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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Oct 26. 2019

별이의 앞구르기

너는 네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열심히 하면 돼.

 나의 둘째 아들 별이는 올해 일곱 살이다. 별이는 병설유치원 특수학급에 다니고 있다. 세 돌 때 또래보다 말이 느리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후 여러 가지 검사와 많은 의사를 만난 이후 발달장애라는 결론을 얻었다. 대근육 이외의 모든 분야(소근육, 자조능력, 사회성 등등)의 발달이 지연되어 있었다. 다섯 살 때 지적장애 등급을 받고 특수교사가 있는 병설유치원에 들어갔다.     


 별이는 어릴 때는 마르고 날렵한 아이였다. 그런데 작년 이후 별이의 식욕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별이의 불안을 낮춰주는 약을 먹기 시작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먹는 것을 워낙 좋아하는 아빠의 유전자를 물려받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릴 때는 먹은 만큼, 아니 먹은 것 이상으로 운동량이 많았는데, 근긴장도와 근지구력이 다른 아이들보다 떨어지는 이유 때문인지 별이는 요즘 들어 먹고 누워있고 먹고 누워있고, 자꾸 눕고 앉아 있으려고만 했다. 그러더니 올해 들어 두 살 많은 누나의 몸무게를 추월하기에 이르렀고, 지난달 했던 마지막 영유아 검진 결과 몸무게가 100명 중 97등에 해당한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별이가 운동을 아예 안 하는 것은 아니다. 별이가 배우는 수업 중 감각통합이라는 수업이 있는데, 뇌와 우리 몸의 각 기관 사이의 감각의 정보 처리가 어려운 아이들이 받는 수업이다. 말로만 들으면 무슨 수업인지 모르겠는데, 정작 교실에 가보면 그네와 사다리와 철봉과 평균대 등 운동을 할 수 있는 기구가 많이 있다. 감각통합 수업에서 그네를 타고 오면, 신기하게 별이는 묻는 말에 대답도 잘하고 밤에 잠도 잘 잤다. 학문의 영역으로 인정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분야이지만, 별이와 같은 느린 친구들에게는 꼭 필요한 수업이기도 하다. 아무튼 그 감통(감각통합의 줄임말이다) 수업을 3년째 받아 오고 있는데도 이제 별이의 몸이 커지다 보니 운동량이 부족하기에 이르렀다. 늘어나는 몸무게에 비해 근육량은 상대적으로 현저히 적어 몸 전체의 근육량을 늘려주기 위해 또 다른 운동을 시작해야 하는 시점이 온 것이다.    


 그리하여 별이는 특수체육 수업에 등록하게 되었다. 선생님께서 일대 일로 별이와 같이 수업시간 동안 공도 던지고 줄넘기도 하고 자전거도 타는 것을 가르치는 수업이다. 밖에서 들어보면 수업시간 내내 쉬지 않고 점프도 하고 뛰어다니고 뭔가 바쁜 것 같다. 수업이 끝나고 문 밖으로 나오면 별이의 이마에 땀이 맺혀 있다. 못 던지던 공도 잘 던지고, 뛰는 폼도 예전보다 훨씬 안정적으로 보이는 것으로 보아 선생님께 제대로 배우고 있는 것 같았다. 나중에 학교에 가서도 필요한 것들이고, 별이는 우리가 자연스레 습득하게 되는 모든 것에 대하여 따로 방법을 배워야 할 수 있는 아이이기에 이 시기에 잘 맞는 시기적절한 수업인 것 같아 나도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며칠 전 일이다. 침대 앞에서 별이가 갑자기 앞구르기를 하는 것이었다. 감각통합이 필요한 아이들 중에는 연속해서 빙글빙글 도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도 있고, 앞뒤로 그네 타는 것을 좋아하거나 이불 위에서 김밥말기 놀이 등 몸이 회전하는 감각을 즐겨 찾는 아이가 많다. 별이는 그동안 그다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지만, 늘 격한 움직임에서 오는 감각을 좋아한다는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앞구르기의 빙그르르 도는 감각이 별이의 마음을 끌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집 침대는 패밀리용 넓은 저상 침대인데, 별이는 침대 밑에서 펄쩍 뛰더니 한 바퀴를 데구루루 굴러 침대 위에 등을 대고 누운 상태였다가 냉큼 일어나 멋지게 앞구르기를 성공했다. 손을 대고 굴렀는지 아닌지는 미처 보지 못했지만, 머리가 거의 땅에 닿지 않은 상태로 앞으로 굴렀고 아무튼 별이에게서 평소 볼 수 없는 날렵한 모습이었다. 이 모습을 지켜본 나와 친정엄마와 큰 아이는 박수를 쳤다. 환호하는 우리를 보고 뿌듯했는지 별이는 그 뒤로도 심심하면 앞구르기를 했다. 큰 아이도 별이를 보며 자기도 할 수 있다고 앞구르기를 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별이처럼 날렵하게 머리가 땅에 닿지 않은 채로 데구루루 구르지는 못했다. 머리가 침대 면에 수직으로 거꾸로 박힌 듯한 자세로 잠시 멈춰 있다가 중력에 의해 기우뚱 한쪽으로 몸이 쏠릴 뿐이었다. 큰 아이는 3년째 태권도에 다니고 있는데, 여자 아이이기도 하고 엄마인 내가 봐도 그다지 탁월한 운동신경을 타고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2학년 여자 아이가 어쨌든 앞으로 구르는 데 성공했으면 잘하는 것이라고 큰 아이를 칭찬해 주었다. 큰 아이는 뭔가 별이에게 밀린 것 같은지 표정이 영 석연치가 않았다.   

