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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Sep 28. 2023

#9. 원인과 결과

새벽수영 9일 차


오랜만에 나간 수영 수업이었다.

나를 발견한 보라 님이 다가와 말했다.


"괜찮아요? 지난 시간에...."

"아 네, 괜찮아요."

"아니 나는 몰랐는데 동생이 아파서 나간 거라고 걱정하더라고요."


아 그분은 친구가 아니라 동생이었구나. 자매였군. 아무튼 나의 빈자리를 알아봐 주고 걱정했다니 기쁘고 고마웠다. 내친김에 나는 그날이 오면 여자들은 수영을 어떻게 하는가에 대해 물어봤다. 그리고 잠시동안 매우 유익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역시 고수는 달랐다...


얘기를 하다 수업이 시작되었는데 아차, 그러다 보니 나는 자연스레 두 번째로 앞에선 사람이 되어있었다. 세 번째에서 두 번째가 된 이유는 보라님의 동생분이 결석했기 때문이다. 아.. 오늘은 곤란한데.....

뒷사람에게 "먼저 가실래요...?"물었지만 뒷사람은 바로 손사래를 치며 "아뇨 제가 지난 시간에 빠져서 자신이..."라고 했다. 거기에 대고 저는 일주일을 빠졌는데요...라고 하자니 너무 구차해서 그만두었다.  


내가 빠진 동안 수업은 자유형을 위한 팔 젓기 진도까지 나가있었다. 심지어 그러면서 호흡까지 하라고 한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정확히 발차기와 음파뿐이다. 못할 거 같은데? 자유형의 ㅈ자도 모르는 나는 제발 다른 분들 하는 걸 충분히 보고 가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 는 오산이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생각보다 훨씬 더 꼴사납게 첨벙첨벙 허우적 대고 있었다... 혹시나 대충 흉내는 낼 수 있으려나 했는데 역시나 아니었다. 아니, 팔이 이렇게 돌리기 어려운 거였다니... 어째선지 물에서 내 팔은 내 팔이 아니었다. 물이 무겁게 내 팔을 잡고 늘어졌다. 물의 저항을 무시하고 힘껏 팔을 돌렸더니 몸통은 옆으로 헤까닥 뒤집어지고 다리는 아래로 가라앉는 바람에 버둥대다가 이미 킥판은 저 멀리 날아가고 말았다


"아니 그걸 왜 던졌어요~?" 선생님이 물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창피할 줄 알았는데, 그보다는 그 순간 웃음이 터져 나오는 거다. 희한하게 기분이 좋았다. 선생님이 다시 해 보세요 하고 잡아주러 휘적휘적 나에게로 다가왔다.


나는 왜 웃을 수 있었을까.

왜냐하면 이건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배우지 않았으니까, 못한다.

배웠다면? 조금은 나았을 거고 계속 배우면 당연히 잘하게 될 것이다. 허우적대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우스꽝스럽게 뒤집어지는 건 창피한 게 아니라 안심되는 일이었다. 안 배웠는데 잘한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라고... 마음이 말했다. 나는 이 마음을 곱씹어 보다가 내가 수영이 좋아지는 이유를 하나 더 발견하게 되었다.


출처 pinterest


나라는 사람은 늘 논리에 집착하는 편이다.

원칙적으로 결과가 마음에 안들 때, 그 결과를 만든 원인을 수정하면 결과는 바뀌어야 한다. 논리적인 인과관계가 명확한 것,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것, 나는 그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 원리가 통하는 관계를 편안하게 여기고 그 원리대로 살고 싶다.

하지만 사는 일은 대부분 그렇지 않았다. 원인만 잔뜩 밀려있거나 원인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마주하게 되거나, 뭐 그런 일들이 세상에는 정말, 정말로 많다. 답답하고 화날 때가 많지만 점점 뭐 어쩔 수 없지 어느 정도 체념하고 말았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경험하고 있는 이 수영만큼은 그렇지 않다.

물에 뜨지 않는 것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도 원인이 있다. 그 심플한 인과관계가 너무나 당연하게 통용된다. 좋은 선생님을 만나서 제대로 된 설명을 들어야 하고 설명대로 몸을 움직여서 실현해야 하지만 어쨌든 원인과 결과가 선명한 것이다. 첫 시간부터 내가 온몸으로 배우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것이 나의 숨통을 틔워주는 것 같았다. 어쩌면 운동이란 건 원래 다 그런 것일까? 숨 쉬는 것 외에 이렇다 할 운동을 제대로 해 본 적 없는 나라서 그것을 이제 안 것일까...


수영이 점점 좋아지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어쩌면 그게 핵심인지도 모르겠다.

매일 조금씩 그 논리를 만들어 가는 일. 수영이 나에게는 그런 의미로 다가오고 있었다. 

드디어 납득할 수 있는 인과관계를 발견해 가는 그 기쁨이 새벽 5시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오도록 나를 부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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