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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비령 Aug 04. 2024

모든 것이 끝난 것만 같았던 순간

  누구나 인생을 살다보면, 삶의 변곡점이 되는 순간이 있다. 내 경우에는 바로 ‘이혼’이 그 기점이었다. 어쩌다 이혼을 하게 된 건지, 이혼 사유에 대해서는 굳이 밝히지 않으려 한다. 다만, 이혼할 당시, 내 곁에는 이제 갓 6개월 된 어린 신생아가 곁에 있었다는 것과 내 인생에서 ‘이혼’이나 ‘싱글맘’같은 단어가 삶을 온통 지배하게 될 줄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는 사실만 이야기해 두자. 


  인생의 크나큰 위기가 된 이혼이 있기 전까지, 나의 삶은 그저 평탄했고 오히려 모범적이었다. 늘 모범상이나 선행상 따위를 받아가며 우수한 성적으로 학교를 졸업했고, 누구나 가고 싶어하는 sky대학도 졸업했으며, 당시 인기있었던 공무원 시험에도 합격한 터였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도 하고, 여자 팔자 뒤웅박이라고도 하더니, 딱 맞는 말이었다. 남 부럽지 않을 것만 같았던 인생 길이 졸지에 내리막길로 치닫게 된 건 누구의 탓도 아니었다. 다만, 그 길에 내가 운 나쁘게 서게 된 것뿐.           


‘어떻게 나에게만 이런 불행이 생기게 된 걸까.’ 

‘대체 내가 뭘 그리 잘못한 걸까.’ 

‘과연 내가 앞으로 주어진 인생을 멀쩡히 살아갈 수 있을까.’

'이제 뭘 어떡해야 하나.'

'당장 무엇부터 해야 하지?'     


  몇 년 전 이맘때. 차가운 겨울 바람을 맞으며 쓸쓸히 서울 가정법원을 터덜터덜 걸어 나오며 그런 답답하고 막막한 생각들이 온통 머리 속을 차지하고 있었다. 

  막막하고 두려웠다. 혼자서는 유모차에 태운 아이를 데리고 버스도 못 탔었는데. 이 모든 걸 나 혼자 감당해야 한다니.     


  인생을 한 편의 영화에 비유하자면, 미리 불행한 결말이 예정된, 최악의 시나리오에 처한 여주인공이 된 심정이었다. 하지만 삶이 정말 단 한 번 주어진 영화같은 시험대라면, 내게 주어진 이 열악한 상황 설정을 원망해서는 결코 변화란 이루어지지 않을 것도 같았다.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은 절망의 순간에, 비틀거리는 나를 일으켜 세워준 건 헌신적인 부모님의 육아 도움과 한 없이 맑고 어여쁜 아기의 존재였다. 햇살처럼 빛나는 투명한 이 아이를 두고서는 방황할 겨를조차 없었다.     


  물론, 싱글맘이 된 이후로, ‘만약 내게 아이가 없었더라면...’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어쩌자고 아이부터 낳았을까...’라는 생각도 몰래 해 보았다.

하지만 만약 그런 상황이었더라면, 홀로 된 것이 그렇게 큰 어려움으로 다가오지도 않았을 것이고, 정작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잊고 살았을 거라는 담담한 위로도 해 봤다.     


  아무 것도 모른 채, 한 부모 가정에서 자라게 될 나의 아이는 아무 잘못이 없지 않은가?

더구나, 태어나자마자 부모가 갈라섰다니. 가족이 다 함께 살아본 기억이 조금도 없을 우리 아이에게, 나는 어떤 가정의 양육자가 되어야 할 것인가. 무한한 책임감이 다가왔다.     


  이혼 도장을 찍고 법원에서 나온 뒤로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장난감 가게에서 노래하는 오리 장난감을 사서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에게로 달려간 것이었으니. 짐작건대 그간 돌싱 생활을 버텨낸 것은 구 할이 아이 때문이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모든 것이 다 끝난 것만 같았던 힘겨운 1막은 끝이 나고, 비로소 나의 진짜 삶이 될 인생 2막 '싱글맘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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