  

 어제 체육 수업에 간 김에 체육 선생님께 별이가 집에서 앞구르기를 한다고 말씀드렸다. 빙글빙글 도는 감각이 좋아서일까요.라고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아닙니다. 별이 수업시간에 앞구르기를 배웠어요.”

라고 말씀하셨다.

 “네?”

 이야기를 들은 나는 깜짝 놀랐다. 새로운 것을 습득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는 별이였다. 그런데 체육 수업을 시작한 지 이제 겨우 한 달. 겨우 일곱 번 정도의 수업을 받았을 뿐이다.     “그뿐이 아닙니다. 별이는 요즘 윗몸일으키기도 30번 정도 합니다.”    


 그야말로 대반전이었다. 소싯적 날렵하던 나도 이제는 윗몸일으키기를 열 번쯤 하면 하늘이 노랗다. 별이는 코어(core), 즉, 몸통의 근육이 일반 사람보다 상대적으로 약한 아이이다. 스스로 똑바로 바닥에 앉아서 등을 세우고 자세를 유지하는 것도 힘들어 자주 무언가에 기대어 앉는다. 그런 별이가 운동을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앞구르기에 윗몸일으키기라니. 태권도 3년 한 누나보다 낫다. 큰 아이는 이 이야기를 듣고 자기는 20번 밖에 못한다며 별이를 부러워했다.    




 사실 그뿐만 아니다. 별이는 다른 분야에서도 가끔 예상외의 습득력을 보일 때가 있다. 별이가 받은 장애등급은 지적장애 3급인데, 특히 청각정보의 처리가 잘 안되기 때문에 지능검사를 할 때 선생님이 물어보는 질문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적절한 대답을 할 수 없다고 한다. 예를 들어 별아, 이 동물들 중에서 꼬리가 없는 동물은 뭐야?라고 물으면, 동물들의 이름만 반복해서 나열한다던가 하는 것이다. 대신 별이는 무플론, 암모나이트, 래서 판다 등 다양한 동물들의 명칭을 정확히 암기하고 있기는 하다. 따로 하나씩 보여주면서 이 동물은 꼬리가 있어, 없어?라고 물으면 거기에 대해서는 정확히 대답한다. 그러나 복합적인 판단을 요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어쨌든 당연히 지능검사 상 또래 아이들보다 낮은 점수가 나왔고, 별이의 인지 부분이 다른 아이보다 느리기에 별이 눈높이에 맞는 인지 수업을 받고 있다. 그런데, 작년 어느 날 별이가 혼자 한글을 읽기 시작했다. 예전부터 긴 문장도 혼자 암기하는 것을 잘 하기는 했다. 하지만 한글을 읽으려면 자음과 모음의 원리를 대략이라도 알아야 한다. 그런데 별이는 아마도 통 글자로 모든 것을 암기해버린 것 같았다. 6세에 한글을 읽는 것이 그다지 신기한 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지적장애를 가진 아이에게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별이에 대하여 포기하고 있었던 학습에 대한 가능성을 다시 검토하게 되었다.    


