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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비령 Aug 04. 2024

최고의 이혼, 최선의 선택

삶이란 무대 위에서 최고의 배우가 되어 보자.

  그렇게 허우적대던 인생의 2막을 내리며, 불행을 피할 동아줄이 되어준 건, 이야기의 힘이었다. 나는 어떻게든 이혼에 대처하는 최고의 문제 해결책을 찾기 위해 이혼을 소재로 한 각종 영화, 드라마, 책 등을 모두 찾아보기 시작했다. 인생이 게임이라면, 무인도에 빠졌다하더라도 다시 회생할 수 있는 찬스는 있을 것 아닌가!

  무언가 나와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들의 희망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동화같은 환상적인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상상도 했다. 힘든 순간에 희망적인 음악으로 위로받듯, 그렇게 허구의 세계 속에 어떤 결말이 있을지 미리 내다보고 싶었달까.


  이혼 경험자이자 당사자로서 다양한 드라마나 영화를 바라볼 때, 이런 질문들이 떠올랐다.

'이혼하면 무엇이 달라질까? 얼마나 힘들까? 이혼 후의 삶은 어떻게 회복될까? 이혼하면 영영 불행한 걸까?'

'행복해지기 위해 하는 이혼인데, 이혼의 끝이 불행이라면 그 인생은 어떻게 보상받아야 하지?'


  그즈음 내가 보게 된 드라마 중 하나가 일본 드라마 '최고의 이혼'이었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우리가 흔히 가장 많이 생각하는 바로 그 이유 '너무나 다른 성격 차이'로 이혼하게 된다. 깔끔하고 잔소리쟁이인 미츠오와 덜렁대고 털털한 유카라는 두 인물이 계속 삐걱거리는 결혼 생활에 대한 회의 끝에 이혼장을 내밀고 순간적인 감정으로 이혼을 한 뒤, 이혼 이후의 심경 변화와 인생의 의미에 대해 비로소 깨닫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드라마여서 그런가. 다소 유쾌하고 재밌기까지한 이혼 설정은 '저런 이혼이라면 한번쯤 해볼만하지 않을까'싶을 만큼, 흥미롭게 그려졌다. 그러나 직접 이혼을 해 본 입장으로서는 드라마의 대사나 장면들이 뼈아프게 다가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혼을 극복하기 위한 질문들 중에 어느 정도의 해답을 얻었다. 작가가 이 드라마의 제목을 '최고의 이혼'이라고 지은 이유부터가 공감이 됐다.


  보통 최고의 결혼. 최고의 만남은 있어도 최고의 이혼, 최고의 이별은 없다고들 흔히 생각할 것이다.

나 역시도 이혼이라는 특별한 이별을 경험하기 전에는 하나의 헤어짐이 인생을 이렇게 송두리째 바꿔놓을 줄은 몰랐다. 드라마에서 이혼에 대해 영감을 주는 주옥같은 몇 몇 명대사가 나온다.     


"이혼 때문에 놓치고 사는 게 많아."

" 이혼은 최악이라 생각하지만, 이혼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최악은 쇼윈도 부부죠.

상대에게 애정도 없고 기대도 없는데 함께 있는 게 최고의 불행이죠."     

" 누구에게나 이혼 버튼은 있어. "     

"혼인 신고서 제출이 결혼의 시작이듯, 이혼신고서 제출은 이혼의 시작일 뿐이야."     

"내가 생각하는 행복은 당신의 행복이 아니었어./ 당신이 생각하는 행복은 나의 행복이 아니었고."     

"누가 나쁘다고 탓할 게 아니에요. 모두 타인이니까. 다른 곳에서 태어나 다른 길을 걸으며 자란 타인이니까."     

"결혼은 인생의 일부밖에 안되지만/ 이혼은 인생의 전부가 있다."     

"이혼하면 자유로워질까라는 건 큰 오산이야. 결혼 생활의 늪은 대체로 범위가 보이지만

이혼 생활의 늪은 끝이 보이지 않아. 얼마나 깊은지 몰라."     


..... 그저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혼의 늪은 끝이 없다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아마 살다가 큰 이별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가장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라든가, 가장 믿었던 사람의 배신을 겪었다든가, 가족을 잃은 깊은 슬픔이나 가족과의 단절을 겪었다든지 하는 너무나 큰 상실을 경험하게 되면, 감히 '슬프다. 힘들다'는 말조차 할 수가 없다. 그런 극단의 슬픔과 단절의 상황에서 방황한다고 누가 욕할 수 있을까.


  살다보면 경험하지 않는 이상 절대로 알지 못할 감정들이 몇 가지 있다. 이혼 후 겪는 대 혼돈의 드라마야말로 진정한 인생의 출발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혼은 그 누구라도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돌아보게 만들고, 애절했던 추억에 젖게도 하며, 기대하지 않았던 현실에 대해 절망하게도 하고, 이미 지나버린 일들에 대해 후회도 하게 만들며, 초라한 나 자신을 원망하고 자책하게도 하고, 새로운 만남에 대한 두려움에 젖게도 한다.


 그러나 그 모든 대 혼돈의 소용돌이 속에서 잠시 멈춰있다보면, 인생의 진실이 무엇인지 아주 조금은 알 것도 같은 느낌이다. 드라마에서 미츠오는 이혼 후 혼자가 되어버린 일상 속에서 혼자 사색도 하고 뼈아픈 외로움에 몸서리치기도 하고, 열심히 하루를 보내다가도 집에 돌아오는 길 횡단보도 앞에서 넋놓고 멈춰있기도 한다. 자신을 믿어주던 주변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몸 둘 바를 모르며, 할머니와 가족이 있는 가게에도 마음대로 발을 못 디딘다. 한편으로는 새로운 만남을 기대하며 자신을 좋아해주는, 전 아내와는 전혀 다른 연하의 이성도 만나보지만 끝내는 진심을 다해 누군가를 대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낀다.      


  단순한 연인 간의 헤어짐이라면 이렇게 복잡한 심정이 들지는 않을 터..

  이혼이라는 과정을 인생 공부에 비유한다면, 그간 살아온 30,40년의 인생을 일찍 졸업하는 느낌이라고 하면 적절한 비유가 되려나? 무언가 석연치 않은 중도 탈락으로 인생이 비비 꼬인 느낌. 하지만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탓한다고 바꿀 수도 없다는 차가운 현실.          


  작가는 드라마 제목을 왜 '최고의 이혼'이라고 정했을까? 이혼은 삶에 있어 모두가 마땅히 원해 바라지 않는 최고의 결과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어쩔 수 없는 헤어짐이었다면, 이왕이면 최고의 이혼을 하는 게 좋지 않겠는가. 아무리 최고의 이혼이라 해도 드라마 주인공들이 온몸으로 표현해냈듯, 이혼은 결코 만만한 과정이 아니다. 험난하고 슬프고 절망적인 긴 터널을 인내심을 갖고 스스로 극복해내야만 하는 긴 싸움이리라. 이혼의 시작은 이혼 신고서의 제출이었지만, 이혼이라는 과정은 삶이 계속되는 한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럼에도, 용기내어 이혼이라는 버튼을 누른 우리들을 질책하거나 탓하지 말고, 인생에서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라고. 그렇게 토닥여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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