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술에 립밤 대신 오겹살 기름을 발라주세요

by 씀씀


입술이 튼다. 겨울이 왔다는 얘기다. 이 건조하고 시린 날씨에 입술이 트는 건, 누구에게나 해당 되는 뻔한 소리겠으나 나한테만큼은 이슈다. 겨울이면 트는 입술 그것은 내게, 꾸밈말로는 개똥 같은 고집, 사실 적시로는 귀찮음. 속뜻으로는 외로움인 이유에서다.




나에게 입술은 외로움의 최전선이다.


입술은 겨울에만 안 하던 일을 한다. 똑같이 뭘 안 해도 희한하게 유독 더 뭐 없어 보이는 그 딱 한 계절 겨울에만, 다른 계절엔 않던 일을 한다.


하필 겨울이면 하루가 멀다 하고 입술이 트고, 공교롭게도 겨울에만 하루를 빠짐없이 입김이 난다.


입술이 유독 바쁜 때, 그럴 때면 어김없이 겨울이었다.




정상인한텐 아니겠지만, 이 감성충에게 이건 상당한 의미였다. 입술이 트고 입김이 나는, 몸 작은 곳의 소소한 변화라면 그 뿐일 일이, 내겐 위대한 신호였으니.


그게 마치 우리 몸 가장 최전방 한 곳에 있는 입이, 내가 너 하나는 지키겠다며 추위와 외로움을 가장 먼저 감지하고는, 곧 위기가 들이닥칠 거라고 일러주는 살신성인의 시그널 같았달까.




성탄절, 연말, 1월 1일까지. 얼핏 겨울은 외로울려야 외로울 틈이 없어 보이지만 내 눈엔 너무나 그 반대다.


그건 그냥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인간이 겨울에 너무 외로울까 걱정된 신이, 일 년 열두 달을 만들 때 겨울 시즌에 이벤트를 와르르 넣어준 것 같은 그런 거.


부디 이 계절의 본래 정서는 발견 말고 떠들썩하게 보내거라 신신당부 하면서. 그 위에서 제일 포근한 구름 하나 골라 산타 할아버지로, 산타 할아버지 지킬 사슴한테는 거기서도 귀한 빨간 별로 코까지 만들어 주며, 겨울이면 이 두 친구들이랑 세대 시대 불문하고 설레고 즐겁기만 하라는 신의 측은지심.




역사는 눈칫밥의 산물이다.


신이 그렇게까지 했을진대, 어떻게 일절 눈치를 못 채겠는가. 인류사 눈치로 산 세월이 얼만데.


모름지기 인간이란 겉으론 되게 반항아 같지만 사실 되게 말 잘 듣는 종족들인 바. 신이 아니었어도 알던 참이었다. 안 그래도 사는 일이 메마른데 여기에 겨울에 외로움까지 타면 큰 일 난다는 걸.


타고난 이 생존본능들은 똘똘 뭉쳐, 겨울이 시리지 않을 방법들을 고안했다. 신의 뜻을 받든다는 사명까지 있으니 성스러운 추진력까지 얻었겠다, 사람들은 거침 없이 대부분이 쉽게, 비슷하게 행복해질 수 있는 꺼리들을 이 계절 안에 무던히도 만들어 놓았다. 오뎅국물, 붕어빵, 소주 한 잔 하고 마시는 차가운 바깥 공기, 전기장판 위에서 까먹는 귤 같은 그런 것들.




고맙고 따순 풍경. 그런데 모두가 이렇게, 외롭지 말자는 외롭지 말라는 결심들에 열심이니, 나란 변태는 이 계절 본연의 고독을 탐하고 싶었다.


입술이 갈라져 따갑고 따가우니 침을 바르게 되고, 침을 바르니 마르면서 더 건조해지고... 악순환 속에서도 이놈에 똥고집은 죽어도 립밤은 아니란다. 그깟 립밤 몇 번 치덕치덕 댄다고 사라질 외로움이 아니라나. 입술 좀 덜 아프고 윤기 좀 더 나자고, 그 손가락만한 걸 꺼내 뚜껑 열고 뽀로록 입술에 덧칠하는 일이 괜히 치사스럽단다.


상기 본인 말하길, 외로움은 겨울에서 오고 겨울은 입술부터 온다고 했다. 이건 꼭 겨울표 외로움은 입술에서 시작된다는 뭐 그런 얘기처럼 되는데, 그렇다고 해서 입술이 보드라워지면 안 외로워진다는 뜻이 되는 건 아니다. 그런 논법대로라면 이윽고는 립밤이 행복이 되게 생겼는데 으, 너무 비약이지 않을까 그건. 립밤≠행복.




그래서 겨울에 고생하는 입술을 가여이 여기며, 이 외로움에 몰입해보라는 건지, 신과 인간들이 함께 설계한 겨울의 즐길거리들을 만끽하라는 건지, 뭐하자는 건지 모를 오늘의 글쓰기는,


야근 후 혼자 남은 회사에서 이 겨울다움에 보다 서정적으로 매몰되고 싶어한 나로부터 시작됐다.


갈라진 입술이 아파 검지 손가락으로 쓰다듬다, 오키 오늘 키워드는 입술이다 하며 들어와서는, 글자만 프리하지 절대 글자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될, 아주 영악함의 대표 문장인 ‘자유롭게 서술하시오'에게 본떼를 보여주는 중이다. 야! 니 뜻이 이런 건 줄 알기는 한 거냐. 너의 자유는 너무 갇혀 있어. 너무 주관적이야. 앞으론 ‘의식의 흐름대로 서술하시오‘로 해라. 애초에 시험에서 자유를 부리라는 게 모순이다.




요즘 제일 궁금한 한가지. 심심함과 외로움은 무엇이 다른 건가? 나는 요새 사는 게 미치도록 심심한데, 외로운 건 재밌다. 혼자 있으면 심심하다는 생각은 들어도, 외롭다 생각 해 본 적은 없다. 심심함이 외로움보다 더 상위 레벨의 고독함인 건가?


오해영이 그래서 그랬구나. 울면서 한다는 소리가 왜 나 외롭다 진짜가 아니라 나 심심하다 진짜였는지 이제 알겠다. 해영 언니 많이 힘들었겠다. 내가 앞으로 외롭다는 사람은 몰라도 심심하다는 사람은 진짜, 한 끼라도 거둬 먹일 거다.


그런 의미에서 누구 내 심심함 좀 거들떠 봐 줄 사람 없나? 내가 시린 겨울의 훈장인 튼 입술에 얄미롭고 치사스러워서 립밤은 못 발라도, 오겹살 기름은 디비 바를 준비가 다 돼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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