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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Dec 30. 2019

불편할 뿐이지 불행하지는 않습니다.

특수학교와 일반학교, 그 갈림길에서.


 둘째 별이가 내년이면 여덟 살이 된다. 어느새 초등학교에 갈 나이가 된 것이다. 첫째 봄이를 처음 초등학교에 입학시킬 때도 걱정과 설렘이 컸지만 별이의 경우는 그에 비할 바가 아니다. 몇 차례 언급했듯이 별이에게는 발달장애가 있기 때문이다. 네 살 무렵 언어가 느리다는 어린이집 선생님의 권고에 따라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고, 또래에 비해 발달이 느리다는 결과가 나왔다.

 다섯 살이 되어 유치원에 입학할 때에는 아예 특수학급이 있는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을 찾았다. 특수학급에 배치되었고 총 학급 인원은 5명이었다. 한 명의 특수교사와 두 명의 실무사 선생님이 특수학급의 아이들을 돌봤다. 별이는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인자하신 선생님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3년 동안 행복하게 유치원에 다녔다. 게다가 별이가 다니는 유치원은 장애 아동과 비장애 아동간의 통합교육을 중요시 여기는 곳이어서 별이는 특수교사 및 실무사의 도움 하에 일반 학급 친구들과 하루의 대부분을 함께 보냈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는 교육을 하는 동시에 또래 아이들의 행동을 모방할 수 있는 기회까지 주어졌던 바람직한 교육환경이었다.

 이 모든 것은 특히나 별이를 다섯 살 때부터 맡으신 특수교사 김나O 선생님의 노력으로 인한 것이었는데, 유치원 특수교사 임용 후 초임으로 우리 별이를 맡으신 선생님은 모든 열정을 별이와 아이들에게 쏟아 부었다. 특수교사 임용 전의 다년간의 인지 치료사 경험을 살려 효과적인 특수교육으로 아이들의 학습능력을 끌어올린 것은 물론이고, 비장애 아동들에게 ‘장애 아동에 대한 인식개선 교육’을 하는 것에 특히 중점을 두어서 별이네 유치원 아이들은 밝은 미소반(특수학급) 친구들에 대한 편견이나 선입견이 거의 없었다. 하원할 때 별이를 데리고 운동장으로 걸어 내려오면 “별이야!! 잘 가!!”라고 인사하는 동급생 아이들이 가끔 있었는데, 정작 별이는 무심하게 한 번 쳐다볼 뿐이었다. 인사를 들은 내가 더 반가운 마음에 “그래!! 너희도 잘 가!!”라고 크게 손을 흔들어 주기도 했다.

 이제 별이가 유치원에 갈 날이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졸업은 내년 2월이지만, 겨울방학은 12월 말이다. 병설유치원의 방학은 길어서, 한 달도 넘는 겨울 방학이 끝나면 일주일 정도 유치원에 나간 후에 바로 졸업식을 할 것이다. 담임이신 김 선생님은 그 얘기를 꺼내면 벌써 눈가가 불그레해지신다. 첫 제자에게 든 정이 얼마나 깊을지 교사가 되어본 적이 없는 나는 상상할 수 없지만, 내 자식을 그렇게나 이뻐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올해는 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위해 결정해야 할 일이 많았던 한 해였다. 별이는 여섯 살 때 장애등급을 받았다. ‘지적장애 3급’이 나왔고, 요즘에는 장애등급 제도가 바뀌어 지적장애(심한 장애)라는 표현을 쓴다. 장애등급이 있거나, 혹은 등급이 없어도 일반 아이들과 수업을 함께 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학생들은 교육청에서 ‘특수교육대상자’라는 인정을 받으면 특수학급에서 공부하거나 특수 교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별이도 다섯 살 때 유치원에 입학하기 전 특수교육대상자 신청을 먼저 했었다. 교육청에서 심사 후 아이가 특교자(특수교육대상자의 줄임말)로 인정되면 초등학교 입학 시 일반학교의 특수반이나 특수학교에 입학할 수 있다.



