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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숙녀 Feb 16. 2024

숙녀의 버킷리스트. 정신과에 가다 9


-우리 아가씨는 불임됐지만 모르니 관리 잘 해


이것은 걱정인가 저주인가.


"네? 네, 감사합니다"


영혼 없기가 AI 수준이라지만 감사라니... 감사해? 왜? 어디가? 어째서?




그러고보니 이전에도 저것 비슷하게 와닿은 말을 . 긴 시간, 작가만을 꿈으로 꼽아 온 내게 고등학교 시절, 친구가 말하길

-넌 작가는 못 될 것 같아


... 그 날 강원도 한 여고에서 폭행사건이 발생했다면, 저의 폭행은 정당방위로 분류되는 거죠?


아직도 생각난다. 어찌나 분했는지 내가 너 때문이라도 무슨 '작가'든 되고 ! 이를 걸로 모자라, 왜 네 꿈은 유아교육과 나오면  것 같은 유치원 교사라 꿈에 막말냐며,   말로  못 게 이었다.


그뿐이랴. 방송막내''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  처음 떠오른 것도  친구. 이 프로 애청여라. 그래서 봐라 내 이름. 다음엔 미안해해라.


하지만 모두 내 야무진 꿈.  당시 친구 말에 폭행은 무슨. "? 그 딴 거 해야지"에 히읗도  꺼낸 나였기에, 친구 그 대화에 별표는 커녕 밑줄도 긋지 않았을 이었다. 상처가 내게나 상처지, 남에게도 상처이던가 어디.




허구헌날 저렇게 참으면서 내가 잘 참는다는 걸 인지한  습게도 최근 일.


대부분의 상황에서 성미가 급한 나는, 신기하게도 특정 상황에만큼은 참는 힘이 는데, 그 모순을 가능케한 영역은 바로 '불의'. 구체적으로는 '내가 겪는 불의'였다.


나는 내가 겪어야 하는 불의에 제법 평정심을 유지했다. 남들은 욱하고 지르고 하는데 이건 뭐 달관한 듯, 보았노라 알았노라 되었노라. 총알이 날아오면 오나 보다. 포가 터지면 터지나보다. 나 무신경한 사처럼, 무던히 겼다.


인생 2회차인양, 득도했나 의아해지는 내 고요의 비밀은 '척'. 다시 말해  평온 관상용라는 것었다.


한꺼플  에선 폭풍우몰아쳤다. 기분 나쁜데 이게 맞나? 나한테 무례했던 거 같은데 맞나? 내가 화내도 되는 게 맞나? 하는 자기 검열로 생각의 파동이 쉼 없는 상태. 내가 예민한 거 아닌가, 나의 과민일 수 있잖아? 어떤 감정 하나도 쉬운 게 없었다.


분이 마땅하 판단이 면 이제 두 번째 고비. 아까 못 , 상대의 무례함을 후벼파는 옥같은 멘트들이 넘쳐대니, 답한 노릇이었다. 때는 이미 지났는데 분노는 시작. 그걸 푸는 건 셀프에 한동안 만만한 사람이 돼야하는 게 서비스라니.




인생의 신비는 참 얄궂고, 쓸 데 없이 가깝다.


반대 끌린다는 게 여기서도 적용 일인지. 여우는 곰을 귀신같이 알아고, 악함은 약함을 빛보다 빠르게 감지한다.


빅모씨 같은(굳이 특성을 정의하진 않겠다) 인물이나 무리가 기 약한 사람을 알아보는 것만 봐도 그렇다. 듦족들은 인들이 온갖 유언비어로 쥐락펴락 하는 것에 호락호락 당하는 부류를 잘도 골라낸다.


타깃이 정해지면 그 때부턴 점입가경. 일단 다양한 장르 소문이 생산되는데, 그 소문 앞에선 백문이 불여일견도 힘을 못 쓴다. 처음이야 경계심을 갖고 설마하며 듣지만, 반복되는 자극적 일화나 평가에 사람들은 꽤 쉽게 스르르, 특별한 계기 없이 동화다.


그렇게 만들어진 선입견이 편견으로 굳어지면 제아무리 진실이라도 소문을 이기기 다. 문에 당하는 사람들은 그 경우 대부분 게으르기 때문. 분명 날 위한 해명이지만 한편으론 남 얘기를 떠드는 것이기도 한 일에, 소문을 만든 사람들과 같은 열정과 근면이 없다. 안 믿을 사람은 안 믿겠지, 그런 말들에 혹하는 사람이라면 나도 필요없어라는 마지막 절개만 밀어부칠 뿐. 말 같지도 않은 소리에 반응하는 자체가, 그 소문에 날개를 달아주는 꼴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억울한 건 억울한 것. 그렇다고 조선시대처럼 곳에 방을 붙호소하자니, 그건 또 법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고리인 세지라,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역풍을 맞을 수 있에 사려야 한다.


리하여  역시 말 안 섞고 귀 닫고 눈 감고 8년어까지 존버한 것이건만 결과는 무쓸모. 나아진 건 없었다. 한 번 문, 것도 아주 얌전한 먹잇감을 순순히 놓아주는 수는 없으니 말이다.


이런 이치로, 내 인생과 인성이 회사 어느 무리, 어느 구석에서는 세상 남루하고 파렴치한 것으로 변모해 있어도 나는 다 알 수는 없었고  알더라도, 내게 말해준  생각해 알면서도 몰라야 다.


참을 인 세 번 살인을 면한다 했던가.

나는 참을 인 백 번으로 나를 살려야 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해 안 되는 것. 참을 인자는 눈 감고도 휘갈길 경지에 이른 내가. 웬만한 뒷담화며 이간질은 마스터한 내가. 인내심을 사람으로 형상화 한다면 지금의 내가 아닐까 싶은 내가. 이해 못 할 험담 한 가지.


지난 여름 그 이야기. 대체 왜 한 걸까. 얻는 게 뭘까. 어떤 정신세계일까. 리플리증후군일까. 주변에 어떻게 사람이 있지. 그 썩은 정보에 기생하는 사람들은 뭐지.


인간이 희망이라 여겨, 내 사람들에게 인류애 풀 충전했다가도 빅모씨와 그 주변만 보면 인류애가 파사삭 식는, 이 일련의 과정에서 왜 원망이 향하는 곳은 저기가 아니라 나약한 내 멘탈인지. 서글프고 씁쓸하다.


인과응보야, 고진감래야, 사필귀정아.

운동 열심히 하고 책 많이 읽어서

조금만 더 힘을 키워주라.


나도 마음과 열심히 다니고

나한텐 생긴 불의엔 되바라지고,

밥 많이 먹고 잠도 잘 자서 힘을 키울게.


인생 긴데, 이 챕터에서 만큼은 우리 원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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