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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진 Sep 03. 2021

“닫힌 창문”

유리네 집

존재 - 현실에 실제로 있음


유리는 원룸에 산다.


흙이 잔뜩 묻은 흰색 컨버스를 발끝으로 벗겨 내고 집안으로 들어서면, 모든 것이 작게 느껴지는 방에서 그나마 위로가 되는 침대가 유리를 맞이한다. 엄마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이 집을 얻은 목적이었기에 집의 크기며, 위치며, 모양 따위를 잴 수 없었다. 서둘러 얻을 수 있는 집을 찾아 계약했지만, 그래도 침대는 조금 컸으면 했다. 아무것도 없이 독립을 해야 하는 처지에 침대마저 가장 작고, 싼 것을 고르자니 자신이 초라해질 것만 같았다. 방 자체가 워낙 작아 침대가 크면 답답할 거라는 아빠에게 딱 한 단계만 큰 사이즈로 주문해 달라고 부탁했다. 딸의 간절한 설득에 아빠는 굳이 더 말을 보태지 않고, 중간 사이즈의 값이 제법 나가는 침대를 주문했다.


유리는 대학 입학과 동시에 아빠와 살던 집을 떠나 엄마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아빠 집에서는 통학 자체가 불가능했다. 물론 엄마 집에서도 학교까지는 버스로 40분이 조금 넘게 걸렸지만, 이 정도의 통학 시간이면 준수했다. 문제는 열 살 때 헤어진 엄마와의 결합이었다. 아빠는 엄마와 다시 사는 것은 절대 안 된다며 말렸다. 그래도 10년이나 시간이 흘렀으니 그 시간만큼 엄마도 달라졌을 거고, 유리 자신도 성장했을 거라 믿었다. 아빠를 달래듯 안심시켰다. 아빠는 유리에게 평생 이길 생각조차 안 하는 사람이었다. 아주 잠깐 언성이 높아지긴 했어도 아빠는 유리의 뜻대로 10년 만에 ‘엄마와 함께 사는 딸’을 허락했다.   


유리가 막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아빠와 엄마는 각자의 길을 걷기로 했다. 엄마는 유리를 임신하고부터 경계선 인격 장애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고, 유리가 태어난 직후에는 충동 조절이 전혀 되지 않았다. 아빠와 외가 가족들은 임신 우울증이 산후 우울증으로 이어진 것으로 생각해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거라 믿었지만, 엄마의 증상은 갈수록 심해졌다. 엄마는 마치 세상의 모든 불행의 원인이 유리에게 있다는 듯이 어린 딸에게 감정을 쏟아 냈다. 딸을 지켜야 했던 아빠는 엄마에게 이혼을 애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꽤 잘 나가는 사업체를 운영하던 아빠는 서울 집을 엄마에게 주는 조건으로 이혼 승낙을 받을 수 있었고, 아빠는 청주에 작은 아파트를 얻어 유리와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사업으로 인해 매시간을 아껴 쓰던 아빠는 유리에게는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 자신을 십 년이나 홀로 키워낸 아빠의 수고를 알기에 유리는 빨리 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10년 만에 마주한 엄마는 변한 게 없었다. 여전히 엄마는 모든 불행을 유리의 탓으로 전가해 버렸다. 유리는 엄마가 참 쉽게 세상을 산다고 생각했다. 이혼한 후에 만난 남자들과 헤어진 것이나 아빠가 준 집을 처분한 돈으로 시작한 가게가 망한 것, 심지어 눈이 침침해지는 것까지도 유리 탓을 했고, 탓은 욕설로, 욕설은 다시 위험한 물건을 던지는 과격한 행동으로 나타났다. 신나고 또 신나야 할 대학 입학 후 첫 열두 달, 유리는 그냥 버텼다.


2학년이 되기 전 겨울 방학, 무작정 엄마 집을 나왔다. 차마 아빠에게 바로 전화할 순 없었다. 유리 스스로도 감정을 다스릴 시간이 필요했을 뿐 아니라 바로 아빠와 통화하면 자칫 자신을 엄마에게 가도록 허락한 아빠를 원망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친구 자취방에 이틀을 머물렀다. 하지만 계속 친구의 집에 얹혀살 수 없는 노릇이었고, 결정적으로 돈이 없었다. 친구 집을 나온 유리는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 나 좀 데리러 와”


아빠는 이유를 묻지 않았고, 어디냐고만 물었다. 아빠와 짧은 통화를 마친 후 유리는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그날 바로 지금 유리네 집인, 구석진 빌라의 101호를 계약했다.

