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도 안 드는데, 역지사지합시다

by 씀씀


종교는 없지만 다른 류의 신앙은 있다. 믿는 것은 다름아닌 사자성어. 많은 말 중에서도 유독 세 가지. 인과응보. 고진감래. 역지사지에 독실하다. 인과응보, 고진감래가 이상향, 삶의 희망이라면 역지사지는 사는 일에 지침으로 쓴다.


역지사지에 대한 나의 신뢰와 추종은 대단한데, 그것은 역지사지가 어떤 과학적 연구와 수학적 연산 못지않게, 어려운 문제에 관한 답을 척척 주기 때문이다.


일단 내가 역지사지를 보통 꺼내드는 곳은 회사.


나는 오해나 갈등 같은 불편한 감정에 무관심한 걸 싫어한다. 해소할 수 있고 해소해야 할 부분을 될 대로 되돼라, 시간이 해결하겠지 하는 식으로 방치해 무럭무럭 키우는 것을 마땅찮아하는데. 먼저 그 전에 그런 상황이 생기는 자체를 불호하므로 내가 양보해서 피해지는 대립이라면 그런 손해쯤이야 감수하는 편이다.


하지만, 나도 이기적인 인간일 뿐이라 그 인내심은 정액제. 삼세판까지만 이용 가능하니, 만약 나의 반복된 배려를 옳다! 호구로구나! 여겨 3회 이상 무례가 거듭된다면 그때부턴 짤 없어져, 매우 신사적이나 아주 적나라한 대화의 장을 직접 그랜드오픈 한다. 그리고 바로 그때 내가 필승 매뉴얼로 삼는 것이 역지사지다.


그때의 대화란 내게는 상당히 스무스하다. 범한 무례는 까맣게 잊고 받아준 상대를 보며 쾌재를 부른 사람은, 역지사지 해 온 사람을 결코 이길 수 없기 때문. 상대에 대한 이해와 본인에 대한 반성, 상황에 대한 통찰이 선행된 사람과 그 과정이 생략된 사람의 대화란 애초에 레벨이 다르니까.


그렇다고 나의 역지사지가 상대를 이기는 무기로 쓰이는 것은 아니다. 그건 그저 나의 불편함을 종식시키는 수단. 나는 슬픔, 원망, 분노 같은 류의 감정을 이해함으로써 종결한다. ‘왜?'에 대한 답이 도출돼야만 감정과 상황에 대한 완전한 수긍이 가능한 것이다.


예를 들어 이별이면 왜 헤어졌을까. 왜 나를 떠났을까. 나는 왜 돌아서야 했을까에 대해 숙고하고, 그래서 그랬겠구나 답을 얻어야 비로소 슬프지 않다. 타인과의 신경전이라면 내 무엇이 불편했을까. 내가 상대라면 어땠을까 시뮬레이션하여, 물음표가 상쇄돼야만 대화든 사과든 skip이든 하는 깔끔한 용기를 낼 수 있다.


물론 이러는 나 또한 역지사지 끝장토론으로도 해결 못 한 관계와 오해를 반려템마냥 갖고 있는 바. 그럴 때면 있고 없는 노하우를 다 털어 새로 역지사지를 한다.


보면 미간 찌푸려는 이를 두곤 저 사람도겠지. 피차 마찬가지인 일에 내 미간 주름 더 새기지 말자며 역지사지. 내 속 긁어놓곤 아무렇지 않은 듯 앞에서 앞에서 동동대는 얄미운 혹자에겐 그래, 너도 내가 신경 쓰이니 약 올리겠다고 그 노력을 하는 거겠지. 너도 날 신경 쓴다니 억울하진 않다며 역지사지.


앞서 쓴대로, 내가 역지사지를 꺼내는 곳은 회사. 위와 같은 경험치 역시 거진 그곳에서 쌓았다. 보통 이런 주름&얄미움 유발자는 직장에 있는 게 국룰 아니던가.


이런 연유로 나는 그 유명한 회사는 돈 벌러 오는 곳이라는 말에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회사에 불편한 사람과 감정이 있으면 매일이 이유 없이도 가시밭길이기 때문이다. 정말 돈 벌러 온 것 뿐인 곳이라면 사람 스트레스 갖고 불편해서도 불평해서도 안 되는 게 맞으니까. 돈 벌게 해 주는 대가가 그 스트레스라는데, 그럼 잔말 없이 받들어야지. 돈 벌러 온 곳이잖아 인간 관계엔 기대도 미련도 갖지 않아! 하지만 사람은 스트레스야 하는 건 앞뒤 심하게 안 맞다.


고로 나는 회사는 돈 벌러 오는 곳이란 말을, 사실 사람이 제일 고프면서도 상처 받을까 두려워 사람을 돈 뒤에 둔, 짠하게 비겁하고 치사하게 안쓰러운 모두가 만들어낸 주문이라 여긴다. 역지사지 발생률 현저히 낮고, 역지사지 약빨 더럽게 안 먹히는 집단이 직장 사람이니까 말이다.


그놈에 역지사지 해서 크게 잘 풀리고 득 보는 중인 회사 생활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나는 인류애라곤 씨가 마른 직장의 한가운데서 오늘도 역지사지를 외친다.


퇴사하면 안 볼 사람이고 내 인생에 우주 먼지만큼 영향 못 끼칠 사람이래도, 나는 현재 엄연히 재직 중인 데다 회사에 돈만 벌러 온 게 아니니까. 인생도 배우러 왔으니까. 나만큼은 누군가에게 사람이어주고 싶으니까.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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