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지 않는 나머지 시간에도
그래, 알 것 같다. 내가 왜 달리기를 하는지, 어째서 계속 달리겠다고 확신하는지.
달리기의 좋은 점이랄까, 달리기를 하며 얻은 이점이랄까 그런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그런 것들은 (누군가 갑자기 물어도 열 가지쯤은 줄줄줄 댈 수 있지만,) 어쩌면 결과적인 것이고 부수적인 것이다. 그러니까 해보고 아는 것이지, 안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어젯밤, 오랜만에 같이 잠자리에 누운 막내가 물었다. "엄마는 요즘 힘든 게 뭐야?" 나는 대답했다. "음... 할 게 많아서 책 읽을 시간이 없어." "... 진짜? 그게 다야?" 여덟 살 아이가 그런 질문을 하고 무얼 기대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8세 맞춤형 대답을 해준 게 아니었다.
요즘 나는 정말 할 일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많고, 재밌는 것도, 궁금한 것도, 만날 사람도, 읽을 것도, 볼 것도, 다 너무 많다. (그리고 차근차근 웬만하면 다 할 생각이다.) 물론 이런 것들은 어느 정도 리듬을 타고 왔다갔다 하는 것이지만,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이제 인생에서 내가 할 일은 다 한 것 같은데... 왜 살아야 할까. 아이들에게 엄마로 더 있어주기 위해 무얼 붙잡고 살면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지냈다는 걸 떠올리면 조금 놀랍긴 하다.
반년 전 달리기를 시작하고 두 달이 채 안 됐을 때도 비슷하게 놀라는 일이 있었다. 종합건강검진을 받는 중에 정신건강(우울증) 관련 문진에서 나는 아무런 고민 없이, 지체 없이 '전혀 아니다'에 쭉쭉쭉 체크했던 것이다. 그런 일은 건강검진을 처음 받은 15년 전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 정말 신선한 경험이었다. 달리기가 이렇게 힘이 센가?
달리기를 시작하고 반년 동안, 달리기를 하고 있다는 것 말고 딱히 바뀐 게 없다. 달리기에서 이룬 것 말고(그런 것도 성취라면 말이다) 새로 이룬 것도 없다. 그런데 나는 다른 삶을 사는 기분이다. 내가 기억하는 행복한 시절들, 에너지가 차 있던 날들을 이어 붙인 것 같기도 하고 되찾은 것 같기도 하다.
이를테면 폭우가 쏟아지던 날 친구들과 온몸으로 비를 맞으며 세상에 외치듯 깔깔대던 순간, 대학에 입학하고 내게 활짝 열린 모든 일들에 기탄없이 문을 두드리고 발을 들이던 날들, 처음 연애를 하고 광장에 내리쬐던 햇살을 보고 세상 모두가, (그러니까 나를 포함해서) 이런 따스함의 은총을 받고 있다고, 모두가 귀한 존재라고 불현듯 깨닫던 찰나의 떨림, 아기와 끝 모르게 서로를 응시하며 이렇게 겹친 우주를 감당하기 위해 담대해지기로 점점 더 결심하던 시절... 그런 시간들. 그때의 나들.
어떻게 달릴 때뿐 아니라 달리지 않는 나머지 시간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을까? 달리는 시간이 30분이든 두 시간이든 그때 현재로 꽉 차 있는 것은 그럴 만하다. 너무 힘드니까. 그야말로 온몸으로.
그런데 그렇게 온몸의 세포가 깨어나면 웬만해선 금방 잠들지 않는 걸까?
처음엔 난데없는 움직임에 정신이 번쩍 들었고, 사정을 모르고 들쑤셔서 퍼지기도 했다가, 멱살 잡혀 끌려다니고 나선 하루 종일 파업하듯 드러눕기도 했다. 하지만 차츰 기지개를 켰다는 듯이, 몸이 풀렸다는 듯이 모든 순간에 여유롭고 너그럽게 준비 자세를 취하고 있다.
물론 모든 게 내 뜻대로 되어간다거나 걱정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거나 유쾌한 기분에만 사로잡혀 있는 건 아니다. 남향집의 커다란 창문으로 깊숙이 햇살이 들어와도, 어떤 식물은 이유를 모르게 죽어버리기도 하고, 화장실 구석의 곰팡이는 언제든 피어나고, 음식물 쓰레기를 모아둔 곳에는 날파리가 꼬이는 것처럼.
그리고 어느 날엔 구름이 껴서 남향의 집도 어두워지고, 또 어느 날엔 쨍한 햇볕이 따갑고 숨막히기도 하는 것처럼, 나도 어느 날엔 마음이 가라앉고, 어느 날엔 달리기가 힘겹다.
그래도 나는 자연스럽게 내 빛깔을 찾아가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 그 따스함과 에너지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도 하고, 창문을 활짝 열고 마주하고 싶을 때도 있다. 어쨌거나 사는 게 괜찮을 것 같다. 하루하루가 반갑다.
요약
달리기를 하고 가장 달라진 것은, 나의 상태와 삶에 대한 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