 

부재 - 그곳에 있지 아니함


유리네 집에는 창문이 두 개밖에 없다. 하나는 싱크대 위쪽으로 나 있었고, 다른 하나는 화장실에 있는 창문이었다. 그나마 싱크대 위쪽 창문은 열어 봤자 옆 건물의 빨간 벽돌만 보여서 정말 환기를 위한 목적 외에는 열 일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화장실 창문은 열면 나무와 하늘이 보였다. 가끔 시간을 잘 맞추면 창을 통해 집 안으로 쏟아지는 햇살을 만끽할 수도 있었다.  


날씨가 너무 춥거나 덥지 않은 날에 유리는 종종 화장실 문을 닫지 않은 채로 창문을 열고, 침대에 누워 책을 읽다가 창을 통해 바깥 풍경과 짧은 소통을 했다. 그리곤 다시 책을 읽었다. 침대에 엎드려 책을 읽을 때는 화장실 쪽으로 베개를 옮겨가며 읽었다. 책을 읽는 자세를 유지한 채 창문 밖을 보기 위함이었다.


졸업을 앞둔 지난 몇 달은 폭풍 같았다. 폭풍의 시간을 간신히 견뎌내고 다시 맞은 토요일, 여전히 마음은 요동했지만, 책을 집어 들었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았기에 뭐라도 해야만 했다. 처음 이 집으로 이사 온 3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별로 없어 보였다. 그럭저럭 만족스러운 침대, 불에 그을린 자국이 선명히 남은 채로 싱크대 위에 걸려 있는 하얀 국자와 하필 비 오는 날 집들이를 하는 바람에 친구들이 파전이나 부쳐 먹자며 사 온 부침개 뒤집개까지 모두 그대로였다. 국자는 언제 마지막으로 사용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유리는 그날따라 소설을 읽고 싶었다. 마침 유명한 작가의 소설 한 권이 침대 옆 작은 책장에 꽂혀 있어서 읽어 내려갔다. 내용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아 50페이지를 간신히 채웠다. 잠시 숨을 고르고 무의식적으로 화장실 창문을 바라보았다. 순간 서늘함이 유리의 몸을 감쌌다. 화장실 창문을 둘러싼 공기는 평소와 분명히 달랐다. 정체 모를 시선이 느껴지는 듯했다. 창문을 닫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깜빡 빠져든 잠에서 깨고 나니 벌써 두 시간이 흘렀다. 다시 책을 들고 100페이지를 꾸역꾸역 채웠다. 약간의 흥미가 생기고는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화장실 창문을 한 번 더 바라보았다. 그런데 창문이 열려 있는 것이 아닌가! ‘분명 닫았던 것 같은데 누가 창문을 연 것일까. 아니면, 닫았다는 생각뿐이었던 것일까?’ 순간 유리는 혼란스러웠다. 엄청난 서늘함이 유리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유리는 전화를 걸 곳이 없었다. 더는 아빠가 곁에 없는 까닭이다. 아빠는 10년 동안 몸에 박혀 빠지지 않는 가시와 같이 육신을 괴롭히던 간경화가 간암으로 진행돼 돌아오지 못하는 먼 여행을 떠났다. 아빠가 간암 치료를 위해 입원한 몇 달 동안, 병실의 보조 침대가 원룸의 침대를 대신했다. 중간고사며 졸업을 위한 영어 인증이며, 논문까지 모든 것이 머리에서 지워졌다. 그냥 아빠의 손을 잡아 드리는 것만이 중요했다. 아빠를 위해서 뿐 아니라 유리 자신을 위해서이기도 했다.


친척의 도움으로 아빠를 보내고, 시간이 제법 지난 지금 생각해 보니, 이제야 유리는 그때 그 서늘함의 정체를 알 것만 같다. 그것은 아빠의 부재였다. 이제 화장실의 창문은 외부와 소통하는 통로나 따스한 햇살이 드나드는 출입구가 아니었다. 외부로부터 자신을 분리해 내고 싶은 담이었다.


유리는 오늘도 원룸에 산다.

 

집이란 무엇일까?
유리씨(가명)는 폭풍 같은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사회 초년생입니다. 유리씨에게 집이란 아빠의 존재를 느끼게 하는 동시에 부재도 느끼게 하는 공간이랍니다. 분명 엄마와의 기억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아픔이지만, 이제는 넉넉히 이길 수 있을 것 같다고 유리씨는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습니다. 서늘함으로 다가 온 아빠의 부재가 이제는 힘이 될 수도 있음을 확신하는 이유는 이 모든 폭풍우를 통해 자신은 단단해졌을 뿐 아니라 딸의 삶을 지키겠다는 아빠의 유언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시고, 각색을 허락해 주신 유리씨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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