 엄마들의 고민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공립초등학교에는 대부분 특수학급(특수반)이 있다. 아이가 입학하면서 특수반으로 입급하면 하루에 받는 수업 중 2-3교시는 특수반에서 보내고, 나머지는 원래 자기가 배정된 학급(일반 학급)에 머물게 된다. 즉, 일반 학급에서 일정한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장애가 아주 심하지 않은 이상 도움을 줄 보조인력이 배치되지 않는다. 당장 혼자 힘으로 화장실도 다녀와야 하고, 밥도 먹어야 한다. 교실 이동 시 혼자서 교실을 찾아와야 한다. 학기 초에는 공익근무요원들이 아이를 도와주기도 한다고 하지만, 혼자서 신변을 처리하는 자조능력의 발달이 느린 장애아동들에게 학교는 그야말로 정글과 같은 곳이 아닐 수 없다. 자기 교실을 못 찾아서 복도를 헤매거나 교문을 탈출하는 장애학생들이 학기 초에는 종종 발견된다고 한다. 하지만 일반학교의 장점은 분명히 있다. 발달이 느린 아이들은 또래 아이들의 행동을 모방할 기회를 얻게 된다. 그리고, 처음에는 시행착오를 겪을지라도 혼자서 학교생활을 해내는 것을 대부분 터득하게 된다고 한다. 약간의 눈치도 생겨서 사회생활을 하게 되었을 때 도움이 된다고도 한다.

 그에 비해 특수학교는 한 학년에 2학급이고, 한 학급에 정원이 6명이다. 전교의 모든 학생이 특수교육대상자이고, 모든 교사가 특수교사다.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이변이 없는 한 고등학교까지 특수학교에 다닐 수 있다. 직업교육도 체계적으로 받을 수 있다. 다만, 특수학교에는 장애의 정도가 심한 아동들도 많이 있다. 그리고 모델링할 일반 친구들이 없다. 경우에 따라서 특수학교에 입학 후 장애가 더 심한 친구들을 모방하여 문제행동이 심해질 수도 있고, 장애의 정도가 가벼운 경우, 장애가 심한 아동에게 교사와 실무사, 공익요원의 도움이 집중되는 상황이 생겨 아이가 방치될 수도 있다. 하지만 장점도 많다. 상대적으로 많은 인력이 투입되므로 아이의 학교생활에 대한 안전이 보장된다. (적어도 아이가 학교를 헤매고 다니거나 교문을 탈출하는 일은 거의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아이의 자존감이 높아진다. 일반 학교에서 겪는 친구들의 따돌림이나 괴롭힘으로부터 자유롭다. 엄마의 자존감도 높아진다. 일반 학교에서는 내 아이는 ‘특수한 아이’이고, 때에 따라서는 수업을 방해하는 행동,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으로 인해 ‘학급에 민폐를 끼치는 아이’가 되기도 한다. 엄마는 늘 고개를 푹 숙이고 학급의 모든 봉사활동에 앞장서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특수학교의 학부모들은 단합도 잘 되고 학교와의 관계에 있어서 더 당당하게 권리를 요구할 수 있다.

 별이는 이 모든 것의 경계선에 걸린 아이였다. 일반 학교에 가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잘 적응할 수 있을 거라며, 별이의 치료사 선생님들은 모두 일반 학교를 권했다. 특수학교에 가기는 아깝다는 것이다. 나도 여섯 살 때 별이가 혼자 한글을 깨우치는 것을 보고 일반 학교에 보내야겠다는 결심을 했었다. 그런데 첫째 봄이가 초등학교에 다니게 되면서 그 결심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학교마다 환경은 다르겠지만,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순수하지 않았다. 적어도 봄이네 반 아이들은 그랬다. 자신보다 부족한 것을 느끼면 그것을 금방 알아채고, 이용했다. 또래보다 순하고 아기 같고, 키도 작고 불안이 높았던 봄이는 1학년 때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봄이가 싫다는 소리를 잘 못하는 것을 이용해서 봄이에게 함부로 대하는 아이들도 있었고, 자기네끼리 그룹을 지어서 끼리끼리 놀기도 했다. 보이지 않게 교묘하게 봄이를 괴롭히는 아이도 있었고, 대놓고 봄이를 무시하는 아이도 있었다.생각보다 아이들은 잔인하고 영악했다. 초등학교 1학년 교실도 세상과 다름없이 작은 정글이었다.

