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편지
의자에 앉아 멍하니 있는 타카요 할머니.
스즈: "………할머니, 안녕하세요.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볼게요.
우리 할아버지가, 그… 머리 벗겨진 할아버지… 세이시로님 맞나요?"
타카요: "응?"
하나: "스즈, 그렇게 갑자기 물어보면 실례잖아."
스즈: "하지만 궁금하잖아? 빨리 본론으로 들어가야 해. 나 잡담할 여유 없어.”
하나: "그건 나도 마찬가지지만…"
스즈: "할머니, 우리 할머니도 아시잖아요? 요시코!"
타카요: "응? 요시코?"
스즈: "맞아요, 그 요시코의 손녀! 우리들, 아시죠? 스즈와 하나!"
타카요: "응? 스즈랑 하나? 아, 요시코씨의! 아야코네 아이들이구나~ 그래, 어느샌가 이렇게
무럭무럭 자랐구나."
스즈: "사람을 식물처럼 얘기하지 마요…"
하나: "네, 할머니. 갑자기 찾아와서, 그저 인사도 제대로 못 드리고 무례하지만요,
세이시로 님 아시죠?"
타카요: "응? 세이시로? 아, 이발소의? 세이 씨?"
하나: "맞아요, 그 세이시로 님. 우리 할머니, 요시코와… 그... 세이.. 시.. 로... 씨…"
스즈: "요시코 할머니와 세이시로 할아버지는 서로 사랑하고 있었던 건가요?"
하나: "잠깐! 스즈."
스즈: "할머니, 말해주세요."
타카요: "………그야, 두 사람은 참 잘 어울렸지. 둘 다 수줍어하는 성격이라서,
그 모습을 지켜보면 답답했지만 말이지…"
스즈: "사귀고 있었던 거예요?"
타카요: "응?"
하나: "즉, 그 두 사람은 연애 중이었던 거죠?"
타카요: "아, 그렇지. 그건 맞아."
스즈: "그런데 두 사람은 결혼할 수 없었던 거죠?"
타카요: "응?………응………그건 참 안타까웠지…"
스즈: "안타까웠다고요…?"
하나: "할머니, 안타까운 이유가 뭐였어요?"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리며, 다나카가 찻잔을 들고 들어온다.
다나카: "자, 차가 다 됐어요~. 미안해요, 별거 없어서, 센베이만 내놓을 수밖에 없지만…”
하나: "아, 아니에요, 감사합니다."
스즈: "센베이 좋아해요!"
다나카: "그렇다면 다행이네~ 많이 있으니까 얼마든지 먹으렴~"
스즈: "네, 감사합니다."
다나카: "무슨 이야기하고 있었어? 할머니, 귀가 좀 안 좋지?"
하나: "아니에요, 그런 거 아니에요. 우리 이야기들 잘 알아듣고 계신 것 같아요."
다나카: "정말? 다행이다."
현관 벨이 울린다.
다나카: "누군가 온 것 같네. 잠깐만."
현관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다나카의 목소리가 들린다.
스즈: "할머니, 아까 이야기 계속해주세요. 왜 안타깝다고 말씀하셨어요?"
타카요: "응………?"
스즈: "할머니!"
하나: "잠깐, 스즈, 진정해. 이야기해 주실 때까지 기다려보자."
타카요: "………두 사람은, 요시코와 세이씨는 결혼하지 못했지…
그리워하면서도 서로가 그렇게 사랑했는데…"
하나: “응………? 할머니, 두 사람은 왜 결혼할 수 없었어요?"
타카요: "………좋은 혼담이 왔거든, 요시코에게..."
스즈: "그거, 우리 할아버지 이야기인가요…?"
하나: "아마도…"
타카요: "거칠긴 했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었어. 양가 부모님도, 친척도, 이웃도 모두 찬성했지. 그런데…"
하나: "응?"
타카요: "요시코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
스즈: “………세이시로 할아버지가 있었으니까요?"
타카요: "그래, 주변 사람들도 다 알았어. 요시코와 세이씨가 좋은 사이였다는 걸."
스즈: "그렇다면, 왜…?"
타카요: "세이 씨는… 병이 있었어."
스즈: "에?"
하나: "병?…"
타카요: "원래 몸이 약해서 학교에도 잘 못 다녔지. 하지만 책을 많이 읽어서 똑똑한 사람이었어.
그리고 참 착한 사람이었고."
스즈: "할머니, 병이란, 어떤 병이었나요?"
타카요: "구체적으로는 나도 잘 모르겠어…"
스즈: "저는 잘 모르겠지만, 그저 병이라서 결혼 못했다고요? 그게 이유가 되나요?"
하나: "스즈, 할머니를 탓해도 소용없잖아~"
타카요: "옛날에는 결혼해서 건강하고 튼튼한 아이를 낳는 게 가장 행복한 일이었어.
아빠가 병이 있고, 그 병이 아이에게까지 유전이 된다면 어쩌겠니?
태어날 아이에게 죄는 없지만, 부모나 자식 모두 고생해야 하거든…"
스즈: "그건…"
하나: "할머니, 하나만 묻고 싶은 게 있어요. 제가 세이시로씨랑 닮았다고, 할머니, 그러셨죠?
그게 무슨 뜻인지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혹시 제 할아버지가…"
스즈: "언니…."
하나: "우리 할아버지가, 세이시로 님… 그런 건 아니겠죠?"
타카요: "그건…"
손님이 돌아가고, 다나카가 다시 돌아왔다.
다나카: "미안~ 너무 오래 얘기했네. 차 괜찮아? 부족한 거 없어? 센베이도 더 먹어."
스즈: "아… 네."
다나카: "엄마, 뭐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정말 좋네요, 오랜만에 젊은 사람들과 이야기해서."
타카요의 얼굴을 바라보는 하나와, 하나를 걱정스레 바라보는 스즈.
스즈(생각): "그 후, 수다를 좋아하는 다나카 아줌마 덕분에 할머니에게서 더 깊은 이야기를
들을 수는 없었다. 타카요 할머니보다 다나카 아줌마가 우리 방문을 더 기뻐한 듯 보였고,
저녁 식사까지 함께하자고 초대받았지만, 우리는 엄마가 저녁준비하며 기다리고 있다는 핑계로,
다나카 아줌마 집을 떠났다. 언니는 계속해서 무엇이 진실인지 궁금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나는 다나카 아줌마가 눈치 채지 못하게 괜히 더 차분하게 행동했다.
다나카 아줌마의 끝없는 세상 이야기는 내 귀를 그저 흘러타고 내려가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