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한 번. 이 올빼미형 인간에게도 무려 미라클 모닝이 밝으니. 나의 그것은 사회적 개념과는 동떨어진 것으로, 내 기적의 아침이라함은 새벽 출근이다.
자의적으로 활짝 여는, 신인류의 멋진 그 아침과 달리 강제적, 타의적인 내 미라클 모닝의 특이점은, 새벽 출근 자체라기보다는 출·퇴근이 나란히 있을 때 더 존재감 있다. 오전 6시 반까지 출근헤 저녁 8시 퇴근. 닭이 울기 시작할 것 같은 시간에 일어나 올빼미가 활동 개시할 듯한 때에 집으로 가는 것인데, 이는 놀랍다 못해 경이롭다. 반복되는 경험임에도 불구 익숙하기는 커녕, 매회 어쩜 그렇게 새롭고 더 높은 강도의 피로로 갱신 되는지 신기하기 때문. 물론 아무개는 겨우 일주일에 하루면서 뭘 그리 꾀병이냐 할 수도 있겠지만, 매주 그 하루 씩을 보내며 십 년이 지났으니 나의 이 엄살이 정당성을 갖는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나의 오늘 아침 이즈 미라클 모닝. 역시 피곤은 전편보다 갱신됐다. 불면증에 근육이라곤 없는 저질 몸뚱이, 점심을 거르는 똥고집으로 약 14시간의 근무가 힘듦은 아는 바지만 뭔가 부족한 게, 필시 그게 다는 아닐 거라는 계산이었다. 여기엔 분명 나이가 작용했을 거라는 합리적인 의심. 암만 생각해도 옛날엔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으니 말이다.
오늘도 투머치토커인 나는, 이 얘긴 이쯤에서 역시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쉽고도 뻔한 결말로 마무리 짓고 넘어가려 했으나 웬걸. 책갈피를 단 기억 한 개가 둥실 떠오르며 말하길, 나이 탓이 아니란다. 근데 부정을 못 하겠다. 당최 부정할 수가 없는 게, 저 책갈피에 적힌 글자가 다른 것도 아닌 '처음'인 것을? 기억 앞에선 무소불위의 힘을 가지는 '처음'을 내가 무슨 힘으로 부정할 수 있을까. 내 무의식이 따옴표에 밑줄에 별표에 돼지꼬리에... 온갖 표시로 강조해놓은 절대적인 기억인데 그게.
그랬다. 십여년 전 첫 새벽 출근 때도 난 힘들었다. 당시엔 퇴근이 밤 10시였고, 꼬박 열여섯 시간을 회사에 묶여 있다 집에 온 나는 몇 분은 앉아서 눈만 꿈뻑꿈뻑. 움직이면 시간도 따라 흐를까봐 숨죽였다. 그때 기분이란 누구도 훔쳐가지 않았는데, 내 하루를 눈 앞에서 눈 뜨고 도둑맞은 느낌이었달까.
나는 그때 현장 일 하시는 분들이 그날 받은 임금으로 왜 그 쓴 소주를 드시는지 마음 깊이 이해하기에 이르렀는데, 그게 얼마나 이해했냐면,
그날 내 첫 혼술을 했다. 나이가 나이였기에 야밤에 혼자 소주는 좀처럼 용기가 안 나, 편의점 냉장고를 서성인 끝에 다른 술을 집어들었으니. 수줍은 매화수 한 병이었다.
늦었고 억울했고 피곤했고 짧았던 그 밤, 5월의 매화가 입 안에 흩날렸다. 언제 가도 잊히지 않을 위로였다.
오전 네시반에 일어나 여섯 시, 회사로 오는 길은 계절에 따라 모든 게 몹시 상이하다. 요즘 기준으로는 그렇다. 멍 때리다 창 밖을 보면, 이게 출근하는 건지 야근하고 퇴근하는 건지, 헛길릴 때가 더러 있다.
새벽 출근은 시간이 시간인지라 택시를 타는데, 그 즈음 집에서 회사까지는 서울이라기엔 한적하고, 도심이라기엔 유동인구가 특히 많지 않은 거리다. 드라이브 하기에는 참 좋을 조건의 거리지만, 새벽 출근 때에는 참 잔인한 거리다. 출근임을 알지만 제발 퇴근이어주세요 하는 짠한 착각은, 차라곤 다니지 않는 텅 빈 서울의 그 도로에서 속절없이 깨져버리니까.
오늘 출근길. 이게 출근길인지 퇴근길인지 나만 헛갈리려나. 오늘 새벽은 비바람에 유독 어둑했고. 날을 샌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퀭했다. 이건 아침의 상쾌함이 아니야. 자정의 고단함이지. 기사님, 저는 어디로 가야 하죠 아저씨?라고 묻지 않을게요. 가야할 갈 곳은 명확하거든요. 저희 집. 따블! 아니 따따블!
머리속으로 난리부르스를 추는 사이 예외는 무슨. 기어코 또 회사에 도착하고야 말았더라.
새벽 출근에도 날씨나 배차 이슈가 있으면 지하철을 타는데, 십수년 세월에 쌓인 데이터가 많아, 여기서도 꺼내게 되는 기억이 있다.
어느 겨울. 폭설에 택시는 일찌감치 포기하고 궁시렁 거리며 지하철을 탔던 날. 그건 분명 새벽 6시의 지하철. 그런데 나 서서 갔던 거 실화인가? 빈 좌석은 고사하고 서있을 공간 마저도 여유 있지 않았으니, 그 새벽은 내게 충격과 반성이었다. 다들 열심히 사시는구나.
사실 내가 탄 택시의 기사님만 봐도 그렇다. 나를 태우셨다는 건 나보다 이른 출근을 하셨단 얘기. 조금 부스스하신 모습은 그래서 정겨웠고 아직 데워지지 않은 차 안은 이 시간에 탈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추울 일도 아니었다.
이사를 다녔어도 결국 그 동네가 그 동네. 특히 요 십 년은 더욱 그랬다. 그러다보니 새벽 택시에서 구면인 기사님을 뵙는 일도 심심찮게 있다. 사실 나보다는 기사님이 먼저 알아봐 주신다. 이른 시간에 똑같은 경로다보니, 기억하시나보다.
‘제가 지난번에 모셔다 드린 것 같은데' '오늘도 일찍 가시네요? 저번에도 제 택시 타셨어요' 모닝커피보다 더 따뜻한 말씀을 주시는 분들부터, '손님께 오늘 좋은 일이 생기려나 봐요. 도착할 때까지 신호가 한 번도 안 걸렸어요' 행운의 부적을 척 붙여주시는 분까지.
하늘이 채 밝기 전, 일터로 오신 기사님이나 일터로 향하는 나나 그 마음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겠지만, 감사하게도 내가 탄 새벽 택시들은 대부분 따사로왔다.
이제 9시다. 밤 말고 아침 9시. 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그럼에도 밥벌이할 직장이 있음에 오늘의 나는 행복하기에, 이 행복을 함께하고픈 1인에게 짤막히 감사를 전한다.
제 찌뿌둥한 하루를 함께 시작해주신 기사님. 날이 궂습니다. 운전 조심하세요. 오늘 하루 좋으신 손님들만 태우셨음 좋겠고, 손님들에게 기사님도 베스트 드라이버로 남으시면 좋겠네요. 내일은 눈이 온대요. 내일도 안전하고 따수운 운전 바라겠습니다!
덕분에 출근은 잘 했습니다.
근무는 잘 모르겠습니다.
퇴근은 잘 오고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