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애가 의기소침해서 집에 돌아왔다. 선생님께 귀여움을 받지 못하는 것 같았다. ‘예.’라고 고분고분하게 대답하는 성격이 아니다. 먼저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이해해야 움직이는 스타일이다.
애에게 이런 말을 했다. “세상에는 다양한 선생님들이 계신다. 잘 따르는 학생을 좋아할 수 있고, 생각이 깊은 학생을 좋아할 수도 있다. 그건 선생님 맘이므로 칭찬을 못 받는다고 너무 낙담할 필요 없다. 태어나서 살아있는 그 자체가 소중하다. 너 때문이 아니라면 선생님 말씀에 너무 괘념하지 말아라.“
애들을 큰 그릇으로 키우고 싶어 한다. 그 수단으로 지식이나 능력을 키워 자존감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식이 많고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자존감이 높고, 큰 그릇인가?
학자들은 ‘친구의 따돌림, 선생님의 질책, 강압적 명령 등 부정적 자극은 자존감에 상처를 낸다. 또한, 책에서 배운 지식과 경험도 자존감에 영향을 미친다. 스스로 힘으로 어떤 일을 달성했거나 잘했다고 칭찬을 받는 경우 자존감이 높아진다.’라고 설명한다.
진짜 자존감은 부정적 자극으로 상처가 나고, 칭찬으로 높아질까? 자존감을 엉뚱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자존감에 대해 살펴본다.
‘존재하는 것은 자존감을 가질 만하다.' 자존감의 근거는 신성으로 태어남과 존재 그 자체다. 잘나야 자존감을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다. 죽어야 할 이유가 아니라면 자존감은 훼손되지 않는다.
'나와 남의 자존감은 평등하다.' 자존감은 남에게 피해 주지 않는 범위가 그 한계다. 자기만 존중하고 남에게 해 끼치는 경우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아니다. 갑질하는 사람, 교만한 사람, 차별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나도 존중하고 남도 존중한다.
'자존감의 근거가 자기 안에 있을 때 안정적이다.' 인간은 누구나 원래 신성(이하, 불성, 도, 양심 등으로 달리 부를 수 있음)을 가지고 태어나서 살고 있다. 있는 그대로 소중한 존재 즉 자존감이 있는 존재다.
'자존감의 근거가 외부에 있을 때 불안하다.' 자존감의 근거가 외부에 있는 사람은 남에게 잘 보여야 존중받고 있다고 느낀다. 중심이 자기를 벗어나 쓰러지기 쉽다. 남의 칭찬이나 비난으로 자존감이 달라지는 사람은 조증과 울증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조울증 환자와 같다. 부정적 자극을 받으면 기분이 나쁜 일이지 자존감에 상처가 날 만한 일은 아니다. 긍정적 자극을 받으면 기분 좋은 일이지 자존감이 높아지는 일은 아니다.
지적 능력이 뛰어나든 그렇지 않든, 몸이 건강하든 불편하든, 잘나든 못나든, 실패하든 성공하든 신성을 가진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자존감은 없어지지 않는다. 꼴찌나 바보라고 자존감이 없어야 맞는 게 아니다. 교통사고 나서 많이 다쳤다고 자존감이 낮아야 당연한 게 아니다. 실패했다고 자존감이 낮아져야 하는 법도 없다. 그런 것들로 인해 자존감은 훼손되지 않는다. 살다 보면 늘 있는 일이다.
자존감이 남의 시선에 따라 크게 흔들리면 인정 중독일 수 있다. 남의 반응, 인정, 사랑 등에 행복감이 달라지고 전전긍긍한다. 남만 좋고 나는 안 좋은 요구를 잘 거절하지 못한다. 내 잘못이 아닌데 내가 사과를 하고 변명한다. 중심이 자기를 떠나 주인인 삶이 아니다.
‘자존심이 센 사람은 교만함으로 채워진 그릇이다.’ 갑질하는 사람이다. 마음속에 자기로 가득 차 있고, 남보다 뛰어나다고 인정받는다. 남을 무시하거나 남에게 자기 능력에 걸맞은 대접을 요구한다. 나도 남도 존중하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아니다.
자존심이 센 사람은 남의 마음을 얻을 수 없어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적다. 친구들은 손해 보지 않기 위해 경계해야 하고, 자기주장을 고집하는 그와 논쟁해야 한다. 편안히 기댈 수 없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많이 비운 그릇이다.’ 부모는 반대로 한다. 지식이나 능력을 높여 자존감을 높이고 큰 그릇으로 키우고 싶어 한다. 착각이다. 태어나서 살아 있음 그 자체만으로 소중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이 자존감이 높은 사람의 특성이다. 대단한 무엇을 기대하지 않아 많이 비운 큰 그릇이다. 남을 존중하므로 사람들이 모여들고 기꺼이 협조한다. 그 조직은 잘 돌아간다.
인간은 누구나 신성으로 태어나 살고 있어 그 자체로 소중한 존재다. 자존감이 높아도 된다. 능력이 있든 없든, 건강하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다. 나도 남도 소중하다. 내 존중의 근거를 남의 시선이 아니라 나에게 둔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자기 생각을 비운 그릇이며, 세상을 받아들이고 세상의 흐름에 맡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