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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비령 Dec 29. 2024

다시 태어나도 너의 엄마가 될게.

(24.12.29 발생한 항공참사와 관련하여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길지 않은 인생이었지만 세상에 태어나 가장 보람된 일은 '엄마'가 된 일이다. 

명문대에 합격한 일도, 남들 다 부러워한다는 안정된 직장에 들어가게 된 것도, 백마탄 왕자와 같은 남편이라 착각하고 결혼했던 일도.. 지나고 나니, 그저 '하나의 관문'처럼 통과했던 의례에 불과했던 것 같다. 

그런 것들은 마치 사라지는 신기루를 좇기위해 너나 할 것 없이 달려가는 불나방의 날갯짓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엄마가 됐다는 건 다르다. 

부모가 된다는 건, 세상에서 가장 희망적인 경이로운 사건이다.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존재를 온전하게 사랑할 줄 알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비로소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다.


비록 이혼을 했을지언정, 돌아온 탕아도 아니고, 돌아온 싱글이 되어 부모님 가슴에 대못을 박았을 지언정.

내게는 세상 하나뿐인 아들이 생겼다. 그리고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너를 얻기 위해 그때 그 결혼을 했었구나. 너는 유일무이하구나. 

너로 인해 비로소 엄마가 사람처럼 살게 됐구나. 정말 너무 감사하고 고마워. '라고. 



문득 내 아이를 처음 만난 순간이 기억난다. 

(지금부터는 독백형식으로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처럼 써 갈 예정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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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소식을 알고나서, 처음 방문했던 산부인과에서 봤던 초음파 사진 속에는

'불과 1.5cm의 엄지손톱만한 네가 내 안에서 잉태되어 있었지.

엄지공주도 아니고, 엄지왕자라 불러야 하나?

믿을 수가 없었어, 새로운 생명을 내 안에 품게 되었다는 기적같은 사실을..'


유산기가 있어서 임신 초기에는 한 달여를 누워만 있었다.

중기에는 임신성 당뇨가 생겨 한 겨울에도 1시간을 넘게 바깥 산책을 하기도 했었고, 

말기에는 발이 퉁퉁부어 신발도 신을 수 없어서 집안에서 아이의 탄생을 기다리며 서툰 손바느질로 배넷 저고리나 손싸개, 애착 인형 등을 만들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너무 힘들어서 이제는 좀 세상 밖으로 나와줬으면 할 때, 네가 우렁찬 울음을 내지르며 다가와줬고,

출산 후 아직 회복도 안 돼서 잠이 비몽사몽한 상태에서 간호사님께서 널 데려와 '초유'를 먹여야 한다고 하셨었지. 어찌나 건강하게 젖을 먹던지. 뒤로도 너는 가까이 모유만 고집하던 줏대있는 신생아였어.


인형같이 작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르던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 뒤집고, 목을 가누고, 기고, 걷고, 뛰고....

어느 날은 '엄마'라고 말을 하고, 또 어느 날은 색연필을 쥐고 멋진 풍경화를 그려내 온 식구를 놀래키고,

또 어느 날은 신사처럼 양장을 빼입고 '꼬마 신사'라고 칭찬을 받기도 했었지.


유치원에서 재롱잔치를 할 때 배웠던 노래라며 

"엄마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이제는 내가 지켜줄게요~"하며 눈시울에 젖게도 했었지.


이제는 산타할아버지가 엄마인 줄 알면서도, 

'엄마, 산타 할아버지한테 인사드려야 하니까, 오늘 밤은 안 잘 거에요."하며 엄마를 곤혹스럽게도 했었지.


참으로 많은 순간들이 있었지.

그 모든 순간마다 엄마는 감동 받았고, 뭉클했었고, 너와 함께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행복했었지.

그래서 지난 십 년을 절대 후회하지 않을 수 있었고, 앞으로 남은 세월들도 기대하며 살아가게 되었다.


엄마가 된다는 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을 얻는 일이자 축복이었단다.



아마 모든 엄마들이 같은 마음 아닐까?

엄마가 된다는 건 매우 힘들고 버겁기도 하고, 전에 없던 새로운 시간들이지만, 엄마로서 보낼 수 있는 시간들이 유한하다는 것을 알기에, 아이와 함께 보내는 이 시간들을 후회없이 보내고자 한다. 

아이가 있었기에 행복했던 십 년의 세월이었고, 그 아이로 인해 모든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여인은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 이 말은 진리이다.

엄마이니까 다 해낼 수 있었던 거다. 

지난 십 년의 세월은 이혼 후 홀로서기의 시간이기도 했지만, 내 아이와 함께 성장했던 다시 오지 않을 벅찬 감동의 시간들이기도 했다. 


아이와 함께 여행했던 모든 장소들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의 공간이 되었고, 

집안 가득한 아이만의 순결한 냄새는 '애 키우는 집'의 풋풋한 즐거움을 알게 했다. 

아이를 통해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인생을 역주행하며 모든 것을 새롭게 재경험할 수 있었고, 남자 아이를 둔 덕에 새로운 스포츠들을 배워가며 생활이 다이나믹해졌다. 


크리스마스, 명절, 신년, 입학식, 졸업식, 생일 파티, 방학 중 여행 등.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모든 순간들이 행복한 스냅사진으로 남았다. 꼭 무언가를 화려하게 할 수 있어서 아름다운 건 아니지만, 삶의 많은 순간들을 '아이처럼' 지낼 수 있어서, 더없이 즐겁다.


그렇게 엄마가 되어왔나보다. 완벽한 엄마가 아니라도 괜찮지 않을까?

무언가 완성된 아이로 키우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좋으리라.


다시 태어나도, 내 아이의 엄마가 되고 싶다.

이혼은 그저 하나의 과정일 뿐이었다. 앞으로도 인생이라는 돛단배는 어떤 바람을 만나 흘러갈지 모르니까.

그저 이렇게 인생은 아름다운 것이라는 걸 잊지 않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서로를 보듬으며 지낼 수 있다면. 그리고 내 아이의 앞길에 어떤 시련이나 고난이 존재하지 않기를 하루하루 기도하며 지낼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완결되어가는 우리의 삶에서,

후회없는 하루 하루를 보낼 수 있기를 빌며, 이 글을 마치려한다. 


지금까지 제 글을 읽어주시고, 많은 응원과 관심과 공감을 보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Adios Am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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