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 싫어도 볼 수 밖에 없는 나
매일같이 요가원에 가서 개인 수련을 하다 보니
자주 뵙는 선생님들도 생기고, 동기분들과도 눈인사를 나눈다.
이상하게도 온라인에서는 이제 큰 집착 없이 계속 시도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매일 실패한다고 생각하고, 매일같이 콘텐츠를 던져보고 있다.
오늘은 좋아하는 선생님의 빈야사 + 힐링 사운드 배스 수업을 들었다.
수업 후 블록을 정리하다가, 선생님과 조금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하게 되었다.
“선생님은… 여기 말고는 수업 안 하세요?”
내가 그렇게 물었을 때 이미 몇 주간 얼굴을 익힌 선생님은 조금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셨다.
“…다른 지점도 나가죠. 당연히요 :)”
“아… 시간표를 자세히 안 본 것 같아요.”
어쩐지 나는 내가 한 말에 당황했고,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그보다 왜 나는 종종 내가 한 말이 어색하고 낯설게 느껴질까.
수업 후에는 동기 선생님과 김밥과 떡볶이를 함께했다. 선생님은 TTC가 끝나고도 가까운 곳에서 일자리를 찾지 못하면 어쩌냐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셨다. 강사로서 성공하지 못하면 예전의 직장으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며 넌더리를 냈다.
그래서 인스타그램에서 만난 요가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렸다.
TTC 도중에 채용 제안을 먼저 해서 TTC를 졸업하자마자 수업을 시작한 분,
아파트 커뮤니티 센터에 직접 제안서를 넣고 수업을 열게 된 분.
그리고 선생님은 시퀀스 짜는 게 어려운 것 같다는 선생님께, 내가 자격증을 땄던 곳은 분위기는 엄격했지만, 시퀀스를 짜는 법은 잘 배웠다고 말씀드렸다.
“필요하시면 알려드릴까요?”
그 말에 선생님은 정말 좋아하시며 나중에 꼭 한 번 보여달라고 하셨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음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온라인에선 자유롭지만, 오프라인에서 사람을 만나면 여전히 어렵다. 사이버 세상에 살던 내가 현실에서 말하고, 마주보고, 반응을 느끼는 일은 종종 낯설고, 고단하다.
강사 일을 그만둔 시간이 내 발목을 잡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미 강사를 그만둔지도 꽤 되었다. 그런 것의 의식이 될 수록
‘괜히 나섰나?’
‘이미 한참전 그만둔 내가 무슨 도움을 줄 수 있지?’
나의 머리속에서 떠오르는 목소리의 크기가 계속 커지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 생각이 참 많았다.
TTC와 산스크리트어 수업을 병행하며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내게 ‘안전한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그만큼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온 날은 몸도 마음도 지쳐 있다.
월요일 오후, 늘 가던 인텐시브 하타 수업을 가지 않기로 했다.
그보다 혼자서 가을 하늘을 보고, 정성을 들여 걷기로 했다.
티 없이 맑은 하늘. 저마다 고유한 색깔로 물든 낙엽들.
바람에 흩날리며 땅에 떨어지는 사각사각 시원한 소리.
햇살에 반짝이는 물결.
‘아, 살 것 같다.’
요즘은 내 몸의 신호를 조금 더 빠르게 알아차린다.
하지만 나의 머리속 목소리를 가만히 두면 점점 말이 많아지고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자주 알아차리게 된다.
‘그 말을 왜 했지?’
‘내가 너무 튀었나?’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쩌지?’
요가를 해서 삶이 더 예쁘고 윤기나게만 변하진 않았다.
오히려 매일, 나는 나의 날 것의 모습을 한 겹씩 벗겨내고 마주하게 된다.
그건 유쾌하지만은 않다. 종종 괴롭고, 민망하고, 버겁다.
요가를 해서 좋은 점은, 이런 불편한 감정과 함께하는 나의 민낯을
스스로 마주할 용기가 조금 더 생겼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구나’ 하고
다음 요가 수업으로,
다음 TTC 수업으로
몸을 움직이며 나아간다.
TTC의 절반이 지나간 어느 날,
‘사이버 세상에서 살다 일주일만에 온 나’는
갑작스럽게 왈칵 눈물을 쏟아버렸다.
그 순간, 내 감정이 말하고자 한 건 무엇이었을까?
다음 화에서는
TTC 중반의 소감과 눈물 쏟은 ‘그날의 흑역사’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기대해주세요.