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지옥이라고 당신이 저승사자여야 하는 건 아니니까

by 씀씀


우리 팀은 모든 게 적당하다. 믹스커피의 프림과 설탕 같은 성비. 과하게 건조하지도 넘치게 부드럽지도 않은 분위기. 숨 막혀 죽지 않을 정도로만 인류애가 있는 팀워크와 일에 치일 때에도 한 두 번은 피식할 수 있는 만큼은 탑재된 유머.

주관적으로도 객관적으로도 어디 내놓든 손색없는 회사다. 결코 내 직장 자랑이라거나, 애사심을 투영한 발언이 아니다. 자타공인 그러한 부분일 뿐.

하지만 천국에도 악역은 있을 것이고, 지옥에도 개중에 아주 조금 덜 나쁜 사람이 있을 것처럼. 이 괜찮은 회사에도 문제는 있다. 아무렴, ‘사람’이 있는데 문제없는 공간과 집단은 천하에 만무할 테니까.


회사 꼬리표를 단 갈등이란 아주 상투적인 것들이기 마련. 그것들에 대한 설명은 뻔한 소리일 게 뻔해 넘기겠다. 그럼 무엇이 문제길래 이렇게 쓰고 있느냐. 위 뻔한 카테고리에 포함되지 않는 일이 내게 일어났기 때문.


지금 멤버로 팀이 꾸려지고 몇 달 쯤 지났을 때려나. 영문을 모르겠는 행동의 팀원이 생겨났다.


나와 상대와는 일로 크게 엮이는 관계는 아니라, 업무로라면 말할 게 한 달에 열 번은 될까?


그럼에도 상대는 온화한 성품, 나는 정이 많다는 어떤 정서가 비슷하고 유머 코드까지 핑퐁이 되는 덕에, 생판 처음 본 사람이던 시절부터 쿵기덕 하면 쿵 더러러러를 외치며 제법 잘 지냈던, 흔치 않은 사이.

다름아닌 거기에 균열이 생겼다. 원인은 두 사람 중 한 사람의 몰아쉬는 숨. 그 숨이 갈라짐의 시작이었다.

나의 착각이거나 과민일지도 모르는 지극히 개인적인 고백을, 일단 하자면 이렇다.


언제부턴가 내가 말을 하면 그 팀원의 대답보다 한숨이 먼저 나를 맞았다. 그리고 내가 이를 알았을 땐 이미 그 행위가 꽤나 거듭된 이후였다. 당연한 게 처음엔 처음이라 인지를 못 했을 거고, 몇 번 간의 다음 동안엔 그 반복이 우연인 줄로만 알았을 테니까.


아! 마침 한숨을 쉬려는데 눈치도 드럽게 없는 내가 함부로 말을 걸었구나! 이런 이런. 다음부턴 이 팀원의 바이오리듬과 들숨 날숨 타이밍을 잘 체크하고 말을 걸도록 하자꾸나 나 자신아!


하지만 대다수의 깨우침이란 게 그렇듯 한 번 인지하기 시작하면, 이제 그때부턴 순풍에 돛 단 듯, 해당 모습을 발견하는데 거침이 없어지는 법.

나라고 별 수 있겠는가. 한 날 아주 느닷없이, 갑작스러운 그 사실을 인지하고 나니 바로 다음 한숨은 가히 운명과도 같았다. 헌데 또 그다음엔 안 그러기에 내 기우였나? 했는데 속상하게도, 그다음엔 또 한숨이더라.


숨은 난무하는데 나는 숨이 턱턱 막히는, 이 요상한 산소부족 사이클을 몇 번 겪으며 사무실을 조망한 결과. 웬걸 그 한숨이 온니 원. 내게만 해당된다는 가슴 아픈 사실과 마주하고 말았다.


그때부턴 대환장파티였으니, 혼란 속에 복기로 머릿속이 분주했다.


-내가 좋아합니다 류의 고백을 했던가?

-내가 철학 쪽의 질문을 했나?

-영어 원서 독해 좀 해달라고 했을까?

-수학 문제 좀 풀어달라고 했던 거야?


뭐야? 왜 내가 무슨 말을 걸면 한숨을 쉬어?


아니다. 말을 걸고 나서 쉬는 숨은 그래도 양반의 숨이었다. 내 말을 듣기라도 했으니까. 어느 날은 일 때문에 궁금한 게 있어 갔는데 맙소사, 내 그림자를 본 건가? 말도 꺼내기 전에 한숨을 쉬길래, 불편하고 불쾌하고 불가피하여


“저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왜 한숨을 쉬세요?”