 별이뿐 아니라 함께 치료센터에 다니는 아이들 중 의외의 능력을 가진 아이들이 있다. 예를 들어 자폐성 장애를 가지고 늘 엘리베이터에 심취해있는 초등학교 2학년 선재는 이마트에 가서 혼자 무인 계산기에서 물건 값을 계산하고 결제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그 뒤에는 선재 엄마의 피나는 노력도 함께 했겠지만, 장애라는 것이 억지로 가르친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가진 능력 중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할 수 없는 일이 있는데,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일을 발견하고 최대한 가르쳐서 이후 아이가 살아가면서 그 기술을 사회에서 써먹을 수 있도록 발전시키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어떤 아이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어도 천재적인 미술가가 된다거나, 피아노를 신들린 듯 치기도 한다. 발달장애아를 키우는 많은 엄마들이 우리 아이는 혹시 어떤 천재적인 능력이 있지 않을까 한 번쯤 기대해 보는 것도 그런 서번트 증후군(Savant syndrom: 자폐증이나 지적장애를 가진 사람이 암산, 기억, 음악, 퍼즐 맞추기 등 특정 분야에서 매우 우수한 능력을 발휘하는 현상)을 가진 아이들의 영향일 것이다. 아쉽게도 우리 별이에게는 그런 천재적인 예술가적 기질은 발견되지 않았다. 오히려 또래 아이들이 모두 할 수 있는 자기의 신변 처리 능력이나 간단한 정보를 전달하는 능력조차 발달하여 있지 않아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기관에서 생활할 수 있었다. 나에게 늘 별이는 현재의 걱정거리이자 미래의 걱정거리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나와 남편이 아직 젊고 건강해서 아이를 돌볼 수 있지만, 시간이 흘러 우리가 늙고 결국 언젠가는 세상을 떠나고 나면 남겨지는 이 아이를 돌볼 책임은 하나뿐인 형제인 큰 아이와 이 사회가 져야 하는 것이다. 사회에게는 지금 현재의 모습으로 봐서는 크게 기대할 수 없으므로 결국 장애아 형제를 둔 비장애 형제자매가 그 짐을 짊어지고 가야만 하는 사실이 항상 내 마음을 먹먹하게 했다.     


 그런 의미에서 한글을 혼자 깨친다거나, 앞구르기를 곧잘 해낸 사건은 그 자체보다 더 큰 의미로 내게 다가왔다. 아무것도 혼자 하지 못할 것 같은 아이에게 자립의 희망이 보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게 다일지도 모르고, 생각보다 아이의 발전은 더딜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험한 세상을 살아내기 위해서 아이가 익혀야 할 최소한의 매뉴얼을 아이에게 가르치고 가는 것.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동안 해야 할 일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건강해야 하고, 오래 살아야 하며, 정신도 생 끝까지 맑아야 하고, 경제력도 있어야 한다. 이 네 가지는 내가 항상 기도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오늘도 별이는 체육시간에 즐겁게 공놀이를 하고 왔다고 한다. 공을 주고받고 드리블하는 것에 흥미를 느끼고 점점 재미있게 수업을 하고 있다고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셨다. 다행히 별이는 한번 배운 것은 잊어버리지 않는다. 다만 하나하나 가르쳐야 할 뿐이다. 별이가 배운 공놀이처럼, 살아가면서 알아나가야 할 것들을 하나하나 부지런히 배워야 하는 게 별이의 숙명이다. 보호자인 나는 마치 로봇의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짜듯이 빈틈없이 ‘삶의 매뉴얼’을 짜주어야 한다. 바라는 것은 부디 별이가 하나하나 즐겁게 배우면 좋겠다. 그리고 모르는 것에 대하여 너무 불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미 어른이 된 나도 살아가면서 뭐가 답인지 모르겠는 순간이 많이 있으니까. 일곱 살이 된 별이에게 아직 세상을 배워나갈 시간은 많이 있으니까. 나도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하나하나 가르쳐 나가야겠다고 다짐한다. 아직은 앞구르기이지만, 이게 뒤구르기가 되고 옆구르기가 되고 공중제비가 될 날도 올 수 있다. 별이의 앞날에 어떠한 한계도 미리 설정하지 않고 아이를 키우는 것, 그게 내가 할 일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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