른 거 하기에도 좋은 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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