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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작가 Jun 30. 2024

나에게만 힘든 일-2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엄마만 내 편을 들어준 것뿐인데 모든 일이 해결된 것 같아서. 온 세상 고민이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곧 얼굴에 머금었던 미소가 멈췄다. 그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다.

"수선생님께 들었는데, 선생님이 오해하고 상처받은 것 같아서 이야기하고 사과하고 싶어서 전화했어."

나는 적대적인 모습으로 전화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 사람의 목소리도 듣고 싶지 않았다. 얼굴도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의 감정낭비는 하기 싫었으니까.

그렇지만 사과를 한다면 들어야겠다. 나는 꼭 사과를 받아야겠다.

지금까지 병원에서 보여왔던 나의 소극적이고 조용한 모습과는 사뭇 다르게, 전화에 응했다.

"네. 말씀하세요. 제가 뭘 오해했어요? 제가 오해한 게 맞나요, 선생님? 제가 말하지도 않은 걸 선생님이 들으셨나요?"

이런 반응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지, 그 사람은 당황한 듯이 잠시 말을 더듬었다.

"아.. 아니. 나는 내가 분명히 들었는데.."

내가 하지 않았던 그 말을(입 쳐 닫고 가만히 전산만 보고 있었던 나인데), 정말 내가 그렇게 말한 줄 알고 나에게 화를 냈다는 거였다. 그런 적이 없다고 하니, 자신이 오해한 것 같다고 사과한다.

어쩌면 오해했다는 변명으로 자신이 나쁘게 몰아져 가는 이 상황을 모면해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모르겠다. 이런 일이 터지면 간호부에서는 그 사람에게 어떤 징계를 내리나? 안 내리더라도 경고 같은 걸 받나? 그래서 이렇게 사과를 하는 건가? 내 입장에선 어떻게 그 사람이 단순히 오해해서 그런 거라고 믿을 수 있겠나.

데이번 이브번 간호사들 총 10명 정도에 학생 간호사 여러 명, 전담 간호사도 몇 명 있었던 이브닝 인계 직전의 시간에 덜컥 화를 내고 '신규가 어쨌니 저쨌니' 앞담화를 했던 그 순간의 내 입장에서만 생각해 본다면 미안해서 사과 전화도 못해야 정상 아닌가.

그런데 자신이 오해해서 미안하다, 일을 하다 보면 말을 거칠게 하는 면이 있으니 고치겠다, 그렇게 사과만 하면(사과라도 해서 다행이지만) 나보고 어떡하라고?

/​

집으로 돌아와서 계속 울었다. 내 일상, 나, 내 주변 사람들.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 시간,

쏟았던 노력들,

적응하려고 애썼던 마음은,

누가 보상해 주지?

쉴 새 없이 흐르는 눈물을 차마 닦지 못하고 계속 뚝 뚝 흘리기만 하면서, 흐려진 시야로 분리수거를 하고, 설거지를 했다. 냉장고를 비워내고, 이불을 걷어 바닥을 닦고, 빨래를 개고 정리했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 생각들에 잠식되어 버릴 것만 같아서.

그리고, 며칠 내내 쌓여있던 빨래를 세탁기 속에 집어넣고 나서야,

하루종일 거의 제대로 된 끼니를 먹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하루 사이에 2킬로가 빠졌다. 조금만 앉아있다 일어서도 어지러웠다. 뭔가를 입 속으로 넣고 싶은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밤은 길었다. 마음이 텅 빈 기분이었다. 어떤 시간도 해결해주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괜찮아질 수 있을까?

내가 다시 좋은 꿈을 꿀 수 있을까?

다시 웃으며 일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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