 1학기가 끝날 무렵부터 별이와 같이 유치원에 다니는 특수반 엄마들과의 모임이 잦아졌다. 모두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좋은 환경의 학교에 보내고 싶어서 근처의 초등학교에 특수반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입학상담도 미리부터 다녔다. 무엇이 정답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라는 것이 늘 그렇다. 보호자이고 엄마인 내가 결정을 해야 한다. 누구도 대신 책임져 주지 않는다. 아이에게 장애가 있는 경우에는 더하다. 아이의 삶의 많은 부분을 내가 결정해 주어야 한다. 그 결정이 아이의 전반적인 삶의 방향을 바꿀 수도 있다. 특수학교와 일반학교의 경우도 그렇다. 우리나라의 교육현실 상 일반학교를 다니다가 적응하기 힘들다 해서 특수학교로 전학을 가는 일이 쉽지가 않다. 정원이 이미 꽉 차버렸기 때문이다. 지금 특수학교에 가지 않으면 중학교 입학할 때에나 특수학교에 갈 수 있는 것이다. 그 때에도 기존에 특수학교에 다니고 있던 친구들은 쉽게 진학하는데, 일반학교를 졸업한 장애아동들은 빈자리를 찾아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중학교 특수학교 진학도 수월하지가 않다.

 9월이 되어 교육청에서 주최하는 특수교육대상자 입학설명회가 열렸다. 일반학교의 특수반 교사와 특수학교 교사가 와서 학부모들에게 설명하고 질문에 답변을 했다. 결국 나는 특수학교에도 원서를 쓰는 것으로 마음을 정했다. 예상대로 별이를 가르치시는 모든 선생님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별이가 생활이나 학습에 필요한 기능이 좋기 때문이었다.선생님들은 모두 별이가 특수학교에 가서 퇴행할까봐 걱정하고 계셨다.

 나는 별이의 불안과 자존감에 중점을 두었다. 체벌은 없어졌지만 아이들의 훈육을 위해 선생님이 아이들을 혼내기도 하고 때로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학교에서는 비일비재한 일이다. 봄이네 반에도 어쩔 수 없는 장난꾸러기들이 몇 명 있는데 선생님이 남자분이시고 무서우셔서 아이들을 엄격히 혼내시기 때문에 그 아이들이 그나마 얌전하게 지내고 있다고 한다. 별이는 내가 운전하다가 끼어드는 차를 보고 “에잇! 뭐야!”라고만 말해도 뒷자리에서 “죄송해요!! 죄송합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불안이 높다.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았을 때 그 공격의 대상이 자신인지 다른 사람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것이다. 일반 학급에서 다른 아이가 혼나거나 학급 전체가 선생님께 꾸지람을 듣기라도 하면 별이의 감정을 폭발해 버릴 것이다. 무서워하고 눈물을 흘리는 것만 하면 괜찮은데 그 정도가 지나치면 혼자서 머리를 벽에 쿵쿵 박기도 하고 심각한 경우에는 자신의 머리를 때리기도 한다. 별이를 담당한 소아정신과 의사 선생님의 말에 의하면 별이는 작은 자극에도 ‘천재지변이 일어났을 때 일반인이 느끼는 정도의 두려운 감정’의 정도를 느낀다고 한다. 뇌에서 도파민이 과도하게 배출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의학적인 이야기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별이에게 지나친 자극은 독이 될 수 있다.

 또 하나는 자존감이다. 별이의 유치원과 같이 있는 초등학교에도 특수반이 있다. 특수반 아이들은 늘 혼자서, 아니면 보조해주는 공익요원과 둘이 있다. 고학년이 되면 더더군다나 일반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한다.사회성의 발달이 현저히 느리기 때문이다. 일반학교에 있는 특수반 아이들을 보면 몸만 불편한 지체장애의 아이들은 사회성이나 인지발달이 또래와 비슷하지만, 우리 별이와 같이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고학년이 될수록 외롭게 혼자 있다. 그 많은 쉬는 시간, 점심시간을 혼자서 아이들이 노는 것을 지켜보며 지낼 별이를 생각하면 마음 한 쪽이 답답했다. 어떤 엄마는 아이들이 친구가 되어주기는커녕 괴롭히지만 않으면 다행이라고 했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 아이들은 무시와 멸시에 익숙해지게 되는 것이다. 특수학교에 간다고 사회성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소외되고 있다는 느낌은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결국 특수학교 원서를 지원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엊그제 드디어 우리가 지원한 특수학교 교무실에서 전화가 왔다. 별이의 입학이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기다리던 소식이었기에 기뻤지만, 한 편으로 내 결정이 잘한 것인지 확신이 들지 않아 마음이 무겁기도 했다. 혹시나 내 마음이 편하자고 내 이기심으로 별이를 특수학교로 보낸 것은 아닌지. 더 발전할 수 있는 아이를 주저앉힌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별이에게 인지를 가르쳐주시는 선생님께 이런 심정을 말씀드렸더니 그런 생각은 당연한 거라고 하셨다. “어머니, 일반학교도 마찬가지에요. 어머님들이 자존심이 상해서, 아이가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자기 욕심으로 일반학교에 보냈다가 아이 고생만 시키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세요. 원래 결정이라는 게 다 그래요.” 의외로 명료한 선생님의 대답에 마음이 놓였다.

