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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비령 Aug 04. 2024

이혼, 인생 최대의 실패? 어쩔 수 없었던 plan b

결혼은 신중하게, 이혼은 신속하게.

  mz세대들의 소개팅 첫 만남의 질문 목록에 ‘mbti’가 필수적으로 회자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물며 소개팅에서조차 상대방을 전략적으로 분석해서 나와 맞는 짝을 걸러내는 치밀함이 있어야 연애도 잘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내 경우에는 결혼이라는 인륜지대사를 결정함에 있어 어처구니없게도 순진하고 성급했었다.


결혼 적령기라는 30대 초반의 나이와 뭐든지 사회가 원하는 대로 성공적으로 통과해야 한다는 모범생적 강박관념에서 결혼도 성공적일 것이리라 착각했고 자만했다.

너무 쉽게 상대가 나와 맞는 짝일 거라 확정 지었고, 성급하게도 문제를 잘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었다.

첫 만남에서 결혼식장에 들어가기까지 불과 6개월이 걸렸을 뿐이니, 지금 돌이켜보면 뭘 믿고 그렇게 우쭐했었는지,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실패라고 생각된다.


  이제 와서 돌이켜 보건대, 나의 mbti가 p인 것을 굳이 변명거리로 삼아야 하나? 대학 시절 친했던 동기의 경우에는 대학 신입생 시절부터 인생 계획표를 세워 차근차근 하나하나 이루어가며 연애도 결혼도 성공했었고, 존경했던 한 선배님은 결혼하기 위해 10년을 사귄 남자 친구와 다시 결혼 예비 학교에서 결혼 생활을 위한 준비를 1년여의 교육과정으로 마친 뒤에야 웨딩마치를 올렸었다.


  아마 결혼 생활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위의 지인들처럼 결혼을 하기 전에 미리 상대방과 생활 방식이나 가치관, 삶의 문제에 대응하는 방식, 유머 코드, 집안의 분위기와 속 사정 등등 여러 가지 준비를 치밀하게 해야 하지 않았었나 싶다. 


  하지만 모든 결혼에는 결혼을 결심하게 되는 가슴속에 스치는 하나의 소중한 장면이 있듯, 모든 이혼에도 더 이상은 결혼을 유지할 수 없겠다는 망설임 없는 결정의 순간이 온다. 치밀하게 준비해서 결혼했든, 성급히 사랑에 눈이 멀어 결혼했든, 그 결혼의 유지는 당사자들이 원한다고 계속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여튼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결혼을 결정하고, 1년이라는 짧은 결혼 생활 끝에 또다시 민첩하고 용감하게 이혼을 결정한 뒤로, 내 삶은 의도치 않은 plan B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어쩔 수 없이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두 번째 인생에서, 이혼을 결정했던 순간의 씩씩함과 용기 대로, 나는 잘 버텨냈을까?


  내가 이혼을 결정함에 있어서 망설이지 않았던 이유 중에는 “괜찮아. 너라면 잘 해낼 거야.” “언니는 직업도 괜찮고, 아직 젊으니까 문제없어.”, “우리가 도와줄게. 언제든 연락해.”라고 지지하고 응원해 주던 많은 지인들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실제로 이혼 전까지의 삶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싱글맘으로 홀로서기 따위는 문제없이 해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싱글맘으로서 나는 한 마디로 회복탄력성이 매우 약한 사람이었다. 카더라 통신에 의하면 남들은 이혼하자마자 재혼도 하고, 다시 공부에 집중해서 더 좋은 직장으로 전직도 하고,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시작을 꿈꾸며 이민이나 유학도 간다고들 하더라. 또 드라마에서는 잊힌 사랑을 새로운 사랑으로 다시 찾아 더 행복한 일상을 살기도 하더라. 하지만 그 모든 행복한 반전은 현실과는 거리가 멀었다.

  

  현실은 이러했다. 나는 이혼 후 펼쳐질 수 있는 여러 가지 수많은 가능성들 중에서 어느 것 하나 이루지 못했다. 고물가 시대에 경제적으로 늘 쪼들리게 됐고, 한부모 가정의 가장으로 엄빠 역할을 동시에 해내느라 늘 정신이 없었고, 홀로 고군분투하다 보니 몸은 자꾸만 고장이 나서 여기저기 아프기가 일쑤인 데다가, 이런저런 핑계로 과거에 알던 친구들을 만나는 횟수도 많이 줄었고, 소셜 네트워크가 활발하지도 않았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나만의 취미생활이나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 등을 시도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고, 어느새 거울 속에는 표정을 잃은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존재하고 있었다. 

힘들다는 표현을 할 여유조차 없어지니, 매사에 의욕이 없어졌고 우울감은 깊어졌으며, 긍정적인 모습은 점점 줄어들었다.


  그러던 중 우울감이 깊어져 이런저런 상담 센터를 전전하다가
한 상담 선생님께 이런 권유를 들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드시면, 지금 감정을 글로 써보시면 어떠세요?”


  그랬다. 바로 글쓰기가 내 인생의 치트키가 되어주었고,
밑바닥까지 떨어진 나의 자존감을 일으켜 세워,
허우적대는 내 인생을 도와줄 구원투수가 되어 나타난 것이다.


사실 그 순간까지는 PLAN B에 대한 분명한 대책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그간 잘 살아낸 과거의 나를 믿었고, 아무 조건 없이 나를 도와주고 계신 부모님을 믿었고, 주변에서 나를 응원해 주는 모든 이들의 따뜻한 시선을 믿었다. 그리고 그 깊은 불행의 심연에서 조금씩 조금씩 헤엄쳐 나오는 스스로의 모습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인생의 플랜비는 10년이라는 아주 오랜 시간, 천천히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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