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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Oct 29. 2019

함께 견디는 시간들

불안이 높은 아이

개학이 되었다. 긴 5주간의 여름방학이 끝났다. 오늘 아침 큰 아이 봄이는 2학년 2학기 교과서가 들어있는 무거운 가방을 두 개나 들고 노란색 스쿨버스에서 손을 흔들며 갔다. 멀어지는 버스를 바라보며 걱정 반, 개운함 반이 느껴졌다.

 태어날 때부터 불안이 높은 사람이 있다고 한다. 무슨 일이든 걱정이 앞서고, 예민하고 까칠하다. 예측하지 못한 상황을 견뎌내는 힘이 약해서 틀에 박힌 생활을 하는 것을 더 마음 편해한다. 네 살 무렵 봄이가 소아과에 가면 다른 아이들보다 배는 피곤했다. 늘 만나는 의사 선생님은 항상 가슴, 등부터 청진하고 귀를 보고 코를 본 후 마지막으로 아 벌리라고 하며 목을 확인했다. 그 날 따라 열이 나서 목부터 먼저 보자고 한 것이 화근이었다. 순서대로 진찰하지 않는다고 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런 일은 자주 있었다. 늘 하던 대로 하지 않으면 봄이는 자지러지게 울었다. 말도 빨리 트인 편이 아니어서 봄이가 왜 화가 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유치원에서도 친구를 사귀기 어려웠다. 훗날 동생 별이의 발달장애 치료로 인해 심리상담센터를 드나들면서 그 모든 것은 봄이의 불안이 높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하지 않았던 일, 가지 않았던 길에 대한 불안은 물론, 상대방에게 거절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으로 친구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짓궂은 아이가 놀리기라도 하면 그 기억은 오래도록 봄이를 괴롭혔다. 다시는 비슷한 상황에 처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봄이는 더욱 움츠러들었다.

 봄이가 느끼는 불안이 어떤 느낌인지 감을 잡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나도 특정한 것에 대해서는 겁이 많은 편이라 공포영화나 유령의 집에서 느끼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걸어갈 수 없는 느낌 같은 것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20대 무렵 혼자 고시원 방에서 밤에 잠을 자고 있을 때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무언가 깨지는 소리였는데 그 방안에는 나 혼자 있었고 방안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불을 켜고 소리의 근원을 확인해야 했지만 온몸이 굳은 듯 꼼짝할 수가 없었다.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 내 안의 무언가가 나를 꽁꽁 묶은 듯했다. 몇 초 동안 얼음처럼 굳어서 움직이지 못했다. 무엇이 나타날지 몰랐다. 허술한 고시원 방문을 열고 누군가 들어왔을지도 모른다. 낡은 건물이라 쥐라도 나타난 건 아닐까.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통과했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내가 이대로 멈춰 있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한 걸음을 떼기가 어려웠지만 결국 불을 켰고, 소리의 원인은 책상에서 무언가 굴러 떨어진 것이었다. 내가 이겨내야 했던 것은 외부의 것이 아니었다. 책상에서 굴러 떨어진 물건이 아니라 내 안에서 나를 옥죄는 공포심이었다.

 시간이 흘러 인지능력이 발달할수록 불안은 낮아질 수 있다고 했다. 다행히 좀 더 성장한 봄이는 평소대로 하지 않아도 큰일이 나지 않음을 인지하고 예측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자주 울지만 우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하지만 더 넓은 세상에 나갈수록 위험요소도 늘어났다. 이유 없이 봄이에게 짓궂게 굴거나 못된 소리를 하는 아이들도 늘어났다. 여자 아이들은 더욱더 끼리끼리 모여 놀았다. 봄이의 학교생활은 그리 평탄하지 않았다.


 봄이의 침대에는 열 개가 넘는 인형이 잔뜩 쌓여 있다. 속상할 때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인형의 목소리로 위로해 달라고 나에게 부탁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몰랑이도 되고 깡총이도 되고 어피치도 된다. “봄이야 울지 마. 우린 봄이를 사랑해.”라고 말해주면 젖은 눈으로 미소를 지으며 “그래그래, 너희가 있어 다행이야.” 라며 인형을 꼭 안아준다. 며칠 전부터 봄이를 괴롭히던 개학에 대한 불안은, 어제 공원에 나가 실컷 뛰어놀고 물놀이를 하고 났더니 잠시 봄이의 곁을 떠났다. 학교에서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면 바로 엄마에게 전화하라고 일러두었다. 실제로 아이들이 봄이를 많이 괴롭히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저 심술궂게 몇 마디 했던 아이들과 다시 마주치기 싫은 것 같았다. 다행히 벌써 집에 올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까지 봄이의 콜렉트콜 전화는 오지 않았다.(요즘 초등학생들은 공중전화 수신자 부담 서비스를 애용한다.) 별일은 없었는지 여전히 걱정되지만 나는 또 아무렇지도 않은 듯 봄이를 맞이할 것이다. 먼저 아무 말도 물어보지 않을 작정이다.

 봄이에게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나도 너처럼 무서운 순간이 있었고 사실은 지금도 여전히 무서운 일이 많다고 얘기해준다. 가끔은 어릴 적의 기억을 조금 과장되게 말하기도 한다. 그러면 봄이는 마음이 놓이는지 웃음기가 살짝 섞인 묘한 얼굴로 나를 걱정해준다. 정말? 엄마 힘들었겠다. 속상했겠다. 하면서 말이다. 모두들 각자의 마음속의 공포와 싸우고 있다고, 살아갈수록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모르겠는 것이 더 많아진다고. 너만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다 잘 될 거야.’, ‘지나고 나면 별일 아닐 거야.’라는 위로보다는 ‘나도 그랬어.’, ‘너와 같이 힘들었어.’라는 위로가 때로는 더 봄이에게 잘 닿는 것 같다. 나는 봄이의 마음속의 불안이 얼만큼 큰 것인지 잘 모르니까 내 기준으로 속단하는 것보다 아이의 힘든 마음을 그대로 받아주는 쪽을 택했다.

 결국 어둠 속의 공포에서 한 발자국의 걸음을 뗄 용기는 봄이가 스스로 내야 하는 것이다. 묵묵히 지켜봐 주는 것. 함께 견뎌 주는 것. 그것이 때로는 가장 큰 위로가 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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