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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작가 Jul 07. 2024

아픈 시간은 잊어버리고

아주 아픈 시간이었다.

나에게 일어난 일이었기에 다른 누군가 대신 나서 해결해주지 못한다. 나만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아팠다. 그 일을 계속 마주해야 했고, 나는 끊임없이 그 순간이 플래시백 되는 시간을 견뎌야 했다.

무엇보다 힘든 건,

잘못한 사람은 따로 있는데도 자책을 하게 된다는 거였다.

그 순간에 내가 다르게 행동했다면? 내가 그러지 않았다고 한 마디라도 해보았다면? 내가 조금 더 참아보았다면?

나는 간호사로서 일을 정말 잘 해낼 자신이 있었다. 내가 일을 잘하는 건, 잘할 수 있는 건 누구보다 스스로 더 잘 알고 있었다. 그곳에서 나를 빛내며 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를 시간이 산산조각 나 버려 나를 찔렀다.

원해서 간호사가 된 건 아니었지만 작년에 처음 간호사로 일하기 시작했고, 그때 간호사로서 느꼈던 직업만족도는 상당히 높았다. 심지어 간호사가 잘 맞는다고 느꼈었다. 그러니 더 멋진 곳에서 더 멋진 역할을 하며 내 커리어를 멋지게 층층이 쌓아 올릴 자신이 있었단 말이다.


날씨는 점점 더 맑아졌고, 따뜻한 초여름의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 기죽어있는 내 주변의 공기와는 다르게 말이다.

내가 멈춰있어도 세상은 돌아간다. 내 마음은 어두워도 해는 매일 아침마다 뜬다. 여전히 입맛은 없었다. 밥 몇 숟가락도 겨우 씹어 넘겼다. 살은 더 빠졌다.

집에만 있지 말라는 엄마의 말을 듣고 집을 나섰다. 내가 다녔던 병원을 지나쳐야만 나오는 버스 정류장에서 잠깐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는 금세 도착했다.


삼청동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 관람을 했다. 세 가지 전시 중 직원분도 추천해 주셨던 '가변 하는 소장품'을 선택했다. 왠지 이름이 마음에 들었기도 하고.


하지만 여전히 모르겠다.

가변 하는 소장품이라는 말은 무슨 의미지? 역시나 나는 전시는 잘 모르는 isfp인가 보다.


이곳은 삼청동 논픽션이다.

온 세상 좋은 냄새는 다 담고 있었던 것 같은 공간이었다!


삼청동 블루보틀. 처음 가봤다.

나는 이게 정말 드립커피인 줄 알고 시켰다고요.... 맛은 화이트 아메리카노 맛.


/​

더 이상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식욕은 없었다. 언젠가 ADHD 약을 처음 먹었을 때처럼 식욕이 없다 못해 뭔가를 먹고 나면 토가 나올 지경으로 속이 안 좋았다.

매 순간이 고통이었다.

원망해도 돌아오지 않는 시간임에도, 계속 생각해서 스스로를 힘들게 만드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나였다.

그럼에도 시간이 약이라는 말을 믿는다. 나쁜 날들이 지나고 좋기도 나쁘기도 한 날들이 지나고 나면 언젠가 좋기만 한 날들도 나에게 올 거라고 믿는다.

/​

마지막으로 수선생님과 한 번 더 면담을 하고, 간호팀장님과도 면담을 했다.

간호팀장님을 만나기 전 수선생님을 한 번 더 뵈었다. 여전히 생각이 바뀌지 않았는지 물으셨고, 나는 그렇다고 대답을 했다.

"간호사라는 일이, 물론 전산을 쓰기도 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꼭 연결되어야만 하는 일이라 그런 부분들에 있어 힘들었을 거야. 그래도 앞으로 다른 곳 가서라도 그런 말들에 대해서 너무 상처받지 말았음 해. 그러면 선생님도 더 힘들 테니까."

시간 내주셔 감사하다고, 그리고 죄송하다고.

나는 그 대답밖에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리고 간호팀장님을 뵈었다.

그분은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것 같았음에도

마치 내가 싫은 소리 한 번 들었다고 감정적으로 구는 철없는 신규간호사인 것처럼,

'그것 때문에 그만둔다고?' '그런 일 때문에?' '그 한 명 때문에?'라는 말을 반복해서 하시면서 나를 아래위로 훑었다. 내가 그만두는 게 전혀, 단 조금도 이해가지 않는다는 듯이 말이다.

나는 단 두 번밖에 보지 못한 그녀의 얼굴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리고 그 눈빛이 나를 더 다치게 했다. 그런 말들이 날 더 자책하게 만들었다. 그곳에서 나는 완전히 부적응자였으며 이방인이었다. 살면서 겪어 온 무수한 실패들이 나를 보고 비웃으며 '지금까지 잘 버텼겠지만 이건 예상도 못했지?' 속삭였다.

그렇다. 지금 겪고 있는 일은 내가 살면서 겪은 많은 실패 중 가장 크고 아프고 무거운 실패였다.

피복 반납과 사학연금, 건강보험료를 정산하는 과정을 거쳐 집(이었던 곳)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한 끼도 먹지 못했다. 물조차 넘기지 못했다. 전날 새벽에는 변기통을 붙잡고 토하기도 했다. 속이 말이 아니었다. 차디찬 바닥에 누워 시간을 보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너무나 소중했던 그 공간. 나는 이제 혼자여야만 하는, 내가 나를 너무 괴롭히고 있는 그 공간도 환멸 났다.

누가 보면 세상이 끝난 줄 알았을 거다. 내가 죽는 것도 아니고, 내가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그 순간의 나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되었다. 인생이 완전히 끝나버린 사람인 것 같았다. 내 주변 사람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나는 분명히 너는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희망을 심어주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나에게는 그러지 못했다.

/​

당사자들은 잘 지낼 것이다. 굴러들어 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낼 순 없고, 박혀있던 돌들은 그저 지금까지 그래왔듯 박힌 채로 그렇게 계속 살아가야 할 테니.

그저 굴러들어 온 내가 나가는 수밖에.

다만 나의 움직임이 그 사람들에게 작은 생채기라도 내었기를 바란다. 내가 용기 낸 말들이 그 사람들이 지금까지 해온 것과 같이, 평소와 다름없이 일을 할 때에 조금이라도 멈칫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기를 바란다.

바빠서, 바쁘다는 이유로, 멸시되어 왔던 간호사들의 오랜 문제점들 중 단 한 점이라도 내가 다른 방향으로 이끌었다면,

됐다. 그걸로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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