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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비령 Aug 08. 2024

자기 돌봄과 치유, 문학 읽기의 근원

우리는 왜 남의 글을 읽을까요?

그 단순한 질문에 한 번에 속 시원하게 대답하기 위해서, 몇 편의 글을 얼마나 깊이 이해해야 하는 걸까요?


세상의 수많은 이야기들을 끊임없이 읽어내는 행위는 삶을 잘 살아내기 위한 몸부림에 다름 아닙니다.


저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단편, 장편, 사실주의, 환상주의, 모더니즘, 프랑스문학, 일본문학, 한국문학, 환상동화, 전설, 우화, 옛이야기, 작가론, 작가의 창작 이야기 등등에 중독되기 시작했습니다.


'책 속에는 현실과 어딘지 한 뼘은 다른, 순수한 공간이 존재할 것 같아.'

'여기가 아닌, 다른 이국적이고 환상적인 공간의 색다른 삶이 궁금해.'

(이 질문들은 문학 속에 구현된 '현실 너머의 공간에 대한 순수한 상상'을 자극하는 의도에서 나온 거예요)


'작가는 무언가 특별한 경험을 한, 닮고 싶은 사람들이지 않을까.'

'작가들은 도대체 그 작고, 아무것도 없는 빈곤한 공간에서, 그토록 깊고 넓은 이야기들을 생산해 낼 수 있는 걸까?'

(이 질문들은 인생의 선배이자 선경험자로서 작가들에 대한 존경과 애정에서 나온 생각들이고요.)


'프랑스 사람들은 정말로 밥을 2시간씩 먹을까? 그 긴 시간, 소설 속 주인공들은 무슨 철학적 대화를 하는 거지?'

'토끼전에서 왜 하필 '토끼'가 선택됐을까? 토끼에 관한 다른 나라의 이야기가 궁금해져.'

'해리포터는 환상문학이다. 그러나 분명 해리포터의 기원이 되는 또 다른 이야기가 어딘가 있을 거야.'


'술 권하는 사회, 장마, 비가 오는 날.... 듣기만 해도 우울한 제목들이다. 무엇이 그렇게 우울했을까. 그 불행은 사실일까? 소설 속에서라도 다른 결말을 기대할 순 없을까?'

'인간 실격이라니, 대체 무얼 그리 잘못 살았길래 그런 평가를 한 걸까. 좋은 인간의 자격은 뭐지?'


(이 질문들은 문학에 등장하는 다채로운 사실들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에서 발동한 것들이에요. 다양한 이야기들을 접하다 보면, 그만큼 생각이 확장되고, '지금, 여기'의 좁은 공간에서 벗어나 '인간의 본질, 참다운 인생'등 조금 더 거창한 이야기로 관심사가 넓혀짐을 경험할 수 있어요.)


.......


질문들은 끝도 없이 이어집니다. 역설적이게도 질문은 또 다른 꼬리 질문을 낳고, 그렇게 계속 답을 찾아가다 보면 어느새 책, 특히 문학 작품들과 친밀한 교류를 이어가게 되죠.


결국 문학 읽기는, 세상의 모든 궁금증을 풀어가는 과정이자, 인생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문학을 읽는다는 것(테리 이글턴, 2016)>에 보면 문학에 대해 다음과 같은 정의가 나옵니다.


각각의 예술 작품은 기적과 같은 새로운 창조입니다.
그것은 신의 세계 창조 행위의 모방이자 반복이지요.
전능하신 신처럼, 예술가는 마술을 부리듯 무에서 자신의 작품을 만들어냅니다. 그것을 고무하는 것은 상상력이고, 상상력이란 현실성보다는 가능성과 관련됩니다. 그것은 예전에 존재하지 않은 것을 불러내어 존재하게 할 수 있습니다.


멋지지 않나요? 세상의 모든 문학 작품들은 기적과 같은 새로운 창조인 것입니다.

그 속에는 수천 가지의 개성적인 인물들과, 그 인물들이 그려가는 다채로운 삶의 방식과,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해 가는 기적 같은 이야기들이 펼쳐집니다.


때로 희극일 수도 있고, 비극일 수도 있지만, 어떤 결말이든, 그것은 또 그런대로 아름다운 것이겠지요.


저는 이런 문학 읽기가, 세상사에 지친 우리들을 치유해 주고, 스스로를 돌보게 하는 '치유자'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저 역시, 인생의 깊은 고난에서 허우적 댈 때,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을 때, 그 어떤 친구의 위로보다도 작품 속 인물들의 이야기 속에서 위로를 얻었습니다.


위로가 되어준 고마운 문학들 중에는 소설도 있었고, 시도 있었지만, 그 모든 이야기의 공통점은 나를 다시 출발점에 서게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보잘것없는 현실의 나를 잊게 하고, 작품 속 주인공이 되어 인생을 새롭게 사는 느낌이랄까요?


작품의 시작과 함께, 서사는 발단부터 사건의 시작을 함께 경험하게 하고, 위기와 절정을 통해 함께 시련을 겪게 합니다. 결말을 통해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거나 감정의 해소라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거나, 그도 아니면 새로운 시작을 꿈꾸게 되거나, 아니면 내가 직접 이야기의 재구성을 통해 '글을 쓰는 인격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시는 또 어떻습니까? 순간을 가장 아름답게 포착하는 시는 개인의 은밀한 감정선을 자극합니다. 누구도 이해해주지 못할 것 같은 나의 복잡 미묘한 마음들을, 시인은 예리하게 포착해 냅니다. 아름다운 장면을 묘사한 사진이나 회화 같은 예술 작품도 좋지만, 저는 회화적 요소에 곁들여 옆에 짧게라도 표현된 '언어적 묘사'가 우리의 마음에 보다 근접하여 삶을 상세하게 설명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에 어려운 비평이나, 심오한 철학을 굳이 접목시키지 않아도 좋습니다.
다, 괜찮습니다.
그저 문학이 나에게 위로가 되고, 내 삶을 치유해 주며,
스스로의 삶을 돌보게 해 주는, 한 없이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힐링의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세상 모두가 좋다고 함께 외쳐도, 나에게 쓸모없는 작품은 부질없을 테니까요.


문학의 다양한 쓸모에, 한 스푼의 애정을 더하여, 달콤한 휴식과도 같은 '독서의 즐거움'에 빠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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