 사람은 누구든 가지 않은 길에 대해 미련이 남아 있을 것이다. 선택은 결국 자신의 몫인데, 선택이라는 것은 내가 가는 길에 대해 감내하는 것에 더해서 내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까지도 끌어안는 일인 것 같다. 나도 살면서 무수히 많은 선택을 해왔지만, 이번 별이의 학교를 정하는 것은 나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 별이의 남은 인생이 걸린 문제라고 생각되어 결정하기 참으로 힘들었다. 아직까지도 무엇이 맞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결국 어느 방향으로든 나는 선택을 했고, 이제는 그 결정이 최선이었음을 온 힘을 다해 증명해 보이는 것이 남았을 뿐이다.어쩌면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지만, 나는 최선을 다해 결정한 것이므로 일단 후회는 하지 않으려고 한다. 다행히 내가 결심한 이후에는 많은 분들이 내 의견을 지지해 주었다. 모두들 정답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장애아동들과 그 부모들이 이 모든 것을 일곱 살이라는 나이에 결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아이에 따라 예후가 달라질 수도 있고, 특수교육과 통합교육 중 아이의 발전을 위해 어느 것이 더 적합한지 시간이 지난 후에 알게 될 수도 있다. 그러한 경우 애초의 결정을 수정할 수 있는 융통성이 너무 없는 우리나라의 특수교육 현실이 안타깝다. 비장애인이 장애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식이 개선되려면 주변에서 장애인을 많이 보고, 경험하고, 그들도 역시 같은 사회의 구성원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기에 장애인들은 집안으로, 특수학교로 숨지 말고 자꾸 사회로 나와야 하는 것이다. 일본에서 오랫동안 생활하고 있는 한 작가의 글에 의하면 일본에서는 길을 가다가 장애인을 만날 확률이 한국보다 월등히 높다고 한다. 그건 장애인의 비율이 높아서가 아니라 그들이 사회에 나와서 한사람의 구성원으로 생활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하지만 당장 내 아이의 일이 되어버리니 그러한 생각들도 뒷전이 되었다. 사회 전체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도 중요하지만, 정작 내 아이의 몸과 마음에 대한 보호가 더 중요하게 생각되었다.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이다. 사회적인 인식 개선과 특수교육제도 개선은 언젠가는 이루어져야 할 일이지만 나는 그래도 우리 아이를 특수학교에 입학시키는 쪽으로 마음을 굳히게 되는 것이다.

 정작 별이는 내년부터 누나처럼 노란 버스를 타고 다니게 되었다니까 무척 좋아한다. 그동안 사립유치원, 사립초등학교에 다니는 누나의 스쿨버스가 엄청 부러웠었나보다. 이제 별이도 조만간 공립 특수학교에서 운행하는 노란색 스쿨버스를 매일 타게 되었다. 별이를 키우며 더 많은 고민을 하고 더 많은 깨달음을 얻는다. 이제 겨우 7년을 키웠지만 일반 아이의 5배, 아니 10배 이상 품을 들였다고 단언할 수 있다. 아이의 장애로 인해 세상을 다른 각도로 보게 되었다. 보이지 않던 것도 보이게 되었고, 몰랐던 것도 많이 알았다. 내가 사회적 약자가 되어보니 다른 사회적 약자들에게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작은 것에도 감사하게 되었다. 그리고 누구보다 순수한 우리 별이는 나에게 많은 기쁨과 웃음을 가져다 주었다. 진짜 문제는 장애가 아니지도 모른다.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살기 힘든 이 사회와, 제도와, 사람들의 시선이 나와 별이를 더 힘들게 한다. 장애가 있는 것은 불편할 뿐 불행한 것은 아니다.특수교육제도가 개선된다면, 별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더 따뜻해진다면 나와 별이의 삶은 조금 더 행복에 가까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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