한껏 상한 마음으로 자리에 와버렸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감기엔 판피린, 한숨엔 한숨! 원래 사람은 학습과 경험의 동물이라, 느끼게 해 줘야 비로소 통찰을 얻는 것. 하여, 나도 기브 앤 테이크 정신을 발휘해 내게 말을 걸 때 묵은지 같은 한숨을 선사해 줄까 하였으나, 그러기엔 내가 너무 맘이 약했다.


불쾌한 감정보다는 속상한 마음이 진했다. 나에게 어떤 못마땅한 연유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뒤통수에 대고 한숨 쉬는 것도 피차 좋지 않은데 면전에 두고, 내가 용건을 꺼내기도 전에 한숨이라... 저 한창인 나이에 무슨 시름이 그리 깊을꼬 하며, 다 잘 될 거예요 파이팅! 을 외쳐주고 오는 것이 떡국을 열그릇 가까이 더 먹은 자로서의 옳은 자세였을까. 나이가 왜 나오냐 근데 여기서.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픽션에서나 가능할 일. 여긴 현실이고 나는 사람인지라, 사람이 아니었던 적이 없던 지라, 그 후부터는 자연스레 말을 걸 일이 줄어들었다. 어쩔 수 없이 정말 그 팀원이어야 하는 일에만 메신저를 보내는 것으로 대신했다. 저기 지척에 두고 메신저라니.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 하는 홍길동의 마음이 이거 비슷했을까.

근데 이건 아닌 거 같은 게 무언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느낌. 한숨 쉰 건 타인인데 그 한숨에 문드러지는 건 왜 내 속이란 말인가. 세상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불혹을 목전에 두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사실 의아했다. 어느 정도 나이 먹고 나서의 나는 오해네 갈등이네 하는, 이런 딱한 불협화음을 손 놓고 방치하는 꼴을 못 보는 스타일이라 뭘 해도 벌써 했어야 했다. 근데 이번만큼은 사뭇 발이 떨어지질 않았다. 어째서? 생각의 결과는 심플했다.


내가 뭘 하면 또 한숨이 따라올까 봐서. 그때 내 불쾌감과 상처는 도저히 내 스스로 케어할 자신이 없어서. 그리고 무엇보다 나 싫다는 사람은 나한테도 별 볼 일 없어서.


이거 이렇게나 면역력이 떨어져서야. 어서 회복탄력성을 키워야 했다.하여 나는 이 갈등을 극복하고자 좀 색다른 발상으로의 판을 짰다.

실로 위대한 정신승리. 방향을 틀어 표현하자면, 지혜의 샘물! 내 멘탈을 케어할 센스 만점의 팁!


저것은 한숨이 아니다. 심호흡이다.


그러니까 그 숨은


-나와의 막간의 토크가 꽤나 흥미롭고 매력적이기에,

-고개 돌리면 또 어떤 말이 본인 청각을 매혹할지 모르기에,

-나의 그 센스를 받아치기 위해서는 상당히 빠르고 매서운 두뇌 회전이 필요하기에.


묵음으로 흡, 내뱉으며 후우우 하는 심호흡. 근데 내가 센스도 없이 그 마음의 소리와 박자를 기어이 눈치채어버렸으니. 매너 없던 건 상대가 아니라 나였던 것이로구나.

그제야 비로소 마음이 평화로워졌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비단, 그 사람뿐 아니라 모든 이의 한숨이, 고단하고 치열한 삶에 잠깐 내쉬는 포효가라기보단, 이 바쁘디 바쁜 현대사회에서 심기일전하기 위해 외치는 기합이구나.


그렇다. 이렇게 나는 상대는 발발했는지 종전했는지도 모르는 전투에서, 허를 찌르는 기가 막힌 전략으로 나만의 1승을 거뒀다. 전리품도 챙겼다. 바로 지금 쓰는 이 후일담?


하지만 이렇게 멘탈을 다잡고도 거듭되는 심호흡을 목격하게 된다면... 더 생각해봐야만 한다 나도. 내 무엇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한숨 짓게 만들었는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했다. 세상이 아무리 변했다해도 나는 곧 죽어도 거기에 한표다.


백 번 양보해 타인도 지옥이고 회사도 지옥이라 치자. 그렇다해도, 적어도 그대만큼은 저승사자가 아니기를.



화, 목 연재
이전 01화나는 글을 잘 안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