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사탕 Oct 26. 2019

층간 소음에 관하여

더 이상 숨죽이며  살고 싶지 않았다.

  가족 모임이 있어 오랜만에 오빠네 집에 갔다. 오빠네 집은 아파트 14층이다. 오래간만에 사촌을 만나 신난 아이들은 밤이 늦었는데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노느라 바빴다. 아무리 살살 걸으라고 주의를 주어도 까르르 웃으며 쿵쿵거린다. 심지어 둘째 별이는 트램펄린에서 바닥으로 있는 힘껏 점프까지 해댄다. 어쩔 수 없다. 아랫집에 얼마 전 수술하고 누워 지내는 할아버지가 계시다는데 더는 민폐를 끼칠 수 없다. 오랜만에 만나서 헤어지기 아쉬웠지만 급히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 아이들이 유난히 뛰는 이유는 따로 있다. 우리 집은 아파트 1층이다. 평소 집에서 줄넘기도 하고 침대에서 점프해서 뛰어내리는 게 일상이라 오늘같이 다른 집에 가면 층간 소음의 수위 조절이 안 되는 게 문제다. 사실 우리도 처음부터 1층에서 살았던 것은 아니었다.  

  

 3년 전까지 우리는 아파트 최상층인 20층에 살았다. 결혼 전부터 높은 층의 아파트에 사는 게 익숙했던 나는 아파트 2층인 신혼집이 너무 어둡고 답답했다. 탁 트인 전망과 시원한 바람, 문을 열어도 방해받지 않는 시야가 그리워 두 번째 집은 최상층으로 정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커가면서 문제가 생겼다. 큰 아이는 여자 아이인 데다가 얌전한 성향이었지만 둘째는 활달한 남자아이였다. 둘째가 세 살, 네 살이 되자 이 아이는 온 집안을 전력 질주하기 시작했다. 소파에서 뛰어내리는 것은 물론이고 이 방에서 저 방으로 하루에 수십 번씩 다다다다 뛰어다녔다. 우리 아랫집은 아이가 셋인 집이었다. 가끔 엘리베이터에서 아랫집 여자를 만나면 항상 민망했다. 저희 애가 너무 뛰어서 죄송하다고 얘기하면, 사람 좋은 아랫집 여자는 “저희 애들 소리 때문에 윗집 뛰는 소리는 잘 안 들려요.”라고 상냥하게 대꾸해 주었다. 하지만 점점 우리 아이들이 뛰는 소리는 나에게 스트레스가 되었다. 온 집안을 5센티미터의 매트로 덮었다. 그래도 모자라서 접었다 펴는 매트를 집안 곳곳에 깔았다. “뛰지 마!” 소리를 하루에 백번도 넘게 하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랫집 여자가 우리 집 문을 두드렸다.    


 ‘올 것이 왔구나.’ 인터폰으로 보이는 아랫집 여자의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내가 생각해도 아이가 뛰어도 너무 뛰었던 것이다. 아랫집 여자는 이사를 간다고 했다. 집을 전세를 주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층간 소음에 예민한 것 같아서 걱정이 되어 알려주려고 왔다고 한다. 그런 얘기를 해주고 그동안 묵묵히 참아온 그 사람이 눈물 나게 고마웠다. 아마 이사의 원인에 우리 집 애들의 뛰는 소리도 큰 부분을 차지했을 것이다. 그 무렵은 둘째 아이 별이의 발달장애 진단을 받은 지 얼마 안 되는 시점이었다. 아무리 뛰지 말라고 주의를 주어도 뒤돌아서면 다시 쿵쿵 뛰고 있는 것은 발달이 느린 것과 연관이 깊었다. 또한 아이의 온몸이 강한 자극을 추구하는 것 때문에 아이가 집안을 빠른 속도로 뛰어다니는 일을 반복했던 것이었다. 아랫집 여자에게 그런 사정을 사실대로 말했다. 아랫집 여자는 사정을 듣고 오히려 자기가 더 미안해하고 돌아갔다. 나는 그날 바로 부동산에 전화를 걸어 새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달 후 지금의 집으로 이사 왔다.   

 

 이사 와서 가장 기뻐했던 사람은 우리 큰 아이였다. 늘 엄마의 “뛰지 마!” 소리가 어지간히 듣기 싫었던 것 같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나무라는 엄마와 개의치 않고 뛰어대는 동생 사이에서 꽤나 스트레스를 받았나 보다. “1층이라 마음껏 뛰어도 돼!!” 라며 침대에서 점프해 내려오고, 집안에서 쿵쿵 발을 구른다. 친구들에게도 “우리 집은 1층이라 맘껏 뛰어도 돼!”라며 자랑을 해댄다. 별이는 여전히 개의치 않고 집안을 뛰어다니고 있고, 나는 “뛰지 마”란 말을 하지 않고 사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행복하다.  


 우리 집의 위층에는 네 살이 된 남자아이가 산다. 그 아이도 정말 많이 뛴다. 온 집안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쿵쿵쿵 횡단하는 소리가 자주 들린다. 가끔 오가며 마주치는 아이의 엄마와 할머니는 민망한 미소를 띠며 인사를 건넨다. 내가 너무도 잘 아는 표정이다. 나는 아이의 뛰는 소리가 시끄럽다고 윗집에 얘기할 생각이 전혀 없다. 4년 동안 우리 아이들을 잘 참아내주었던 아랫집 여자를 생각해서라도 내가 그러면 안 된다고 마음먹었다. 덕분에 우리 윗집 아이는 마음껏 집에서 뛰노는 것 같다. 어쩌면 윗집 여자도 “뛰지 마!”라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살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층간 소음도 자주 듣다 보니 익숙해진다. 아이들이 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데 뛰는 게 잘못된 일인 양 꾸지람을 듣는 요즘 아이들이 불쌍하게 느껴진다. 아무래도 나는 당분간은 1층을 떠나지 않을 것 같다. 어쩌면 평생 1층에서 살 수도 있다. 점점 오빠네 집에 가기는 힘들어질지도 모르지만, 아이들과 나의 행복을 위해 1층에서의 삶을 포기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1층에서 살아보기를 강력히 추천한다. 분명 삶의 질이 높아질 것이다. 당신의 아이가 좀 뛰는 아이라면 말이다.    

이전 02화 별이의 앞구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